새로 다니기 시작한 치과는 접수를 끝내자마자 엑스레이실로 안내했다. 나는 기계에 달린 작은 스틱을 물고 “이 하세요”라는 말에 맞춰 이를 힘껏 드러냈다. “전 스케일링을 하러 왔는데요.” 내 말에 간호사는 “치아의 전체 상태를 아는 게 중요하니까요”라고 답했다. 진료의자에 앉아 나는 화면에 뜬 내 치아들을 구경했다. 빼곡하게 자리 잡은 흰 이들이 어느 것은 크고 어느 것은 작았는데, 적당히 기울어진 모습이 제법 사이좋아 보였다. 가만, 기울어지면 안 되는 것 아닌가? 파노라마라서 이렇게 보이는 거겠지? 몸을 화면 쪽으로 가까이 붙이려는데 의사가 들어왔다.
“아이스아메리카노 좋아하세요?” 의사는 엑스레이에 찍힌 여러 지점을 포인터로 움직여 보여주며 말했다. “치아에 자잘한 금이 많이 생긴 거 보이시죠? 얼음 씹어 드시는 분들 치아 상태가 이런 경우가 많거든요.”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폭염이 심각한 수준이 아니라면 나는 대부분 뜨거운 커피를 선택했다. 얼음을 씹어 먹는 일도 당연히 없었다. “그럼 이를 악무는 습관 같은 게 있으신가? 어느 쪽이든 치아 건강에는 몹시 안 좋은데요.” 그의 지적에 이를 마주 물다 얼른 힘을 뺐다. 여러 곳에서 여러 방식으로 지적받았음에도 도무지 고쳐지지 않는 습관 중 하나가 그것이었다.
무언가에 집중할 때 나는 이를 꽉 물고 턱과 목을 단단히 고정시키곤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전형적인 거북목 자세에 이를 악문 볼품없는 꼴이었다. 그래도 그건 뒷목과 하악이 뻐근해지는 정도로 끝나곤 했다. 정말 문제는 견딜 수 없을 때였다. 좋아서 견딜 수 없을 때, 눈앞의 대상이 사랑스러워 견딜 수 없을 때 나는 몸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이를 악물곤 했다. 아주 어릴 때부터의 습관으로 실제로 어금니에서 뚜둑 소리가 난 일도 여러 번이었다. 대상은 한정 없었다.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읽을 때나 무대 위 배우의 어떤 대사가 무서울 만큼 마음에 와닿을 때, 잠에서 깬 반려견이 비칠비칠 다가와 내 손에 다정하게 뺨을 비빌 때나 머릿속에 떠오른 단 하나의 문장을 백지 위에 옮겨 적을 때, 그 모든 순간에 나는 힘껏 이를 악물었다.
좋아하는 것, 사랑스러운 것, 아끼는 것을 앞에 두고는 항상 두 가지 마음이 양립했다. 도무지 손을 뻗을 수 없을 정도로 감탄하고 경외하는 마음과 마구 움켜쥐어 손안에 완전히 가두고 싶은 욕심 어린 마음이 그것이었다. 나는 그게 늘 이상하고 어려웠다.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 차면 부드러운 거품처럼 흘러넘치는 것이 아니라 단단하게 굳고 뭉쳐 기이할 만큼의 무게를 갖게 된다는 사실이 말이다.
과중함을 견디지 못해 금이 간 자리를 끈질기게 압박해 기어코 부서뜨리는 것 역시 사랑이 하는 일이다. 이를 악물고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손안에 움켜쥐면 관계는 틀림없이 망가지고야 만다. 절반만 사랑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쥐고 있던 손을 느슨하게 풀었다. 내 앞에 놓인 게 무엇이든 이를 악물 만큼 사랑하지는 말아야지. 그런 생각에 걸맞게 도무지 사랑할 수 없는 스케일러가 굉음과 함께 내 입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안보윤 소설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