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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이가 해설하고 민재는 수비하고”…‘월클’ 제자들 지켜본 스승의 함박웃음

박지성·김민재 고교 시절 지도한 이학종 전 감독 인터뷰
“한 학교서 세계적 선수 둘, 한국 축구 역사에 없는 일”

두 제자가 한 화면에 잡혔다. 한 명은 마이크를 잡았고, 또 한 명은 그라운드를 지켰다.

 

이학종 전 수원공고 감독이 취재진의 세리머니 요청에 “그럼 지성이 걸 해야지”라며 박지성의 트레이드마크 세리머니를 따라 하고 있다. 김리원 기자
이학종 전 수원공고 감독이 취재진의 세리머니 요청에 “그럼 지성이 걸 해야지”라며 박지성의 트레이드마크 세리머니를 따라 하고 있다. 김리원 기자

 

2026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체코전. JTBC 중계석에서는 박지성이 해설을 맡았고, 그라운드에선 김민재가 한국 수비를 이끌었다. 이날 한국은 선제골을 내주며 끌려갔지만, 황인범과 오현규의 연속 골에 힘입어 체코에 짜릿한 2-1 역전승을 거뒀다.

 

2026 북중미 월드컵 한국-체코전에서 해설 중인 박지성. JTBC 캡처
2026 북중미 월드컵 한국-체코전에서 해설 중인 박지성. JTBC 캡처
김민재가 11일(현지시간) 멕시코 할리스코주 사포판 과달라하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A조 조별리그 1차전 대한민국과 체코의 경기에서 볼을 막아내고 있다. 뉴스1
김민재가 11일(현지시간) 멕시코 할리스코주 사포판 과달라하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A조 조별리그 1차전 대한민국과 체코의 경기에서 볼을 막아내고 있다. 뉴스1

 

이 장면을 누구보다 흐뭇하게 그러면서도 ‘매의 눈’으로 지켜본 이가 있다. 두 선수의 고교 시절 은사인 이학종 전 수원공고 감독이다. 말은 툭툭 던지지만 제자들을 향한 애정은 누구보다 깊은, 그야말로 ‘츤데레 스승’이다.

 

이학종 전 수원공고 감독이 경기도 군포의 한 풋살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리원 기자
이학종 전 수원공고 감독이 경기도 군포의 한 풋살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리원 기자

 

이 감독을 만난 건 지난 13일 경기도 군포의 한 풋살장이었다. 은퇴한 지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공을 다루는 왼발의 감각만큼은 현역 시절 그대로였다. 

 

“지성이가 마이크를 잡고, 민재가 수비를 하더라고요.”

 

툭 던진 그의 한마디가 인터뷰의 시작이었다. 무뚝뚝하던 표정은 제자 이야기가 나오자 금세 풀렸다. “월드컵 무대에서 두 제자를 보니 기쁘죠. 한 고등학교에서 세계적인 선수가 둘이나 나온 적은 대한민국 축구 역사에 없으니까요.”

 

2014년 전국고등축구리그 왕중왕전 우승 당시 수원공고 축구부. 우승컵 뒤에 고교 시절 김민재가 서 있으며, 맨 윗줄 왼쪽에서 네 번째가 이학종 감독이다. 수원공고 제공
2014년 전국고등축구리그 왕중왕전 우승 당시 수원공고 축구부. 우승컵 뒤에 고교 시절 김민재가 서 있으며, 맨 윗줄 왼쪽에서 네 번째가 이학종 감독이다. 수원공고 제공

 

박지성 따라온 소년, ‘월클 수비수’가 되다

 

김민재가 고향 경남 통영에서 공을 차다 수원공고를 택한 이유부터가 박지성이었다. 중학생 김민재에게 박지성은 우상이었다. “박지성 선배처럼 큰 선수가 되겠다”며 제 발로 찾아온 소년을 이 감독은 체격부터 눈여겨봤다.

 

“부모를 보면 어디까지 클지 대충 사이즈가 나와요. 어머니도 키가 크시고, 아버지도 체격이 아주 좋으셨거든요. 민재는 무조건 크게 될 체격이었어요.”

 

당시 김민재는 공격수였다. 하지만 탄탄한 몸에서 다른 미래를 읽은 이 감독은 곧바로 수비수로 포지션을 바꿨다. 그리고 남들보다 더 엄격하게 지도했다. 

 

다른 선수들이 휴식을 취하는 저녁 시간에도 김민재만은 예외였다. 기숙사에서 저녁을 먹고 나오면 다시 운동장으로 불러냈다. 헤딩 타점 잡기와 위치 선정, 수비 동작을 질릴 때까지 반복시켰다.

 

“3년을 그렇게 시켰어요. 근데 군말 없이 다 따라오더라고요. 경기장에서 지는 걸 죽기보다 싫어하는 근성이 있었죠. 포지션을 바꾸자고 했을 때 본인도 부모님도 의아해했지만 결국 받아들였어요. 그게 민재의 무서운 장점이었죠.”

 

이 감독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2014년 전국고등축구리그 왕중왕전에서 수원공고는 프로 구단 산하 유스팀들을 연달아 꺾고 창단 첫 우승을 차지했다. 순수 아마추어 고교팀의 이례적인 돌풍이었다.

 

이 대회에서 수비상을 받은 김민재는 단숨에 프로 구단들의 뜨거운 러브콜을 받았다. 이 감독이 호탕하게 웃었다. “그때 축구계에 괴물 하나가 나왔다고 다들 난리가 났었어요. 허허.”

 

이 감독은 “그 대회를 계기로 민재가 프로 구단들의 눈에 들기 시작했다”며 “고교 졸업 후 프로와 대학 진학 사이에서 고민하다 연세대를 선택했고, 결국 전북 현대로 이어졌다”고 회상했다.

 

수원공고 축구부 시절의 박지성. 두 번째 줄 왼쪽에서 네 번째가 박지성이다. 수원공고 제공
수원공고 축구부 시절의 박지성. 두 번째 줄 왼쪽에서 네 번째가 박지성이다. 수원공고 제공

 

수줍던 독종 박지성, “책 많이 읽어서 말 잘하나 봐요”

 

정작 김민재의 롤모델이었던 박지성은 결이 완전히 달랐다. 이 감독이 수원공고 부임 후 만난 첫 신입생이 박지성이었다. 성격부터 딴판이었다.

 

“지성이는 참 말수가 없었어요.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한 학생이었는데, 대신 끈기 하나는 대단했죠. 자기관리도 철저해서 말썽을 피우거나 흐트러지는 법이 없었어요.”

 

그 조용하던 아이가 지금은 중계석에서 막힘없이 말을 잇는다. 이 감독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성격이야 크면서 바뀌는 거니까”라며 툭 던지더니 오랜 세월 묻어둔 옛 일화를 꺼냈다.

 

박지성이 일본 리그로 떠날 당시 이 감독의 아내는 “외로울 때 읽으라”며 책 몇 권을 건넸다. 이 감독은 “고등학교 때는 ‘네, 네’만 하던 아이였는데 인터뷰에서 말을 술술 하더라”며 “농담처럼 ‘책을 많이 읽어서 저렇게 말 잘하나 보다’ 했다”고 말했다.

 

“제2의 지성이·민재 만들 원석에 투자해야”

 

이 감독은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국가대표 출신 미드필더로, 고려대를 졸업한 뒤 한일은행과 울산 현대에서 활약한 실력파 선수였다. 이후 수원공고 지휘봉을 잡아 20여년간 전국대회 우승 10회를 이끌며 ‘스타 제조기’로 명성을 떨쳤다. 

 

그가 키워낸 두 제자는 이제 모교의 든든한 지원군이기도 하다. 박지성과 김민재가 세계 무대로 이적할 때마다 FIFA 규정에 따른 연대기여금이 수원공고로 들어온다. 그 돈은 고스란히 후배 양성에 쓰인다. 선배의 성공이 후배의 기회로 이어지는 셈이다.

 

신이 나서 제자 자랑을 잇던 이 감독은 축구 지도 현실에 이야기가 닿자 목소리를 낮췄다. 당장의 성적을 위해 이기는 축구만 고집하는 흐름에 대한 아쉬움이자, 고교에서 대학·프로로 이어지는 ‘성장 골든타임’을 책임지는 지도자로서의 책임감이었다.

 

“선수가 프로 무대에서 통하느냐 마느냐는 결국 고등학교와 대학 시절에 판가름이 납니다. 아이들의 잠재력을 끌어내는 건 감독의 몫이에요.”

 

“당장의 성적만 보고 이기는 축구를 하면 감독은 편하죠. 하지만 그건 진짜 지도자가 아닙니다. 아이 한 명 한 명의 미래를 보고 투자해야 해요. 크게 될 수 있었는데 지도자를 잘못 만나 성장하지 못한 선수가 성공한 선수보다 훨씬 많습니다.”

 

제자들의 근황을 이야기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김리원 기자
제자들의 근황을 이야기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김리원 기자

 

“두 제자와 요즘도 연락은 자주 하시냐”는 질문엔 허허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세계적인 스타가 돼서 바쁜 사람들이니까. 저렇게 잘 뛰고, 잘 말하고 있잖아요. 그거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합니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남은 월드컵 경기 때도 제자가 해설하는 거 보실 거냐”고 묻자 이 감독은 옅은 미소와 함께 농담을 던졌다.

 

“지성이가 해설은 잘하더라고. 그래도 중계하다 보면 틀린 얘기가 나올 수도 있잖아. 그러면 채널 돌아갈 수도 있지. 허허.”

 

고교 무대를 떠나 대학 사령탑으로 자리를 옮긴 그는 현재 서울문화예술대학교 축구부를 새롭게 꾸리며 내년 첫 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스승은 이제 또 다른 꿈을 꾼다. 박지성과 김민재의 뒤를 이을 또 다른 제자를 만나는 것, 다음 월드컵에는 둘이 아닌 셋, 어쩌면 그 이상이 되기를 바라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