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자의 손을 거쳐 간 현금의 액수는 상상을 초월한다. 90년대 대한민국 방송계를 장악하며 그녀가 벌어들인 수익은 수십억원이었다. 그러나 그 숫자의 이면에는 우리가 몰랐던 뼈아픈 사실이 숨어 있다. 당시 그녀는 출연료를 전부 현금으로 받아 관리했고 그 두툼한 봉투들은 은행이나 금고가 아닌 주변 사람들의 손으로 흘러들어갔다. 그것은 투자도 비즈니스도 아니었다. 자신의 성공이 누군가에게는 숨통을 틔우는 동아줄이 되길 바랐던 과도한 연민의 발로였다.
밤무대 MC 시절부터 그녀는 동료들 사이에서 ‘걸어 다니는 은행’으로 통했다. 경제적 곤경에 처한 동료들에게 아낌없이 현금을 건네던 모습 때문에 생긴 별명이었다. 단순히 돈을 빌려주는 것을 넘어 그녀는 동료의 재능을 알아보는 데도 남다른 감각을 보였다.
신인이던 홍진경을 프로그램에 출연시키기 위해 이영자는 제작진 앞에서 무릎까지 꿇었다.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신의 출연료 일부를 떼어 홍진경의 몫으로 보태주겠다고 제안한 일화는 방송계의 유명한 실화다. 당시 그녀에게 돈은 관계를 증명하고 사람을 지키는 도구였다. 그녀는 ‘너는 내 덕에 살았다’는 생색 대신 ‘내가 도울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마음의 무게를 자처했다. 계약서 없이 오가는 현금이 곧 신뢰라 믿었던 시절, 그녀는 성공의 보상보다 타인의 삶을 지탱하는 버팀목이 되는 것을 우선순위에 두었다.
무대 위 조명은 찬란했으나 이영자의 통장은 늘 텅 비어 있었다. 웃음을 생성해 내는 노동의 대가를 고스란히 인연의 빚으로 치러야 했기 때문이다.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타인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려 자신의 일상을 내어주었던 감정의 소모는 그녀에게 값비싼 수업료였다. 수십억원이 사라지는 과정에서 그녀가 배운 것은 자산 운용의 기술이 아니었다. 사람과 돈 사이에서 자신의 일상을 지키기 위한 확고한 경계를 세우는 법이었다.
이영자는 결국 타인의 짐을 짊어지며 자신의 삶을 소모하던 과거의 습관을 멈췄다. 그녀는 관계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상을 지배하는 견고한 질서를 세웠다.
2001년 다이어트 파문으로 인한 자숙기는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혹독한 계절이었다. 그녀는 당시 전화번호부를 정리하며 다수의 연락처를 삭제했다. 자신을 이용하던 사람들을 단절하고 외부의 시선에 의존하던 삶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재정립하기 위한 결정이었다. 단호한 정리에는 혼란이 뒤따랐다. 그러나 그것은 고립이 아니라 남의 짐을 내려놓고 ‘나 자신’이라는 1인칭의 삶을 시작하기 위한 통과의례였다. 돈을 잃고 난 뒤 찾아온 고독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었으나 그녀는 감정에 매몰되는 대신 차가울 정도로 객관적인 자기 단속에 집중했다.
그녀가 찾은 해답은 반복되는 규칙이었다. 방송이 없는 날이면 새벽 시장을 찾아 식재료를 고르고 정해진 시간에 강도 높은 운동을 이어갔다. 타인에게 쏟던 에너지를 자신의 일상을 가꾸는 데 썼다. 새벽 시장을 찾는 행위는 불안을 노동으로 덮는 자기 관리였다. 현금을 흩뿌리며 관계의 안정을 꾀하던 시절의 불안은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생산적인 일로 대체되었다.
결과적으로 자산을 잃고 나서야 그녀는 비로소 자신의 일상을 온전하게 소유하게 되었다. 무너진 삶을 스스로 쌓아 올린 자기 구제였다. 조명이 꺼진 뒤 홀로 마주했던 텅 빈 통장은 이제 상처의 흔적이 아니라 사람과 돈 사이에서 안전장치를 확보했다는 기준점이 되었다.
그녀에게 돈은 더이상 타인과의 인연을 잇는 임시 방편이 아니다. 오직 자신의 일상을 단단하게 구축하는 독립의 척도다. 그 시절의 수업료는 고통이 아니라 스스로를 연마했던 고군분투의 흔적이다. 인생의 굴레 속에서 자신의 궤도를 찾아 나아갔던 그녀의 모습은 오늘도 각자의 삶을 버티는 이들에게 하나의 지표가 된다. 삶에 불안이 있더라도 흔들림을 다스리고 중심을 잡는 것, 그것이 곧 온전한 삶의 주체로 서는 방법임을 그녀는 증명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