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푸드앤페스티벌 고문맡아 11년째 이끌어
셰프들 자발적 참여 한국 대표 미식 축제로 성장
가정교사하다 선배 권유로 요리사의 길로
“K푸드 귀하게 여기는 문화 필요
전통 있어야 퓨전도 의미 있어’
전남 신안의 작은 섬마을. 고모와 할머니 손에 자란 아이의 밥상에는 날마다 바다가 올라왔다. 해초를 김치처럼 담근 감태지의 깊은 향, 볏짚불에 구운 말린 생선, 통째로 익어가는 젓갈들. 냉장고도, 요리책도 없던 그 섬 밥상이 아이의 몸속에 한식의 DNA를 또렷이 새긴 덕분일까. 훗날 아이는 주미 한국대사관 총주방장을 거쳐 포브스 ‘성공한 아시아 여성 50인’에 이름을 올린다. ‘한식의 대모’이자 ‘셰프의 셰프’로 불리는 조희숙(68) 셰프. 그는 11년째 제주푸드앤와인페스티벌(JFWF) 고문을 맡아 제주 식재료를 활용한 미식을 알리는 데도 힘을 쏟고 있다. 그를 사로잡은 한식의 진정한 매력은 어떤 것일까.
◆JFWF를 한국 대표 미식축제로 이끌다
지난 4일 제주시 토토아뜰리에에서 열린 2026 JFWF 마스터 셰프 클래스. ‘프렌치돌’ 장한이 셰프(한이서울)와 ‘공사판 셰프’ 정우영 셰프(트리플 본즈) 등 흑백요리사 출연 셰프들이 진행하는 클래스 현장이 술렁였다. 조 셰프가 얼굴을 내밀었기 때문이다. 작은 체구이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고수의 내공이 뿜어져 나오는 그는 후배들과 요리 실습 현장을 돌며 참가자들에게 자신의 노하우를 아낌없이 전했다.
하지만 막상 인터뷰를 시작하자 “원래 말을 잘 못하는데 와인 한잔하면 좀 낫다”며 소녀처럼 쑥스러운 표정이 얼굴에 번진다. 마스터 클래스 음식과 페어링한 스페인 와인 한 모금을 들이켜고 10여분이 지났을까. 어색한 표정이 가신 그는 드디어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기 시작한다.
2016년 시작해 올해 11회를 맞은 JFWF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미식축제로 성장했다. 제주 식재료 미식을 선보이는 갈라디너, 미래 셰프들에게 선배들의 노하우를 전하는 마스터 클래스, 내로라하는 셰프들이 모여 실력을 겨루는 고메셰프, 제주 미식을 대표하는 레스토랑이 대거 출동해 스페셜 메뉴를 선보이는 고메디너, 달콤한 미식 여행 디저트 페어, 식문화를 탐구하는 미식심포지엄, 프리미엄 와인을 한자리에서 만나는 제주테이스팅 등 다채로운 행사가 5월23일부터 6월13일까지 제주 전역에서 펼쳐졌다.
JFWF와 조 셰프의 인연은 1회 때부터 시작됐다. 평소 친분이 있던 정문선 JFWF 이사장(현대비앤지스틸 부사장)의 거듭된 요청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겠다는 마음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유명 셰프를 섭외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대부분 자신의 업장을 관리하느라 시간 내기 어려운 데다 참여의 필요성을 설득하기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어렵게 초빙하더라도 그들에게 걸맞은 대우와 조리 환경을 갖추기도 버거웠다. 특히 수백 명이 먹을 고품질 요리를 한꺼번에 준비하는 일은 복잡한 수학공식처럼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그동안 수많은 위기가 찾아왔고 과연 이 행사가 계속 갈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여러
차례 들었죠. 누가 상을 주는 것도 아니고 돈이 되는 것도 아닌데 정 이사장이 왜 이렇게 힘들게 행사를 이끌어 가는지 안타까울 때도 많았답니다.” 하지만 정 이사장은 현대가(家)답게 소리 없는 불도저처럼 뚝심으로 밀어붙였고, 10년을 넘기자 비로소 희망이 생겼다.
“올해 행사는 맛깔나게 차린 한상처럼 모든 프로그램이 물 흐르듯 진행됐어요. 처음으로 ‘이제 되겠다’는 확신이 들더군요. 예전에는 셰프들을 어렵게 모셔왔지만 지금은 후배들이 서로 먼저 참가하고 싶어할 정도로 위상이 높아졌다는 점이 가장 큰 변화예요. 셰프들은 이제 자신이 만든 요리로 소비자들과 교감하는 일 자체를 즐긴답니다. 셰프들도, 미래의 셰프를 꿈꾸는 학생들도, 제주 식재료 생산자들도 JFWF에서 원하는 목적에 맞는 결과를 가져가는 구조로 자리를 잡았다고 자평합니다.”
◆김치도 와인처럼 등급 매겨야
JFWF에서 조 셰프의 역할은 기획보다 ‘중재’에 가깝다. 셰프들의 세계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후배들이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고, 대량 조리에서 발생하는 실질적인 문제들을 컨트롤한다. ‘셰프의 셰프’라는 별명처럼 그가 고문을 맡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후배 셰프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구심점이 되기도 한다.
그는 제주 식재료에 남다른 애착도 있다. 신라호텔 재직 시절 제주 신라와 교류하면서 첫 인연을 맺었고, JFWF를 통해 제주 식문화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갔다. 화산 지형의 검은 흙과 비바람이 빚어낸 담백한 채소, 고춧가루보다 된장 중심의 조리법, 바다를 생계의 터전으로 삼아온 여성들이 만들어낸 단출하고 솔직한 상차림. 그는 이를 “양념이 필요 없을 만큼 재료 자체가 훌륭한 음식”이라고 정의한다.
요즘 K콘텐츠가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면서 김치를 비롯한 한식이 외국인들에게 건강식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한식 세계화를 이야기하는 조 셰프의 발언은 거침없고 단호하다. 특히 김치에 대한 문제의식은 날카롭다. “우리나라 식당에서 김치는 공짜로 무한 리필되는 음식이에요. 그러면 좋은 재료로 담근 국산 김치를 쓸 수 없죠. 결국 중국산 대량생산 김치가 시장을 채우게 됩니다. 이대로 가면 김치는 중국 음식이 됩니다.”
그가 내놓은 해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등급이다. “와인을 보세요. 프랑스 사람들이 집에서 직접 담가 마시던 술이 와인이에요. 그걸 빈티지별로, 포도밭별로, 생산자별로 등급을 매겨서 세계인이 기꺼이 돈을 내고 마시는 문화를 만들었잖아요. 이탈리아의 발사믹 식초나 올리브오일도 마찬가지죠. 김치도 숙성도, 재료, 지역에 따라 얼마든지 등급을 매길 수 있어요. 우리가 하기 나름입니다.”
그 전제는 소비자의 인식 변화다. 음식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문화, 반찬을 남기고 식재료를 낭비하는 습관이 바뀌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재료도 제값을 받지 못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단순한 식문화론이 아닌, 오랜 현장 경험에서 우러난 절박함이 담겨 있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 이끈 셰프의 길
조 셰프의 어린 시절은 유별났다. 광주에서 태어나 3살 때 전남 신안의 섬으로 보내졌다. 어머니보다 더 좋아하던 고모를 따라갔다가 끝내 떨어지지 않으려 했고, 그대로 섬에 남았다. 9살까지 할머니, 삼촌, 고모들과 함께 살던 그는 아버지와 오빠가 데리러 왔을 때 그제야 친부모와 형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털어놓는다.
섬에서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특히 할머니가 담갔던 감태지, 해초를 숙성시킨 그 낯선 음식의 향이 절대 지워지지 않는다. 잡어 회무침, 볏짚불에 구운 말린 생선, 통마리 젓갈 등 냉장고가 없던 시절의 섬 밥상은 그의 소울푸드로 남아 있다. “그 향을 지금은 만나기 어려워요. 감태지를 담그는 곳이 거의 없고, 그때의 맛 그대로인 음식은 이미 사라진 것도 많습니다.”
인생은 참 알 수 없다. 조 셰프가 그렇다. 아버지 손에 이끌려 서울로 온 그는 수도여자사범대학(현 세종대학교) 가정교육과에 진학했다. 가정이 건강해야 사회가 건강하다는 믿음, 그리고 가정 선생님이 되겠다는 꿈이 있었단다. 임용고시에 합격해 전남 고흥 점암중학교에서 가정 교사로 2년을 보냈다. 안정된 삶을 흔든 것은 대학 동아리 선배의 한마디. 세종호텔 주방에서 일하던 선배가 함께 일하자고 제안했고, 방학에 잠시 거들려고 들어간 주방이 그를 요리의 세계로 끌어들였다.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었어요. 밤마다 끙끙 앓았다고 엄마가 나중에 말해 줬을 정도였죠. 그런데도 떠나지 못했어요.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막연히 내가 이 일을 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 ‘근거 없는 자신감’이 결국 그를 교단 밖으로 끌어냈다. 1983년 세종호텔 한식당 은하수에 입사해 10년을 보내며 한식 조리의 기초를 다졌고, 노보텔 앰배서더 서울 강남 개관 때 한식과장으로 합류했다.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호텔 서울 파르나스 한식과장을 끝으로 조리복을 내던지고 경남 남해전문대학 전임강사로 교단에 다시 섰지만, 요리는 그의 숙명이었나 보다. 서울신라호텔의 ‘월드베스트 호텔’ 구상에 이끌려 한식당 서라벌을 이끄는 조리부장을 맡았다. 다시는 조리복 모자를 쓰지 않겠다며 마지막 모자에 사인까지 했던 그가 다시 모자를 쓴 순간이었다.
이후 2006년 워싱턴 주미 한국대사관 총주방장으로 향했다. 귀국 후에는 우송대학교 외식조리학과 교수를 맡아 본격적으로 후학을 양성했다. 또 사단법인 아름지기 식문화연구 전문위원으로 활동하며 전통 한식문화연구소 겸 레스토랑인 ‘온지음’의 기틀을 구축한 뒤, 2018년 후배 요리사들에게 노하우를 전수하는 공간 ‘한식공방’을 열었다. 이어 2019년 서울 원서동에 문을 연 한식 파인다이닝 ‘한식공간’이 미쉐린 가이드 서울 1스타를 받으며 이름을 제대로 알린다. 2020년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 어워드 ‘아시아 최고의 여성 셰프’, 2021년 미쉐린 가이드 서울 ‘제네시스 멘토 셰프 어워드’ 한국 최초 수상으로 ‘셰프의 셰프’라는 별명도 얻는다.
◆오리지널 있어야 섞는 것도 의미 있어
조 셰프는 지난해 아들 이민재 셰프와 서울 을지로에 캐주얼 반상 레스토랑 ‘한식공간 소반’을 열었다. 고집스럽게 한상 차림을 고수하는 이유는 하나다. 젊은 셰프들에게 다양한 전통 반찬을 몸으로 익히게 하기 위해서다. “식당 창업 전문가들이 그러더라고요. 한식 밥상은 골병들고 돈이 안 남는 메뉴 중 첫째라고. 그래도 내가 할 수 있을 때 남겨야겠다는 생각이에요. 후배들에게 물려줄 재산은 없지만, 이것만은 남기고 가야 합니다.”
조 셰프는 전국 수십여 사찰을 다니며 사찰음식 전문위원으로도 활동했다. 각 사찰의 음식에서 그가 주목한 것은 재료를 귀하게 여기고 낭비하지 않는 정신, 그리고 요리하는 행위 자체를 수행으로 삼는 자세다. 후배들이 조언을 구하러 찾아올 때 그가 건네는 말도 결국 같은 맥락이다.
“요즘 셰프들이 외국인들에게 ‘이게 정말 한국 음식이냐’는 핀잔을 받는 일이 있다고 해요. 서로 섞고 퓨전으로 버무린 요리가 넘쳐나는 사이, 오히려 외국인들이 먼저 ‘진짜 한식’을 요구하기 시작한 겁니다. 그래서 오리지널이 있어야 섞는 것도 의미가 생긴다고 늘 강조해요. 뿌리가 없으면 다 뭉뚱그려져 개성 없는 요리가 되고 맙니다. 고유성이 있어야 신비감이 있고, 신비감이 있어야 외국인들이 다시 찾지 않을까요.”
■ 조희숙 셰프는
●1958년 광주 출생 ●명지여고-수도여자사범대학(현 세종대학교) 가정교육학과 졸업 ●경상대학교 대학원 식품영양학과 석·박사 ●경남 남해전문대학 전임강사 ●우송대학교 외식조리학과 교수 ●미국 워싱턴 주재 대한민국 대사관저 총주방장(2006) ● 불교문화사업단 사찰음식 전문위원 ●한식 연구소 ‘한식공방’ 운영 ●한식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한식공간’ 오너 셰프(2018·미쉐린 1스타) ● 국가유산진흥원 한국의집 조리 고문 ●한식공간 소반 오픈(2025) ●포브스 아시아 ‘50세 이상 성공한 아시아 여성 50인’ 선정(2022) ●공저 ‘K FOOD: 한식의 비밀’(2021·디자인하우스) ●공저 ‘요리가 전부는 아니지만’(2021·맛있는책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