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란 간 종전 양해각서(MOU)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3000억달러(약 454조원) 규모로 알려진 이란 재건기금부터 원유 금수 조치 해제까지 확실한 비핵화 성과도 없이 미국이 ‘퍼주기’에 나섰다는 것이다. 미국 정부 당국과 지지층에서조차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과의 협상에서 ‘완패’했다는 시각이 확산하고 있다.
16일(현지시간) 블룸버그 등을 통해 일부 알려진 MOU 내용에 따르면 재건기금에 대해 “미국은 역내 파트너 국가들과 함께 이란 재건 및 경제 발전 계획을 수립한다. 이행 방안은 60일 이내 마련한다”고 규정돼 있다.
로이터통신은 재건기금 전체의 절반 이상이 이미 출자 약정된 상태이며, 한국과 일본,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미국 기업 등이 거론된다고 전했다. 앞서 카타르가 기금 조성을 제안했으며, 미국 정부의 ‘조율’하에 걸프 국가들과 동아시아 국가들의 민간부문 투자를 전제로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대출 제공, 신용공여, 시설 복구 투자 등이 포함될 수 있으며, 투자 대상은 에너지, 물류, 제조업, 운송 인프라 등으로 제시됐다.
미국이 동맹국과 상의 없이 대이란 전쟁을 시작해 놓고 ‘뒤처리’는 동맹국 기업들에 미루는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 기금은 사실상 ‘보상’ 성격이 강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금에 대해서는 부인하지 않으면서 “미국은 단 10센트도 쓰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19일 서명 직후 이란 원유 금수 조치를 임시 해제할 것이라는 보도도 나왔다. 제재 면제 대상에는 이란산 석유 판매에 수반되는 금융 거래와 운송, 보험 등 관련 서비스도 모두 포함된다. 원유 수출 관련 제재가 풀리는 것은 1979년 이란 이슬람혁명으로 미국이 자산 동결·무역 제한 등 제재를 시작한 지 47년 만이다. 이란으로서는 당장 상당한 규모의 현금이 유입돼 일부 숨통을 틀 수 있을 전망이지만, 구체적인 조치에 맞춰 보상하겠다는 미국의 기존 ‘행동 대 행동’ 원칙과는 배치된다.
미국은 동결자금 해제를 비롯한 광범위한 제재 완화는 후속 협상 기간 이란이 핵포기 조치를 할 때만 단계적으로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호르무즈해협 통제권은 이란이 계속 행사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CNN방송은 이날 소식통의 발언을 인용해 현재 종전 합의로는 향후 이란의 호르무즈해협 재봉쇄를 막을 수 없다는 판단을 미 정보당국이 내렸다고 보도했다.
이란 농축 우라늄 처리 문제는 본협상에서 진행되는데, 최종 합의 전까지 이란의 핵 프로그램도 현재 수준으로 유지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당장은 미국이 거둔 실익이 크지 않다는 분석이다.
미 보수계는 이번 종전 합의가 이란의 핵 개발을 충분히 억제하지 못하고, 이란 정권에 경제적 숨통을 틔워 미사일 등 전력 재건을 도울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의 보수성향 칼럼니스트 브렛 스티븐스는 “이란과의 종전 합의는 대참사”라며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정권이 즉각 무너지지 않고 에너지 가격이 치솟자 겁을 먹고 스스로 시작한 전쟁을 포기해 버렸다”고 꼬집었다. 미 미주리 과학기술대 메르자드 보루제르디 이란 전문가는 NYT에 “이란이 이처럼 심각한 군사적 패배를 겪고도 외교적 승리를 거둔 것은 전례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비판 여론을 의식한 듯 트럼프 대통령은 언론에 보도된 합의안에 대해 “최종안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17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프랑스에서 열리고 있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참석 중인 트럼프 대통령은 이같이 말한 뒤 “만약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그들을 향해 총을 쏘고 머리 위에 폭탄을 투하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이란에 대한 즉각적인 제재 완화는 이번 MOU에 포함돼 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