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단백질/ 샤하르 S 리즈크, 매기 M 핑크/ 홍지연 옮김/ 흐름출판/ 2만5000원
2024년 노벨화학상 수상 소식은 과학계에 적잖은 충격을 안겼다. 수상의 영예는 전통적인 생화학자가 아니라 인공지능(AI) 기반 단백질 구조 예측 시스템 ‘알파폴드(AlphaFold)’를 개발한 데미스 허사비스와 존 점퍼에게 돌아갔기 때문이다.
수십 년 동안 실험실에서 연구해 온 과학자들이 아닌 AI 연구자들이 노벨상을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답은 단순하다. 생명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는 데 핵심인 단백질 구조 예측 문제를 AI가 획기적으로 해결했기 때문이다. 알파폴드는 단백질의 아미노산 서열만으로 3차원 구조를 예측하는 AI 시스템이다.
미국 인디애나대 생화학부 교수인 샤하르 S 리즈크와 매기 M 핑크가 함께 쓴 ‘춤추는 단백질’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단백질이 무엇이며, 왜 생명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지를 흥미롭게 풀어낸다.
“우리 세포 하나의 크기가 미국의 평균 가정집만 하다면, 그 안은 포도만 한 것부터 수박만 한 것까지 약 300억개의 단백질로 가득 차 있다. 이 단백질 하나하나에는 우리가 누구이고 어디서 왔는지를 말해주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 이야기는 단순한 가족의 역사에 그치지 않고 우리가 주변의 모든 것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말해주는 진화의 역사이기도 하다. 단백질은 우리의 기원, 더 나아가 생명 자체의 기원까지 들려준다.”(27쪽)
대부분의 사람들은 단백질을 운동선수들이 먹는 닭가슴살이나 단백질 보충제 정도로 생각한다. 하지만 저자들은 단백질을 “생명의 거의 모든 기능을 수행하는 나노 기계”라고 정의한다. 우리가 눈으로 세상을 보고, 귀로 소리를 듣고, 음식을 소화하며, 상처를 치유하고, 기억을 저장하는 과정까지 모두 단백질이 관여한다. DNA가 설계도라면 실제 현장에서 일하는 존재는 단백질이라는 것이다.
책은 생명과학의 오래된 통념에도 도전장을 내민다. 지금까지 생명과학은 유전자 중심의 관점에 익숙했다. DNA가 생명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서사는 강력한 설득력을 지녀왔다. 그러나 저자들은 유전자는 단지 정보를 담은 청사진일 뿐이라고 말한다. 설계도가 아무리 훌륭해도 실제 건물을 짓는 것은 기술자다. 생명이라는 건물을 실제로 구축하고 운영하는 존재가 바로 단백질이라는 설명이다.
저자들은 단백질 과학의 핵심 원리인 ‘구조가 곧 기능’이라는 사실을 흥미롭게 풀어낸다. 단백질은 아미노산 사슬로 만들어지지만, 단순한 사슬 상태로는 아무 일도 하지 못한다. 특정한 방식으로 접히고 비틀어져 독특한 3차원 구조를 형성할 때 비로소 기능이 생긴다. 같은 재료로 만들어졌더라도 어떻게 접히느냐에 따라 독이 되기도 하고 약이 되기도 한다. 생명의 비밀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접혔는가에 있다는 것이다.
단백질의 신비를 보여주는 사례 가운데 꼬까울새 이야기는 놀랍다. 매년 수백 킬로미터를 이동하는 이 작은 철새는 GPS도 나침반도 없이 정확하게 목적지를 찾아간다. 그 비밀은 눈 속에 있는 크립토크롬이라는 단백질에 있다. 햇빛에 반응한 이 단백질은 지구 자기장을 감지해 이를 시각 정보로 변환한다. 저자들은 인간에게는 보이지 않는 ‘북쪽의 색’이 새들의 눈에는 존재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단백질 하나가 완전히 다른 감각 세계를 만들어내는 셈이다.
홍해에 서식하는 모세가자미의 사례도 흥미롭다. 이 물고기는 상어의 공격을 받으면 ‘파르닥신’이라는 단백질을 분비해 상대를 일시적으로 마비시키고 도망친다. 단백질은 단순히 몸속에서 작동하는 분자가 아니라 생존 전략의 핵심 무기이기도 하다.
청자고둥의 독소 이야기도 인상적이다. 청자고둥은 먹잇감을 마비시키기 위해 수백 종의 독소 단백질을 사용한다. 그중 일부는 물고기의 인슐린과 비슷한 구조를 지녀 혈당을 급격히 떨어뜨린다. 그런데 과학자들은 바로 이 독소를 이용해 강력한 진통제를 개발하고 있다. 독이 약이 되는 역설 속에서 단백질의 무한한 가능성이 드러난다.
저자들은 단백질이 개체의 생존을 넘어 지구의 역사까지 바꾸었다고 말한다. 약 3억7000만년 전 식물들이 ‘리그닌’이라는 단단한 물질을 만들어내면서 거대한 숲이 형성됐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를 분해할 효소 단백질이 충분히 진화하지 못해 나무들이 썩지 않은 채 쌓였다. 그 결과 엄청난 양의 탄소가 땅속에 묻혔고, 훗날 석탄과 화석연료가 됐다. 오늘날 인류가 사용하는 에너지원 상당수가 단백질 진화의 산물이라는 사실은 놀랍기만 하다.
질병에 대한 설명도 깊은 인상을 남긴다. 알츠하이머병과 근위축성 측삭경화증(ALS) 같은 퇴행성 질환의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는 단백질의 잘못된 접힘이다. 정상적으로 기능해야 할 단백질이 비정상적인 형태로 변하면 세포가 손상되고 결국 질병으로 이어진다. 특히 저자 매기 핑크가 ALS를 앓았던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대목은 과학적 설명에 인간적 온기를 더한다. 단백질 연구가 단순한 학문적 호기심이 아니라 삶과 죽음을 이해하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저자들이 주목하는 것은 미래다. 알파폴드가 단백질 구조를 예측하는 시대를 열었다면, 이제 인류는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단백질을 직접 설계하기 시작했다. 대기 중 탄소를 포집하는 단백질,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단백질, 항생제 내성균을 제거하는 단백질, 암세포만을 표적으로 삼는 치료용 단백질이 연구되고 있다. 이는 인간의 삶은 물론 지구 생태계 전반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을 품고 있다.
이 책은 눈에 보이지 않는 단백질이라는 작은 존재를 통해 생명의 기원과 진화, 질병과 치료, 그리고 인류의 미래까지 조망한 유용한 과학교양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