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 두 뼘 너비의 냉동고, 16㎝대 폭의 정수기. 유통 대기업들이 자체브랜드(PB) 가전의 무게중심을 ‘소형·슬림’으로 옮기고 있다. 1인가구가 전체 가구의 3분의 1을 넘어선 데다, 2인가구까지 더하면 작은 가전을 찾는 수요층은 더 넓어진다. 좁은 주방과 제한된 수납공간에 맞춘 제품이 PB 가전의 새 승부처가 된 셈이다.
집의 형태는 다양하지만, 혼자 사는 생활에서는 넓은 조리대와 대형 가전을 전제로 한 소비보다 필요한 기능만 갖춘 작은 제품을 선호하는 흐름이 강해지고 있다. 배달 음식과 밀키트, 소분 식재료 소비가 늘어난 것도 소형 냉장·냉동 가전 수요를 키우는 배경으로 꼽힌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롯데하이마트는 PB 브랜드 ‘플럭스(PLUX)’ 신상품으로 ‘120L 초슬림 틈새 냉동고’와 ‘냉온정 정수기’를 선보였다. 냉동고는 폭 356㎜의 슬림형 제품이다. 주방 한쪽 틈새나 수납장 옆 공간에도 들일 수 있도록 크기를 줄인 것이 특징이다.
용량은 120L로 1~2인 가구가 냉동식품, 밀키트, 소분 식재료를 보관하기에 맞췄다. 버튼 조작으로 냉동고를 냉장고처럼 바꿔 쓸 수 있는 컨버터블 기능도 넣었다. 계절이나 생활 패턴에 따라 냉동·냉장 수요가 달라지는 소형 가구를 겨냥한 설계다. 가격은 47만9000원이다.
함께 내놓은 냉온정 정수기는 구독형 모델이다. 36개월 약정으로 운영되며 4개월마다 필터를 교체하고, 12개월마다 클리닝 서비스를 제공한다. 폭은 16.6㎝로 좁은 주방 공간을 겨냥했다. 출수부에는 100℃ 고온 스팀 세척 기능을 적용했고, 내부는 전기분해 살균 방식으로 관리하도록 했다.
플럭스는 롯데하이마트가 1~2인 가구를 핵심 소비층으로 보고 키우는 PB다. 대표 제품인 ‘245L 1등급 냉장고’는 론칭 이후 1년간 약 4만대가 팔리며 냉장고 판매량 상위권에 올랐다. 롯데하이마트는 올해 플럭스 상품군을 대형·생활·주방가전으로 넓히고, 단독 매장까지 열어 PB 가전 매출을 키운다는 계획이다.
소형 PB 가전 경쟁은 롯데하이마트만의 움직임은 아니다. 이마트는 가전 PB ‘일렉트로맨’을 통해 1~2인 가구용 혼족 가전 라인을 일찍부터 키워왔다. 전기포트, 미니 블렌더, 라면포트, 에어프라이어 등 소형 주방가전을 중심으로 상품을 늘리며 ‘필요한 기능만 담은 가성비 제품’이라는 이미지를 쌓았다.
PB 가전의 강점은 가격이다. 유통사가 직접 기획하고 OEM 방식으로 생산하면 중간 유통 단계를 줄일 수 있다. 동시에 매장에서 축적한 소비자 반응을 상품 기획에 반영하기도 쉽다. 제조사 브랜드보다 가격을 낮추면서도, 유통사가 품질 보증과 사후관리를 맡는 구조가 PB 가전 확장의 기반이 됐다.
전자랜드도 PB ‘아낙’을 통해 생활가전과 계절가전, 청소기 등으로 상품군을 넓혀왔다. 최근에는 좁은 집에 맞춘 슬림형 청소기처럼 1~2인 가구와 신혼부부를 겨냥한 제품도 내놓고 있다. 가전 PB가 단순히 저가 상품에 머물지 않고, 생활공간 변화에 맞춘 기획 상품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PB만 작아지는 것은 아니다. 제조사 브랜드도 같은 흐름을 좇고 있다. 하이얼은 폭 35.6㎝의 슈퍼슬림 컨버터블 냉장고를 선보였다. 냉장, 냉동, 김치, 주류 보관 모드를 바꿔 쓸 수 있는 제품으로, 자취생이나 1~2인 가구의 서브 냉장고 수요를 겨냥했다.
롯데하이마트가 내세운 356㎜ 냉동고와 같은 체급이다. 가전 시장에서 ‘크면 클수록 좋다’는 공식이 모든 제품에 적용되던 시대가 지나고 있다는 의미다. 대형 냉장고와 세탁기 중심의 시장은 여전히 크지만, 좁은 주거 공간에서는 남는 용량보다 놓을 수 있는 크기가 먼저 따져진다.
최근 PB 가전의 또 다른 축은 구독과 관리 서비스다. 가전을 한 번 팔고 끝내는 방식에서 벗어나 필터 교체, 클리닝, 보증 연장, 사후관리까지 묶어 고객 접점을 길게 가져가려는 전략이다.
롯데하이마트는 ‘하이마트 구독’ 서비스를 확대하고 있으며, 올해부터는 플럭스 일부 제품에도 구독 모델을 적용했다. 이번 정수기 신제품에 정기 필터 교체와 클리닝 서비스를 붙인 것도 같은 흐름이다. 정수기처럼 위생 관리가 중요한 제품은 소비자가 직접 관리하기보다 정기 서비스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
1~2인 가구는 대형 가전을 한꺼번에 들이기보다 필요할 때 작은 제품을 추가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가격, 크기, 관리 부담이 구매를 가르는 기준이 된다. 유통가 PB 가전이 ‘작고 얇은 제품’에 ‘구독·관리 서비스’를 붙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업계 관계자는 “1~2인 가구는 가전을 고를 때 가격만큼이나 설치 공간과 관리 부담을 중요하게 본다”며 “좁은 주방이나 원룸에도 들어가는 슬림한 크기, 필터 교체·클리닝 같은 관리 서비스가 PB 가전의 경쟁력을 가르는 기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