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대학 입시는 늘 산업의 흥망을 비추는 거울이었다. 1960년대 최고의 자연계 수재들은 화학공학과를 선택했다. 중화학공업 육성이 국가적 과제였던 시절이다. 1970년대는 기계공학과가, 1980년대는 전자공학과가 이어받았다. 그리고 이들이 사회에 진출한 뒤 한국 경제의 주력산업 역시 화학, 기계, 전자로 이동했다. 흔히 말하는 ‘전·화·기’의 전성기다.
인문계도 다르지 않았다. 2009년 로스쿨 도입 이전까지 최상위권 학생들의 종착지는 법학과와 경제학과였다. 1980∼1990년대 입시 성적표 최상단에는 늘 서울대 법학과와 경제학과가 자리했다. 법조인과 경제 관료가 사회적 성공의 상징이었던 시대였다. 그러나 1997년 IMF 외환위기는 청년들의 가치관을 일거에 바꿔 놓았다. 평생직장 개념이 무너지고 대량 실업이 현실화하자, 학생들은 이상보다 안정성을 좇기 시작했다. 그 결과 공대의 위상은 흔들렸고, 의대가 새로운 ‘엘리트 코스’로 급부상했다.
의대 열풍은 이후 20년 넘게 이어졌다. 높은 소득, 안정된 직업, 사회적 명성이라는 삼박자를 갖춘 의사는 수험생들의 가장 확실한 선택지였다. 공대생들조차 의대 진학을 위해 다시 수능을 치르는 일이 일상이 됐다. 주요 대학에서는 공대 신입생의 상당수가 반수에 나서며 학사 운영에 차질을 빚는 일도 비일비재해졌다. ‘의대 광풍’이라는 표현이 과장이 아닐 만큼 그 흐름은 거셌다.
최근 들어 인공지능(AI) 시대 핵심 인프라로 떠오른 반도체 산업이 한국 경제의 새로운 심장으로 부상하면서 의대 철옹성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참여하는 반도체 계약학과, 이른바 ‘삼전닉스’ 학과는 그 상징과 다름없다. 2026학년도 일부 대학 반도체 계약학과의 정시 합격선은 서울대 자연계열을 넘어섰고, 지방 의대보다 높은 성적을 기록한 곳도 등장했다고 한다. 의대와의 점수 차이도 사실상 오차 범위 수준으로 좁혀졌다. 구직자들이 회사를 고르는 1순위 기준이 ‘연봉과 성과급’이라는 점이 입시에도 그대로 반영된 셈이다. 반도체 계약학과 합격선이 의대·치대·한의대(의·치·한) 계열과 어깨를 나란히 할 날이 머잖아 보인다. AI 로봇 의사의 등장도 그만큼 가까워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