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으로 파급효과가 크거나 복잡한 사건이 나날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법원 내 합의재판부를 예외적으로 확대해 구성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구체적으로 법원조직법에 따른 기존 3인 합의재판부에 더해 일본과 독일, 프랑스가 일부 채택하고 있는 5인 합의재판부를 추가로 꾸리자는 것이다. 쟁점이 복잡하고 기록 분량이 방대한 이른바 ‘복잡사건’이 증가하는 추세에서 충실한 심리를 위해선 재판부 구성원 수를 유연하게 조정해 대응해야 한다는 취지다.
◆“늘어나는 복잡사건 대응 필요”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윤동현 사법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인천지법 판사)은 최근 ‘재판부 구성의 유연화에 관한 연구’ 보고서를 통해 이 같은 방안을 제시했다. 현행 법원조직법은 ‘지방법원과 고등법원, 가정·행정·특허법원의 합의재판부는 판사 3인으로 구성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수십년간 유지된 이 제도가 고난도 사건 증가와 같은 최근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윤 연구위원은 “집단피해 불법행위 사건,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복잡사건, 사회적 파급효과가 큰 사건 등이 증가하지만 현행 제도는 이러한 특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짚었다.
당사자가 수백명 이상인 대규모 민사 사건 수는 날로 늘어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1심 민사 본안 사건 중 소송 당사자가 100명 이상인 사건은 2023년 494건에서 2024년 902건으로 두 배가량 늘고, 당사자가 1000명 이상인 사건은 2023년 41건에서 2024년 249건으로 여섯 배가량 폭증했다.
사건의 복잡성을 보여주는 사건 기록의 분량도 늘어나고 있다. 중앙지법 1심 민사합의부에서 처리한 사건들의 평균 기록면수는 2021년 927면, 2022년 992면, 2023년 1140면, 2024년 1362면으로 증가했다. 판결문 분량도 증가 추세다. 중앙지법 1심 형사합의부가 작성한 평균 판결문 면수는 2016년 16.55면에서 2024년 21.96면으로 늘었다.
특히 정치·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일수록 판결문과 사건 기록 규모가 방대하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1심 사건의 판결문은 총 1206쪽이었으며 공소장도 약 100쪽 분량이었다. 무죄가 확정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부당합병 및 부정회계 의혹 사건의 2심 판결문은 851쪽, 공소장은 133쪽이었다.
◆“이젠 5인 재판부 구성해야”
법원 판단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반응이 날로 커지는 점도 부담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복잡사건과 일반사건을 동일하게 3인 판사 합의체에서 심리하는 현행 제도는 판사들의 업무 불균형을 그대로 방치한다는 지적이다.
윤 연구위원은 “사실관계를 확정하는 업무를 수행하는 하급심에서 기록의 구석구석까지 살펴볼 필요가 있는바, 이는 판사 3명이 정상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부담을 넘어선다”며 “복잡하고 어려운 사건에 관해 다수의 판사를 배치해 업무를 분담하고, 보조 자원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윤 연구위원은 △기록 면수 △증인 수 △쟁점의 복잡성 △사실적·법률적 다툼의 정도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 △요구되는 전문지식의 수준 등을 고려해 판사 5인 확대합의체를 구성할 수 있도록 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을 제안했다.
사건을 배당받은 기존 3인 재판부에서 ‘5인 합의체 회부가 필요하다’고 결정했다면, 해당 법원 판사회의의 2차 심의를 거쳐 기존 3인 재판부에 판사 2인을 추가한 5인 합의체를 꾸리도록 결정하는 구조다.
윤 연구위원은 “다수 판사의 합의체에선 다양한 가능성을 검토한 전제에서 결론이 도출될 가능성이 높고, 극단적인 결론을 도출할 가능성은 낮아진다”고 강조했다. 증인신문과 기록검토, 판결문 작성의 분업화로 사건의 신속한 진행이 가능해진다는 점도 짚었다.
또 민사 소액 사건 중 소가 500만원 이하 등 쟁점이 비교적 간단한 사건이나 고등법원의 행정소송 난민 사건은 합의부가 아닌 단독 판사가 맡도록 하는 안도 제안했다.
◆엇갈린 평가, “처리 속도만 빨라질 것”
법조계에서는 호응과 우려가 엇갈린다.
수도권의 한 고법판사는 “검사 여러 명이 달려드는 대형 사건을 판사 3명만 심리하는 게 과연 맞는지 의구심이 있었다”며 “적어도 사안의 중대성과 복잡성이 큰 사건은 판사 5인의 확대합의체에서 맡는 게 합리적”이라고 찬성했다.
반면 재판부를 확대해도 사건 심리에 별다른 도움은 안 될 것이란 반론도 있다. 또 다른 고법판사는 “판사 5명이 쟁점을 나눠서 심리하고 기록도 나눠서 검토하면 확실히 신속한 사건 진행이 가능하겠지만, 판결문 작성은 논리의 정합성 때문에 결국 주심 판사 1명이 처음부터 끝까지 맡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사건을 확대재판부로 넘기는 과정에서 사건 배당을 담당하는 사법행정권자의 권한이 비대화된다는 우려도 있다.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하급심 유연화 문제는 기존 사무분담 시스템 내에서 다뤄야 할 사안”이라며 “사안의 중대성에 따라 확대 합의체로 올릴지 말지 논의하는 것 자체가 사법 불신을 야기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