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왜 영성을 찾는가—세계사를 움직인 15인의 영성] ④석가모니(釋迦牟尼)
<목차>
<1> 모세-“노예 민족에게 법과 신을 준 사람”
<2> 공자-“혼란한 시대, 인간의 질서를 묻다”
<3> 노자-“세상을 거슬러 흐르지 말라”
<4> 석가모니-“인간의 고통을 정면으로 바라본 사람”
<5> 조로아스터-“선과 악의 전쟁은 어디서 시작됐는가”
<6> 예수-“사랑은 어떻게 세계를 바꾸었는가”
<7> 무함마드-“신앙은 공동체를 어떻게 조직하는가”
<8> 성 아우구스티누스-“인간 내면에도 제국은 존재한다”
<9> 토마스 아퀴나스-“신과 이성은 화해할 수 있는가”
<10> 마르틴 루터-“양심은 교황보다 강한가”
<11> 존 웨슬리-“대중 속으로 들어간 종교”
<12> 라마크리슈나-“모든 종교는 같은 산을 오르는가”
<13> 달라이 라마 14세-“인간은 증오 없이 저항할 수 있는가”
<14> 문선명·한학자-분열된 인류는 다시 한 가족이 될 수 있는가
<15> 간디-“정치는 영혼을 가질 수 있는가”
고통은 왜 생기는가. 종교의 역사는 이 질문에서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인류 역사에서 이 화두를 가장 정면으로 파고든 사람 가운데 한 명이 바로 석가모니(釋迦牟尼)였다. ‘석가족 출신의 성자’라는 뜻을 담은 석가모니는 오늘날 흔히 자비와 평화의 상징처럼 기억된다. 그러나 그의 출발점은 낭만적인 평온함이 아니었다. 오히려 인간 존재의 고통을 끝까지 파고들려는 절박한 문제의식에 있었다.
석가모니의 본명은 고타마 싯다르타. 그는 기원전 5~6세기경 인도 북부의 샤카족 왕자로 태어난 것으로 전해진다. 전설에 따르면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수행자가 되는 것을 원치 않았고, 세상의 괴로움을 보지 못하도록 궁궐 안에서 금이야 옥이야 길렀다고 한다. 젊은 싯다르타는 권력과 부, 가족, 안락함까지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없는 인생처럼 보였다.
◆사문유관(四門遊觀), 화려한 왕궁을 흔든 생로병사의 충격
그러나 어느 날 그는 성 밖으로 나가게 되고, 그곳에서 인간 존재의 피할 수 없는 현실과 마주한다. 바로 늙은 사람, 병든 사람, 죽은 사람,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속을 떠나 진리를 찾는 한 수행자(沙門, 사문)의 모습이었다. 불교 전통에서는 싯다르타가 목격한 이 네 가지 장면을 ‘사문유관(四門遊觀)’이라 부르는데, 이는 설화를 넘어 인간 정신사의 거대한 상징으로 읽힌다. 누구나 젊을 때는 삶이 영원할 것처럼 느끼지만, 결국 인간은 늙고 병들고 죽는 존재라는 현실을 피해 갈 수 없다.
이 냉혹한 진실 앞에 왕궁 안의 행복은 너무나 무력했다. 인간 존재가 근본적으로 불안정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는 더 이상 이전처럼 살아갈 수 없었다. 당시 인도 전역에는 제사와 의식을 중시하는 브라만교 사제들, 고행자, 떠돌이 철학자들이 저마다의 길을 걸으며 활동하고 있었고, 싯다르타 역시 그 거친 흐름 속으로 스스로를 던지게 된다.
결국 그는 아내와 어린 아들을 뒤로한 채 궁을 떠난다. 이것이 유명한 ‘출가’ 이야기다. 이 장면은 후대에도 오랫동안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가족을 뒤로한 선택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하는 세속적 비판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의 출가가 사적인 현실 도피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고통을 해결하려는 치열한 공적 헌신이었다는 점이다. 가장 사적인 인연을 끊어냄으로써, 오히려 세상의 모든 고통받는 이들을 품으려는 역설적인 자비의 시작이었던 셈이다.
왕궁을 떠난 그는 당시 인도 사회의 다양한 수행법을 찾아다녔다. 깊은 명상도 배웠고, 극단적인 고행도 시도했다. 전해지는 기록에 따르면 그는 죽음에 이를 정도로 곡기를 끊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는 깨닫는다. 인간을 구원하는 길은 극단적 쾌락에도, 극단적 고행에도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이것이 불교의 핵심 개념인 ‘중도(中道)’의 출발이다. 이후 그는 보리수 아래 앉아 깊은 명상에 들어갔고 마침내 깨달음을 얻는다. 불교에서는 이를 ‘성도(成道)’라고 부르며, 그 순간부터 사람들은 그를 ‘붓다(Buddha)’, 즉 “깨달은 사람”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고행을 넘어 ‘중도(中道)’로, 보리수 아래서 붓다가 되다
붓다가 깨달은 진리는 비교적 명징하면서도 급진적이었다. 인간은 누구나 본질적으로 괴로움(苦)을 수반하며, 그 괴로움은 인간의 끝없는 집착과 욕망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더 많이 가지려 하고, 더 오래 젊고 싶어 하며, 사랑과 권력과 성공을 영원히 붙잡으려 하기 때문에 인간은 끊임없이 불안해진다고 보았다. 당시 사람들은 우주를 창조하고 인간의 운명을 결정하는 절대적인 신이 존재하며, 그 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복종해야만 고통에서 벗어나거나 좋은 내세를 맞이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붓다는 이를 정면으로 거부했다. 그는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은 절대자가 아닌 인간 내면에 있다고 확신했다.
주목할 점은 불교가 창조주 신에 대한 맹목적 믿음보다 인간 자신의 마음과 깨달음을 더 중요하게 본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붓다는 신비주의적 기적보다 인간 내면의 성찰을 강조했다. 그는 제자들에게 자신을 믿거나 의존하지 말고, “스스로를 등불로 삼으라(자등명, 自燈明)”고 일갈했다. 이 한마디는 불교적 정신을 가장 잘 상징한다. 진리는 그 어떤 제도나 교리, 전통이 아닌, 오직 철저한 자기 성찰 속에서만 발견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붓다는 깨달음 이후 약 45년 동안 인도 각지를 돌아다니며 가르침을 전했다. 그는 왕과 귀족뿐 아니라 평민과 여성, 심지어 천민 계급에까지 격의 없이 다가갔다. 당시 엄격했던 인도의 카스트 신분 질서를 생각하면 이는 가히 혁명적인 행보였다. 그러나 불교 역시 시간이 흐르면서 거대한 종교 체계가 되었고, 지역과 시대에 따라 다양하게 변모했다. 때로는 권력과 결합하기도 했고, 복잡한 교리와 의식 속으로 침잠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거대한 체계의 중심에는 여전히 붓다의 오래된 의문이 서슬 퍼렇게 살아 있다. ‘인간은 왜 괴로운가.’
◆“스스로를 등불로 삼으라”, 신비주의를 거부한 혁명적 영성
불교는 현실을 아름답게 포장하지 않는다. 인간이 늙고 병들고 죽는 존재라는 사실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한다. 그래서 불교는 인간의 환상과 집착을 끊임없이 해체하며 고통의 본질을 직시하게 만든다. 그런 점에서 불교는 종종 ‘리얼리즘의 종교’로 비유되기도 한다. 불교는 인간을 달래기보다 먼저 깨어나라고 가르친다. 이러한 성찰의 힘이 불교를 오랜 세월 한국인의 정신세계에 깊이 뿌리내리게 했다.
오늘날 현대사회는 물질적으로 전례 없는 풍요를 누림에도 인간의 불안과 우울은 도통 사라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더 많은 것을 소유하게 되었지만, 마음의 평안을 얻는 일은 오히려 더 어려워진 듯하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다시 명상과 불교 철학을 찾는 이유가 여기 있다. 마음챙김과 수행, 욕망을 내려놓는 삶의 방식은 이제 서구 사회에서도 거대한 정신적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석가모니는 이미 그 먼 과거에 인간 문명의 오래된 한계를 꿰뚫어 보고 있었을까. 인간은 바깥세계를 정복하면서도 정작 자기 자신의 마음은 다스리지 못한다는 서글픈 사실을 말이다. 그는 고통을 외면하거나 피하지 않고 인간 존재의 가장 깊은 괴로움 속으로 기꺼이 걸어 들어갔다. 그래서 붓다는 한 종교의 창시자에 머물지 않고 인간의 고통을 끝까지 응시한 위대한 사상가로 오늘날까지 기억되는 것이다.
불교 경전 가운데 ‘법구경(法句經)’은 붓다의 어록을 짧은 게송으로 엮은 것으로, 인간 존재와 마음의 본질을 가장 간결한 언어로 담고 있다. ‘법구경’의 핵심은 “마음이 세계를 만들고, 집착이 고통을 만들며, 깨어 있음이 해탈로 간다”는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이 통찰을 전개하는 여섯 개의 기둥이 바로 모든 것은 마음이 앞선다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집착하는 곳에 고통이 생긴다는 ‘집제(集諦)’, 원한은 또 다른 원한을 낳는다는 ‘인과응보(因果應報)’, 현재에 깨어 있으라는 ‘정념(正念)’, 자신을 이기는 것이 진정한 승리라는 ‘자승자강(自勝者强)’, 그리고 스스로를 등불로 삼으라는 ‘자등명(自燈明)’의 가르침이다.
◆‘법구경’의 여섯 기둥, 바깥을 향한 질주를 멈추는 빛
붓다 역시 후계자를 지목하지 않았다. 그는 열반을 앞두고 제자들에게 “스스로를 등불로 삼아라. 그리고 끊임없이 정진하라”고 당부했을 뿐이다. 스승이 지도나 안내서는 건넬 수 있지만, 그 길을 걸어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은 오직 자신의 발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붓다는 진리란 스스로 등불을 밝혀 확인해야 하는 것임을 천명했다. ‘법구경’은 그 방편적 가르침마저 뛰어넘어 인간이 자기 마음을 응시하도록 남겨진 한 줄기의 빛이다.
붓다는 공자와 노자, 그리고 소크라테스와 함께 인류 정신사의 ‘축의 시대’를 대표하는 사상가였다. 인간이 왜 고통받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인류가 처음으로 자기 자신을 본격적으로 성찰하기 시작한 그 시대의 한복판에 서 있었던 것이다. 그에 대한 물음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붓다의 목소리는 지금도 인간의 내면을 향해 조용히 말을 건넨다. “그대, 답을 바깥에서 찾고 있는가, 아니면 마음을 들여다보고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