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비판적인 극사실화로 알려진 이종구(72)는 시대를 향한 첨예한 시각으로 1980년대 민중미술의 흐름을 이끌었다. 정부미 쌀부대 위에 농민의 초상을 그리거나, 이들의 삶을 정물과 풍경에 투영하며 독보적인 리얼리즘 화풍을 확립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전쟁과 학살, 세월호 사건 등 동시대 비극의 현장을 화면에 담기 시작했다. 이종구에게 현실은 언제나 예술적 실천을 추동하는 뿌리이자 강력한 동력이었다.
학고재에서 8년 만에 개최된 개인전 ‘사유: 思惟’는 그간의 사회 고발적 작업과 사뭇 다르게 다가온다. 특정 시대와 사회에 대한 날 선 증언 대신, 제목이 암시하듯 작가는 인간의 실존적 질문으로 나아간다. 이종구는 코로나19 시기를 지나며 큰 수술을 몇 차례 겪고, 생로병사와 삶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마주했다. 몸 밖의 사회를 응시하던 시선은, 몸 안에서 벌어지는 병마와의 싸움이라는 또 다른 현장으로 이동했다.
생로병사라는 거대한 질서 앞에서 현실의 크고 작은 문제들은 힘을 쓰지 못한다. 인간의 유한한 삶을 성찰하며 이종구는 불교의 ‘불이(不二)’ 사상을 주목했다. 불교 경전인 ‘유마경’에서는 일체의 대립을 떠난 경지를 ‘불이’라 부른다. 선과 악, 빛과 어둠, 내 것과 내 것 아닌 것의 경계가 사라져 도달하는 세계를 뜻한다. 그러나 불이는 단순히 ‘둘이 아니다’라는 이분법적 부정에 그치지 않는다. 언어와 개념으로 규정하거나 붙잡을 수 없는 경지다. 유마거사가 침묵으로 설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종구는 이러한 언어도단(言語道斷)의 세계를 극사실적 화법이라는 가장 현실적인 언어로 그려낸다. 사진처럼 정밀한 묘사는 대상이 무엇이든 그것을 가장 충실하고 정직하게 대면하겠다는 의지의 발현이다. 외형과 내면,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나누는 것조차 불이에 어긋난다는 듯이.
◆사유하는 존재
구체적 사건들이 소거된 이번 전시에 등장하는 핵심 모티프는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에 전시되고 있는 두 반가사유상이다. 6-7세기에 제작된 이 조각들은 역사적 유물이나 종교적 산물을 넘어, 현실과 공명하는 동시대적 실재로 화(化)한다. 반가사유상은 깨달음의 형상이기 이전에, 그 자체로 사유하는 존재다. 깊은 사색에 잠긴 모습은 인간이 스스로를 성찰하고 진리에 이르는 과정을 담아낸다. 천 년이 넘는 시간을 건너온 고요한 수행은, 이종구에게 생생한 실재이자 우리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삶의 태도로 다가왔다.
이종구가 오랜 시간 치열하게 들여다본 현실의 부조리는 시대에 따라 다른 얼굴로 발현되었지만, 본질적으로는 모두 인간의 욕망에 기인한 것이었다. 반가사유상은 사유를 통해 스스로를 성찰할 수 있는 인간 내면의 가능성을 상징한다. 만물에 불성(佛性)이 깃들어 있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작가는 사회 속에서 되풀이되는 비극을 탈피하기 위해 우리 스스로가 사유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묵직한 제언을 건넨다.
불이의 개념을 강조하기 위해 작가는 역설적으로 화면을 둘로 나눈다. 반가사유상을 비롯한 불상들은 불과 물, 그리고 인간의 나체, 개, 나무 같은 현세의 존재들과 나란히 놓인다. 혹은 앞과 뒤가 본래 다르지 않다는 듯, 하나의 상(像)을 앞뒤로 나누어 함께 배치하기도 한다. 화면은 물리적으로는 갈라지지만 분리되지 않는다. 인간의 유한한 신체는 법신(法身)이 되고, 앞과 뒤, 좌와 우, 원인과 결과는 하나의 세계 안에서 서로를 비춘다.
◆푸른 사유의 밤
사회비판적 풍토를 담고 있었던 전작의 채도 높은 파랑과 달리, 이번 전시를 지배하는 색채는 한층 침잠된 코발트블루다. 작가는 지리산 법계사와 실상사 등 오래된 사찰과 그곳에서 마주한 석탑, 바위산을 푸른 색조 속에 담아냈다. 이 깊고 어두운 파랑은 인간의 오랜 염원이 담긴 인공물과 자연을 함께 품어내며 화면 곳곳에서 피어나는 붉은빛과 대비를 이룬다.
불교에서는 진리를 모르는 어리석음을 빛이 없는 상태, 즉 무명(無明)이라 한다. 이종구의 블루는 어둡지만 암전의 상태는 아니다. 그것은 고요한 사유가 지속되는 밤의 색으로, 붉은 깨달음의 빛이 점등할 수 있도록 토대가 되어주는 색이다.
탑은 밤하늘의 달이 그러하듯 스스로 빛나지 않지만 빛을 머금고 반사한다. 이종구의 화면에서는 흡사 반가사유상처럼 단단히 제 자리를 지킨 채, 빛을 받고 세상에 되비추는 ‘사유의 주체’로 그려진다. 탑이 관조하는 깊고 푸른 세계는 눈앞에 ‘펼쳐진’ 외경(外景)이자 내면의 심상(心象)이기도 한, 안과 밖이 하나된 불이의 풍경이다.
‘사유_예토(팔레스타인)’에서는 참혹한 전쟁의 현장을 울트라마린 색으로 물들이고 반가사유상과 배치한다. 인간의 욕망이 존엄을 짓이기며 자행되는 전쟁은 그 자체로 어둠이다. 그러나 화면이 끝내 검지 않다는 것은, 잔혹한 현실 속에서도 인간에 대한 신뢰와 회복의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는 작가의 ‘낙관적 리얼리즘’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종구의 파랑은 ‘밤’을 그리지만 절망을 받아 적지 않는다. 어둠을 회피하지 않고 받아들이되, 그 속에서 빛이 생성되는 순간을 주시한다. 이는 사회의 부조리함을 고발하는 가운데에서도 인간에 대한 믿음을 거두지 않았던, 민중미술 시절부터 면면히 이어져 온 작가의 태도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종구의 블루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현실주의자의 색이라 할 수 있다.
◆삶의 자리로
구체적인 현장 고발에서 출발하여 반가사유상이라는 상징을 통해 ‘사유’라는 방법론을 제시하는 이종구의 예술적 여정은, 결국 ‘인간답게 사는 세상’에 대한 근원적인 답을 모색하는 리얼리스트의 필연적 흐름으로 보인다. 이종구는 평생 문제를 제기해 온 화가다. 평화를 위해 불편한 현실을 회피하지 않았고, 언제나 타협 없는 길을 택했다. 이번 전시 역시 인간 내부의 욕망에서 비롯된 폭력을 직시하고 극복하려는 실천의 연장선에 있다.
이종구에게 내면은 삶을 벗어난 도피처가 아니라,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가장 구체적인 현실이자 또 다른 형태의 전장(戰場)이다. 그는 지금도 현실을 향해 있다. 다만 그 현실의 영토가 사회적 모순에서, ‘그 모순을 넘어서기 위해 인간은 어떤 정신적 태도를 지녀야 하는가’라는 실존적 질문으로 확장되었을 뿐이다.
치열한 전쟁을 지나, 사유는 삶의 자리로 돌아온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신리사 미술사·학고재 기획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