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를 걸기 전 여러 경우의 수를 생각하느라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사회복지 관련 업무를 하는 홍모(30)씨는 업무상 전화를 걸어야 할 때면 먼저 긴장부터 된다. 자신의 용건을 정확히 전달할 수 있을지, 검색하면 나오는 정보를 괜히 묻는 것은 아닌지 걱정돼서다. 예상과 다른 답변이 나오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등을 미리 생각하다 보면 전화 버튼을 누르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
홍씨는 “처음 회사생활을 시작했을 때 팀장님과 함께 쓰는 사무실로 전화가 오면 갑자기 긴장돼 응대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면서 “전화하기 전에는 아예 대본을 써두고 상대방이 할 만한 질문까지 정리한 뒤 통화를 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대면 상황에서는 상대방 표정이나 반응을 보면서 대화할 수 있지만 전화로는 상대방이 화가 난 상태인지, 평소처럼 말하는 것인지 파악하기 어렵다”며 “상대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해 다시 물어봐야 할 때 민망하고 죄송한 마음이 들어 통화 자체를 꺼리게 된다”고 털어놓았다.
◆ 전화보다 문자…MZ 직장인은 왜 통화를 어려워할까
MZ세대를 중심으로 업무 중 전화 통화에 부담이나 불안을 느끼는 이른바 ‘콜포비아(Call Phobia·전화 공포)’를 겪는 직장인들이 많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이후 실시간 소통에 대한 부담이 커진 데다, 타인의 실수나 서툰 반응을 쉽게 용납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까지 겹치면서 전화에 대한 불안이 커졌다고 분석한다.
콜포비아 현상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도 쉽게 확인된다. 직장에 입사한 지 한 달 됐다고 밝힌 한 누리꾼은 “전화 공포증 때문에 정신과 다니면서 약 먹고 있는데도 나아지지 않고 있다”며 “매일 아침 출근하면 퇴근할 때까지 전화 문제로 계속 걱정한다”고 전했다. 영업직에 종사한다고 밝힌 또 다른 누리꾼도 “콜포비아가 갈수록 심해진다”며 “긴장돼서 말문이 막히고 심장 뛰고 심하면 손을 떤다. 이거 정신과 가야 하냐”고 토로했다.
학계에서도 ‘콜포비아’ 현상에 주목하고 있다. 한국언론학회에서 2024년 발간한 ‘MZ는 왜 전화를 두려워하는가?’ 보고서에 따르면, 20~30대는 40~50대보다 문자 선호와 전화 불안 수준이 모두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이러한 차이가 사회 불안과 문자 소통이 주는 통제감을 선호하는 경향과 관련이 있다고 봤다. 전화는 상대방과 실시간으로 상호작용해야 하는 만큼 즉각적인 대응을 요구하는 반면, 문자메시지는 답변을 고민할 시간이 있고 내용을 수정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
어릴 때부터 문자메시지를 주된 소통 수단으로 사용해 온 세대일수록 문자의 편집과 통제 기능에 익숙해져 있다. 이러한 탓에 충분히 내용을 정리할 시간을 확보하기 어려운 전화 통화는 상대적으로 낯설거나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 있는 것이다.
연구 결과 20·30대는 40·50대보다 문자메시지를 더 자주 이용하고, 문자 소통에 대한 평가도 더 긍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문자 선호 경향과 전화 불안 수준 역시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반면 40·50대는 전화 통화를 비교적 자주 하고 전화에 대한 태도도 긍정적이었으며, 문자 선호와 전화 불안 수준은 낮은 편이었다.
지난해 10월 HR테크기업 인크루트가 회원 63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조사 결과를 보면, 세대별 가장 선호하는 의사소통 방식으로 Z세대는 ‘메신저’를 X세대는 ‘대면’ 방식을 꼽았다. 특히 Z세대의 51.6%는 메신저 의사소통을 가장 선호했다.
◆ 코로나 이후 두드러진 콜포비아...경쟁 사회도 한몫
전문가들은 코로나19 당시 재택근무 등으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실시간 소통에 부담을 느끼는 사람이 늘어난 것으로 보고 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전화가 직접 만나는 것은 아니지만 상대방의 목소리를 듣고 즉각 반응해야 한다는 점에서 대면 소통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며 “상하관계가 비교적 뚜렷한 국내 조직문화 특성상 전화에 부담을 느끼는 사람들이 원래도 있었지만 코로나19 이후 이 같은 현상이 더욱 두드러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콜포비아 해결에 가장 좋은 방법은 노출 치료”라면서 “전화가 왔을 때 어떤 상황이 발생할 수 있고, 이에 어떻게 대응할지 미리 생각해 보는 것도 부담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전화에 대한 두려움을 단지 개인의 문제로만 볼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임 교수는 “직장이나 학교 등 자신이 속한 사회가 보다 부드럽고 안정적이고 수용적인 분위기라면 콜포비아 역시 줄어들 수 있다”면서 “지금처럼 굉장히 불안하고 경쟁과 비교가 심한 사회에서는 콜포비아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