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KOSPI)가 지난 18일 사상 처음 9000선을 돌파하며 한국 증시 역사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과거 일부 투자자의 영역이던 주식시장이 전 국민의 관심사가 되면서 대한민국이 ‘주식 광풍’에 휩싸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스피’ ‘만이천피’ 전망이 나오는데도 놀라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인공지능(AI) 관련 기업들의 성공이 동아시아 전역에 투자 열풍을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일부 투자자들은 현실 감각을 잃을 정도의 수익을 경험하고 있다”고 전했다.
어지러운 코스피 랠리의 중심에는 이른바 ‘삼전닉스’(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자리 잡고 있다. AI 반도체 열풍 속에서 두 회사 시총은 불과 반년 사이에 3∼4배 폭등하면서 시중의 자금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 올해 1분기 보고서를 제출한 328개 대기업의 영업 이익 156조원 가운데 삼전닉스가 60.8%인 95조원을 독식했다. 그러다 보니 시총 1∼2위를 엎치락뒤치락하는 두 회사가 코스피 시총의 54.60%(19일 기준)를 차지하며 시장을 좌지우지한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제도적 노력과 AI 시대 초호황 사이클로 들어선 반도체 기업의 기술력, 글로벌 유동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면 다행이다. 한국 기업이 시장에서 이뤄낸 가격의 정상화는 두 손 들고 반길 일이다. 하지만 화려한 숫자의 향연을 보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찝찝함이 가시질 않는다.
코스피 상승의 원동력은 ‘유동성’이다. 상승 랠리 속에서 한 달 넘게 외국인의 매도물량을 받아낸 건 개미와 기관투자자다. 그 돈이 어디서 나왔을까. ‘포모’(FOMO·상승장에서 나만 소외의 공포) 심리에 편승한 ‘빚투’(빚내서 투자)가 37조원을 넘어섰다. 현기증 나는 ‘롤러코스피’ 장세에서 자칫 급증한 주식 담보 대출과 미수금은 하락장에서 투매를 촉발할 수 있다. 조정이 시작되면 그간 소외된 종목도 수렁으로 빠질 수 있다는 공포가 시장을 짓누른다. 오죽했으면 최근 블룸버그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스페이스X가 새로운 ‘밈주식(Meme Stock)’이 됐다”고 경고했을까. 조단위 회사가 입소문에 움직이는 밈주식이라는 건 믿기 힘들다.
하지만 코스피가 장중 9300선을 돌파한 19일 코스피 시장에서 상승 종목은 고작 53개에 불과했다. 무려 857개 종목은 하락했다. 6월 1일에서 19일까지 946개 종목 중 19.1%인 181개만 올랐다. 하락 종목은 741개로 78.3%에 달했다. 상투에 물리거나 빚투에 나선 개미들이 웃지 못하는 이유다.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도 깊다. 주가 쏠림은 본질적으로 취약성을 안고 있다. AI 사이클이 조정·침체 국면으로 접어들거나 수요·가격이 흔들리는 순간 파장은 가늠조차 하기 힘들다. 투자·고용·내수 등 실물경제 전반으로 전이될 수 있다.
이뿐이 아니다. 주식시장에서 나온 돈이 생산적 투자 대신 부동산 등 자산시장으로 유입되는 것도 우려스럽다. 국토부에 의하면 올해 1∼4월 주식·채권 처분 자금 3조7000억원이 주택 시장으로 유입됐다고 한다. 65%인 2조4000억원이 서울에 집중됐고, 강남 3구와 용산구 등 고가 아파트 지역에 집중됐다니 기가 찰 일이다. “부동산에 묶인 비생산적 자금을 자본시장으로 돌려 생산적 금융을 가속화해야 한다”는 대통령의 말이 무색할 정도다.
삼전닉스에서 촉발된 수억 원의 반도체 성과급과 사내대출까지 수도권 집값을 흔들고 있다. 화성 동탄 등 경기 남부권은 ‘광풍’이 불고 있다. 동탄은 2∼3주 사이에 수억 원씩 급등하면서 ‘부르는 게 값’이다. 집주인이 2배의 위약금을 물고 호가를 높이는 ‘배액 배상’이 난무한다. 계약 파기를 막기 위해 매수인의 ‘익일 중도금 납부’까지 등장했다. ‘반도체 머니’로 성남 분당구와 수정구, 과천, 하남, 용인 수지구, 안양 동안구 등은 전고점을 넘어섰다. 실수요자는 밀려나고 현금 부자만 살아남는 악순환의 연속이다. 자산의 양극화는 가격 통제가 더는 정책 도구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방증이다. 코스피 잔치가 독배(毒杯)가 되지 않으려면 경제의 체질부터 개선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