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의 1심 재판부가 이른바 '노상원 수첩'을 근거로 윤석열 전 대통령이 국회를 대신할 비상입법기구를 창설해 헌법을 개정하려 했다고 판단했다.
노상원 수첩에 대한 증명력이 법원에서 처음으로 인정된 만큼 수첩에 적힌 문구에 대한 구체적인 해석이 제시된 것 또한 이번이 처음이다.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이진관 부장판사)는 박 전 장관의 내란 중요임무 종사 등 혐의 1심 판결문에서 "윤석열 등이 과거 국가보위입법회의와 같이 국회를 대신할 비상입법기구를 창설해 헌법을 개정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재판부는 노상원 수첩에 적힌 각 문구에 대한 해석과 실제 실행된 부분을 조목조목 짚는 과정에서 이같이 짚었다.
'헌법 개정(재선∼3선) 국가안전관리법 제정'. '선거제도 개선-국회의원 숫자. 1/2' 문구에 대해 별도의 각주를 달아 윤 전 대통령의 헌법 개정 계획이 엿보인다고 남긴 것이다.
최상목 전 경제부총리에게 윤 전 대통령이 '국가비상입법기구 관련 예산을 편성할 것'이라는 지시사항이 담긴 문건을 교부한 것도 이러한 계획에 부합한다고 재판부는 설시했다.
공직선거법에 따라 국회의원 정수는 300명으로 정해져 있고, 이를 줄이기 위해서는 헌법을 개정해야 하며 헌법 개정을 위해서는 재적 의원의 3분의 2 이상 찬성과 국민투표가 필요하다.
재판부는 이러한 절차적 한계를 짚으며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통해 과거 국가보위입법회의와 같은 입법기구를 창설하려 했다고 봤다.
국가보위입법회의는 전두환 정권이 입법권을 장악하기 위해 국회를 해산시키고 창설한 기구다. 국민의 투표를 거치지 않고 전두환 전 대통령이 직접 임명한 의원들로 구성됐다.
재판부는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이 비상계엄 당일 아침 휴대전화에 '국회 해산 가능한가요'를 검색한 것 등을 종합했을 때 윤 전 대통령 등이 이와 같은 입법기구를 창설해 헌법을 개정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 부분은 조은석 내란특별검사팀이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1심 선고에 항소하며 내세운 주된 주장이기도 하다.
특검팀은 수첩에 기재된 군사령관 인사와 국회의원 선거 일정 등을 고려하면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 늦어도 2023년 12월까지 계엄 초기 구상과 기획했으며, 비상입법기구 설치를 통해 입법권을 장악하려 했다고 보고 있다.
박 전 장관의 1심 재판부는 수첩에 이름이 덧칠되는 등 외부인이 알아보지 못하도록 한 부분에 대해서도 "작성 당시부터 민감한 부분이 외부에 알려지지 않도록 보안 유지에 상당히 신경을 쓰고 있었음을 보여준다"고 했다.
수첩 내용 중 '토사구팽', '향후 정국 운용 시 주도권 문제', '수사 진행 시 막을 수 있나' 문구는 "내란 행위 성공 후 다른 권력 집단과 주도권 다툼이 생기거나 그로 인해 자신들에 대한 수사가 진행될 것을 염려해 대응 방안을 고민한 흔적"이라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이외에도 재판부는 '총장 朴:사전교육' 문구는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후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임명한 것과 부합한다고 했다.
또 '여의도-진입-출입구 등 접수', '경력배치/통제-모든 민간출입 통제' 문구는 비상계엄 선포 후 국회에 경찰을 배치한 행위로 이어진다고 판단했다.
전날 재판부는 내란 중요임무 종사 등 혐의로 기소된 박 전 장관에게 징역 25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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