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후배로부터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구상 중이던 장편소설의 장면 묘사를 위해 런던 여행 중이었다. 후배가 있는 곳에서 멀리 떠나 있어서 어떻게 해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더구나 여행 중에 맞닥뜨린 건 환대나 친절이 아닌 이방인에 대한 인종차별적 언사들이었다. “칭챙총, 칭챙총” 조롱하는 청년들, 주문에 늑장 대응하고도 미안해하지 않는 커피숍 직원, 세척하지 않은 욕실용 컵을 갖다 놓는 호텔 리셉션 직원의 서비스…. 짧은 여행이었지만, 인종차별이 담긴 크고 작은 경험들로 그 역시 많이 지쳐가고 있었다. 차별이 전 세계적으로, 역사적으로도 보편화된 현상이구나.
이때 문득 소설가 조해진에게 책 등을 통해 알고 있던 일본 자이니치(재일조선인)들의 삶이 떠올랐다. 지속적이고 구조적이며 강고한 차별, 그 압도적 차별 속에서도 존엄을 지키려 했던 자이니치 서경식 작가와 양영희 감독, 김시종 시인…. 인권운동가 서준식씨의 동생으로 도쿄대 교수 출신 서경식(1951~2023)의 2006년 작 ‘디아스포라 기행’을 시작으로, 자이니치 관련 책들을 찾아 읽었다. 자연스럽게 자이니치들의 삶이 하나둘 마음속으로 들어왔고, 어느 새 자이니치는 그에게 또 하나의 영토가 되었다.
이들의 글과 작품을 읽어가면서 그는 막연히 자이니치의 삶을 담은 소설을 꼭 한 번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특히 2023년 서경식이 작고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 마음이 더 커졌고. 그러다가 2년여 전 이방인에 대한 여러 차별을 경험한 런던의 거리에서, 마침내 소설이 그에게 왔다.
탈북자와 노인, 이주민, 여성 등 주류 세계에서 밀려난 우리 시대 사회적 약자들의 삶을 담담한 문장으로 위무해 온 소설가 조해진이 이번에는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 일본 자이니치들의 이야기를 놀라운 감수성으로 그려낸 중편소설 ‘우리 세희’(현대문학·사진)를 들고 돌아왔다. 지난해 ‘현대문학’에 발표한 작품을 다시 보완 퇴고해 발표한 신작이다.
소설은 전쟁과 내전의 흔적을 주제로 전시한 일본계 영국인 제이비 류를 취재하기 위해 런던으로 출장을 온 자이니치 ‘연주’가 일본에 있는 ‘선생님’ 서정우의 아내 ‘센세’로부터 선생님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연주는 서울 북촌에서 처음 그들을 만났던 어린 시절 추억을 비롯해 자신의 엄마 ‘세희’와 대학시절부터 인연을 맺게 된 ‘선생님’과의 기억과 현재의 상황을 교차시킨다. 엄마와 ‘선생님’ 부부가 어떤 시대를 통과해 왔는지, 자이니치들이 어떤 차별과 상실 속에서 살아왔는지를 상기하며 자신의 삶과 가족의 역사를 마주한다.
“그들에게 고향은 마음이 다치고 몸이 상한 채로 돌아가도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곳이었다. 살면서 겪어온 모든 서러움을 헤아리고 상처를 봉합해 주는 그곳에서 싱그럽도록 젊은 아들이 새로운 삶을 살게 되리라고 그들은 믿었다. 이미 버려진 적이 있으면서, 배신당한 채 다시 떠나오기도 했으면서, 그들은 투명한 수정구처럼 그 믿음을 보듬었다. 보듬을 수밖에 없었다. 끝내 탈피하지 못한 번데기도 꿈에서는 잃어버린 날개를 찾듯이. 처음부터 없던 날개인 줄도 모르고.”
연주는 또한 런던에서 예술가 제이비 류와의 만남과, 제주 4·3의 비극을 다룬 그의 작품을 통해 자이니치의 역사와 폭력의 기억, 그리고 국가와 경계가 개인의 삶에 남긴 흔적을 더욱 깊이 생각하게 된다. 현재와 런던, 과거의 서울과 일본을 오가며 ‘선생님’의 죽음을 예감하는 시간 속에서, 연주는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들, 떠나간 사람들,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을 차례로 소환해 국적과 언어, 경계와 차별 속에서 살아야 했던 이들의 삶을 응시한다. 그리하여 역사와 개인, 상실과 애도, 떠남과 귀환이 포개진 자리에서 끝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소설가 조해진은 왜 자이니치의 삶을 끄집어 우리에게 들려줘야 했을까. 그가 그린 자이니치의 삶과 역사들은 어떤 모습일까. 작가적 여로는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 조 작가를 최근 이메일과 전화로 만났다.
―서경식, 서승, 서준식 형제와 양영희 감독, 김시종 시인 등 실제 인물을 모델로 세웠는데, 왜 이들의 이야기를 소설로 써야 했나요.
“그들의 작품을 접하기 전까지 저에게 자이니치는 일본에 사는 교포 정도에 지나지 않았어요. 저처럼 역사적 맥락 안에서 자이니치를 생각해 보지 않았고 가슴에 품어본 적 없는 분들에게 그들이 왜 일본으로 건너갔는지, 일본에서는 어떤 차별을 받았고, 고국은 그들을 어떻게 대우했는지, 그런 것들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소설에 썼듯, 자이니치는 대부분 강제징용이나 강제징집으로 일본행 배를 탔고 고국으로 어렵게 귀환해도 이용당하기 일쑤였습니다. 체제 선전용으로, 아니면 독재를 위한 간첩으로. 애달픈 삶이었던 셈이죠. 대부분 잊힌 그 애달픈 삶 하나하나를 현재로 가져와 ‘우리’로 불러보고 싶었습니다.”
―소설 속 화자는 세희의 딸 연주인데요, 약한 것 같으면서도 약하지 않고, 사려도 깊어 인상적이었습니다. 작가님이 보이기도 하고요.
“제 소설 속 인물들, 특히 여성 인물들은 대부분 강합니다. 중학교 때는 민족학교 교복을 입었다는 이유로, 고등학교 시절엔 학교의 유일한 자이니치여서 온갖 차별을 받지만 대학에서는 시위에 앞장서고 후배들에게 한국어(조선어)를 가르쳤던 ‘박력’ 있는 엄마 세희처럼요. 약자이지만 어느 순간 세계와 타인을 향해 손을 뻗는다는 점에서 저는 늘 강한 인물을 써왔다고 생각해요. 실제의 저보다는 훨씬 더 나은 사람들이죠.”
―소설의 주요한 키워드로 자이니치, 국적과 경계, 디아스포라와 차별, 기억과 애도 등이 우선 떠오릅니다.
“저는 이 시대 독자들과 기억과 애도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함께 기억한다는 것, 기억 공동체의 일원으로 기꺼이 소속된다는 것, 그것이 인간적인 삶으로 나아가는 한 방식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식민지 시대 경찰이 여전히 사람을 고문하고 죽였던 4?3 같은 무자비한 역사를 잊지 않고 함께 기억하는 자리, 문학은 그런 곳에 있어도 좋지 않을까요?”
1976년 서울에서 나고 자란 조해진은 2004년 중편소설 ‘여자에게 길을 묻다’로 문예중앙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장편소설 ‘로기완을 만났다’, ‘아무도 보지 못한 숲’ 등을, 소설집 ‘천사들의 도시’, ‘빛의 호위’ 등을 발표했다. 신동엽문학상, 대산문학상 등 많은 상을 받았다.
그는 지난 5월에 이사를 했다. 이전에 살던 집은 전통시장 옆에 위치해 있어서 살기엔 편했지만, 창밖의 세상은 앞집 벽뿐이었다. 공동현관문을 나선 뒤에야 비가 오는 걸 알고는 우산을 챙기러 다시 집으로 들어간 적이 많았다. 하지만 새로 이사 온 곳은 천변. 아침에 눈을 뜨면 창문을 통해 그날의 날씨를 알 수 있다.
소설가 조해진은 날씨를 가늠하며 대강 옷을 챙겨 입고 천변을 걷는다. 그의 삶에 오전 산책이 새로 추가된 셈. 그 뒤엔 읽고 쓰는 일을 주로 하고, 저녁에 다시 한 번 산책을 한다. 예전보다 두 배 이상 걸어서인지 잠을 잘 자고 있다고. 그는 걸으면서 자주 이야기의 씨앗을 틔우기 시작한다. 인물을 만들고, 장면을 구체화하고…. 그러다가 세상의 온갖 소리가 배경으로 가라앉은 어느 날, 상상력이 부풀어 오른 곳에서 자이니치 모녀를 만나기도 했을 것이다. 연주를 떠나야 하는 엄마 세희를, 다시 3년의 시간이 흐른 뒤 엄마의 삶을 온전히 이해하고 안아주려는 우리 연주를….
“‘부탁 하나 해도 될까?’ 주사를 맞고 몽롱해하던 엄마가 내 손을 잡으며 물었다. ‘우리 오마니와 아바이, 그리고 오빠를….’ ‘….’ ‘잊지 말아 줄래?’ 물으며, 엄마는 밀려오는 약기운에 투항하듯 천천히 눈을 감았다. 잊지 않아…. 잠든 엄마 곁에 앉아 그렇게 되뇌던 그때처럼, 3년여가 흐른 지금, 이 낯선 도시에서 나는 가만히 속삭였다. 불러보고도 싶었다. 세희야, 라고. 우리 세희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