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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왜 영성을 찾는가—세계사를 움직인 15인의 영성] <5>조로아스터(Zoroaster)-“선과 악의 전쟁은 어디서 시작됐는가”

선과 악 사이에서 인간을 깨우다

[인류는 왜 영성을 찾는가—세계사를 움직인 15인의 영성] ⑤조로아스터(Zoroaster)

 

<목차>

 

<1> 모세-“노예 민족에게 법과 신을 준 사람”

<2> 공자-“혼란한 시대, 인간의 질서를 묻다”

<3> 노자-“세상을 거슬러 흐르지 말라”

<4> 석가모니-“인간의 고통을 정면으로 바라본 사람”

<5> 조로아스터-“선과 악의 전쟁은 어디서 시작됐는가”

<6> 예수-“사랑은 어떻게 세계를 바꾸었는가”

<7> 무함마드-“신앙은 공동체를 어떻게 조직하는가”

<8> 성 아우구스티누스-“인간 내면에도 제국은 존재한다”

<9> 토마스 아퀴나스-“신과 이성은 화해할 수 있는가”

<10> 마르틴 루터-“양심은 교황보다 강한가”

<11> 존 웨슬리-“대중 속으로 들어간 종교”

<12> 라마크리슈나-“모든 종교는 같은 산을 오르는가”

<13> 달라이 라마 14세-“인간은 증오 없이 저항할 수 있는가”

<14> 문선명·한학자-분열된 인류는 다시 한 가족이 될 수 있는가

<15> 간디-“정치는 영혼을 가질 수 있는가”

 

 

왜 세상에는 악이 존재하는가. 왜 인간은 끊임없이 서로를 해치고 전쟁을 반복하는가. 이 근원적 질문을 거대한 사상으로 정립한 인물이 바로 조로아스터(Zoroaster)다. 그는 자신만의 독창적 진리를 밝혔을 뿐 아니라, 신과 함께 어둠에 맞서 투쟁하던 ‘우주적 전사’였다.

 

조로아스터는 다른 성인들에 비해 비교적 낯선 이름일지 모른다. 그는 대략 기원전 1000~600년 사이에 활동한 것으로 추정되는 고대 페르시아의 예언자이다. 그는 선악 이원론을 비롯해 신과 연대하는 동반자로서의 인간관, 운명을 바꾸는 자유 의지와 삼덕(三德) 윤리 등 자신만의 독창적 진리를 정립했다. 무엇보다 그의 사상은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세계관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주춧돌을 놓았다. 그가 체계화한 선과 악의 대립, 천국과 지옥, 천사와 악마, 최후의 심판 같은 개념들이 모두 그의 고뇌와 깊은 탯줄을 대고 있기 때문이다

 

◆인류 최초의 선악 이원론 정립

 

흥미롭게도 그의 이름은 현대 대중문화와 철학의 가장 높은 자리에 다른 형태로 새겨져 있다. 철학자 니체의 명작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짜라투스트라’가 바로 조로아스터의 독일어식 발음이다. 이 제목으로 오케스트라 교향시도 만들어졌는데,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걸작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오프닝 테마곡으로 소개돼 공전의 히트를 쳤다. 고대 페르시아의 선각자가 외친 선악 사상이 수천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현대 문명과 인간의 진화를 논하는 철학적·예술적 상징으로 부활한 셈이다.

 

고대 페르시아 제국은 키루스 2세와 다리우스 1세가 호령하던 시기, 세계 최대 규모의 문명권이었다. 다만 조로아스터가 정확히 어느 시대 인물인지를 두고는 지금도 학계의 논쟁이 뜨겁다. 기원전 1500년 무렵의 까마득한 고대로 보기도 하고, 인류 정신사에 큰 획을 그은 기원전 6세기 전후로 보기도 한다. 그만큼 그의 삶은 신화와 역사적 실존의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다.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포스터. 이 영화의 상징적인 오프닝 곡은 조로아스터의 이름을 딴 니체의 철학서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오케스트라 교향시로 번역한 음악이다. 고대 예언자의 사상적 유산은 수천 년을 살아남아 현대 문명을 논하는 예술적 아이콘이 되었다.   출처: MGM&#47;Warner Bros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포스터. 이 영화의 상징적인 오프닝 곡은 조로아스터의 이름을 딴 니체의 철학서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오케스트라 교향시로 번역한 음악이다. 고대 예언자의 사상적 유산은 수천 년을 살아남아 현대 문명을 논하는 예술적 아이콘이 되었다.   출처: MGM/Warner Bros

그가 등장할 당시 고대 이란 지역은 수많은 자연신을 섬기던 다신교 사회였다. 당시 종교의 중심에는 ‘카르반’이라 불리는 주술적 사제 계급이 있었다. 이들은 부족의 번영을 기원하며 가축을 잔인하게 도살하는 ‘피의 제사’를 지냈고, 환각 음료를 마시며 황홀경 속에서 부족 간의 약탈과 전쟁을 일삼았다. 그 중심에 세운 존재가 우주의 유일한 최고신인 ‘아후라 마즈다(Ahura Mazda)’다. 아후라 마즈다는 진리와 빛, 우주의 질서를 상징한다. 반대로 세상에는 이에 대항하는 거짓과 파괴의 악한 영인 ‘앙그라 마이뉴(Angra Mainyu, 아리만)’도 존재한다고 보았다. 조로아스터는 인류의 역사를 바로 이 두 힘이 끊임없이 충돌하는 영적 전쟁의 과정으로 파악한 것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조로아스터가 인간을 단순히 전쟁에 휩쓸려 가는 나약한 피조물로 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는 인간에게 철저한 ‘선택의 자유와 책임’을 부여했다. 조로아스터교 성전(聖典) ‘아베스타’의 찬가 ‘가타’에는 그의 목소리가 생생히 기록되어 있다. “최고의 진리를 귀로 듣고, 맑은 마음으로 깊이 사유하라. 그리하여 선과 악, 두 길 중에서 그대 자신을 위한 길을 스스로 선택하라. 마지막 대심판의 날이 오기 전에, 각자가 지닌 신념을 깨워 결단하라.”

 

인간은 매 순간 선과 악 사이에서 무엇을 따를지 스스로 결정해야 하며, 그 개인의 도덕적 선택이 우주적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저울추가 된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복잡한 제사의식을 폐지하고 가장 단순하면서도 엄격한 삼덕 윤리를 제시했다. 바로 “선한 생각, 선한 말, 선한 행동”이다. 마음에서 시작해 외부의 실천에 이르기까지 모든 궤적이 진리를 향해야 한다는 뜻이다. 인간을 운명의 노예가 아닌 도덕적 주체로 격상시킨 이 위대한 통찰이야말로 후대 사상가들이 그를 높이 평가하는 이유다.

 

◆‘선한 생각’ ‘선한 말’ ‘선한 행동’ 삼덕 윤리를 제시하다

 

조로아스터교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오브제는 ‘불’이다. 이 때문에 동양권에서는 불을 숭배하는 ‘배화교(拜火教)’라 부르며 오해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에게 불은 숭배 대상이 아니라 유일신 아후라 마즈다의 현신이자 빛과 진리를 비추는 매개체였다. 어둠이 깊을수록 더욱 명징하게 타오르는 불꽃 속에서 거짓을 물리치는 진리의 이미지를 보았던 것이다.

 

이러한 묵시록적 세계관은 사후세계와 최후 심판 개념으로 이어지며 서구 종교 전통에 깊은 낙인을 남겼다. 인간은 죽은 뒤 삶에 대한 엄격한 심판을 받아 천국이나 지옥으로 향한다고 보았다. 나아가 역사의 마지막 날에는 악의 세력이 완전히 패배하고 세상이 순수한 빛으로 정화된다는 ‘종말론적 희망’을 노래했다. 바빌론 포로 생활을 겪던 유대인들이 페르시아 문화와 접촉하면서 이 사상을 흡수했고, 이것이 유대교를 거쳐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뼈대가 되었다는 견해는 학계의 정설이다.

 

조로아스터가 살아 있을 당시에는 고독한 예언자의 신앙 개혁 운동에 가까웠으나, 사후 수세기를 거치며 페르시아의 강력한 왕권과 결합했다. 특히 3세기 사산왕조(薩珊王朝)에 이르러 공식 국교로 선포되며 찬란한 전성기를 맞이했다. 그러나 권력과 결합한 사제 계급이 특권층이 되어 내부적으로 경직되고 타락하면서 순수한 도덕적 생명력을 잃어갔다. 결국 7세기 중반 이슬람을 앞세운 아랍 세력의 정복 앞에 조로아스터교는 역사 뒤안길로 급격히 쇠퇴했다. 무거운 세금과 차별 속에 대다수 민중은 이슬람으로 개종했고, 신앙을 지키려던 이들은 인도로 망명하여 오늘날 ‘파르시(Parsi)’라 불리는 혈통 공동체로 겨우 명맥을 잇게 되었다.

 

석가모니가 마음속 집착을 ‘내려놓음’으로써 평화를 얻고자 했다면, 조로아스터는 마음속에서 날마다 선을 ‘선택하고 투쟁함’으로써 우주를 구원하고자 했다. 조로아스터에게 마음이란 평온의 안식처가 아니라, 매일 아침 선한 무기를 들고 깨어 있어야 하는 가장 치열한 영적 요새였다. 그리고 선과 악의 싸움은 인류가 매일 마주하는 선택 속에서 치열하게 반복된다. 세상은 가만히 둔다고 해서 저절로 선해지지 않는다. 인간은 끊임없이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결단해야 한다.

 

◆배화교‧니체를 거쳐 현대의 상징으로 부활

 

여기에 인류 지성사의 거대한 역설이 숨어 있다. 훗날 철학자 니체는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쓰면서 “선과 악이라는 절대적인 기준은 없다. 남이 정해준 선악의 기준에 휘둘리지 말고, 네 삶의 가치는 네가 스스로 창조하라”며 조로아스터의 가르침을 180도 뒤집었다. 그러나 후세는 이 두 천재의 대립 사이에서 방황하는 대신, 인간 존재를 바라보는 두 가지 강력한 무기를 얻었다. 조로아스터를 통해 ‘우주적 정의를 위해 연대하는 전사의 책임’을 배웠고, 니체를 통해 ‘그 어떤 교리에도 종속되지 않는 주체적 자유’를 확립했기 때문이다. 두 길 모두 결국 인간을 위대한 결단의 주체로 세웠다는 점에서 본질은 통한다.

 

인류사 대부분의 종교에서 인간은 신 앞에 엎드려 자비를 구하는 나약한 피조물이다. 하지만 조로아스터교에서 인간은 아후라 마즈다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우주의 악을 물리치는 ‘동반자(Co-worker)’다. 절대자인 신마저도 인간의 선한 선택과 실천이 있어야만 최종 승리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존엄성과 책임감을 이보다 극적으로 끌어올린 영성가는 드물다. 그래서 그가 남긴 황금률은 오늘날에도 매서운 울림을 준다. “세상의 악을 물리치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증오나 칼이 아니라, 오직 선을 실천하는 올바른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