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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마당] 평화와 공존의 국립공원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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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초록이 짙어지는 6월이다. 여름을 맞이하는 숲은 늘 분주하기 마련이다. 푸른 국립공원 또한 포화로 뒤덮였던 자리라는 사실은 실감나지 않는다. ‘호국’이라는 말은 우리로 하여금 치열했던 이 땅의 수많은 전쟁의 상흔을 동시에 떠올리게 한다. 우리의 선조들이 지키고자 했던 것은 지도 위에 그어진 단순한 경계선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들은 이 땅에서 서로를 부둥켜안고 치열하게 이어가던 모든 생명의 서사를 지키고 싶었으리라. 우리 국토의 핵심인 국립공원은 한반도 전쟁의 역사를 온몸으로 견디며 치유해 온 공간이기도 하다.

공식 기록상 대한민국 제1호 국립공원은 1967년 지정된 지리산이다. 하지만 근현대사에 새겨진 국립공원의 시작은 생각보다 쓸쓸하다.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초, 조선총독부는 식민통치의 성과를 과시하고자 금강산국립공원 계획을 세웠다. 도로를 내고 탐방로를 구상하던 이 계획은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며 결국 실현되지 못했다.

강동익 국립공원공단 북부지역본부장
강동익 국립공원공단 북부지역본부장

한국전쟁 이후, 1954년 제1공화국은 외세의 침략에 끝까지 항전했던 역사적 공간인 남한산성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했다. 대통령이 참석한 비공식적인 개원식까지 열었다. 그러나 4·19혁명이라는 큰 정치적 소용돌이 이후 새롭게 들어선 제2공화국은 남한산성의 국립공원 지위를 무효로 만들었다.

1960년대 중반 다시 한번 국립공원 지정 움직임이 일어났을 때 치열했던 전투로 수복된 지역인 설악산은 빼어난 풍경 덕분에 지리산과 함께 유력한 후보로 꼽혔다. 하지만 당시 설악산은 곳곳에 묻혀 있던 지뢰와 불발탄 때문에 기초조사조차 시작할 수 없었다. 안보와 안전이라는 현실의 벽 앞에서 설악산은 대한민국 제1호 국립공원의 자리를 지리산에 내줬다. 1970년대에 들어서야 한려해상, 경주, 계룡산에 이어 제5호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이렇듯 우리 국립공원은 일제의 수탈, 전쟁, 그리고 분단이라는 역사를 온몸으로 견뎌내며 수많은 상흔을 치유해 왔다. 돌아보면 국립공원은 단순히 아름다운 경관을 보전하는 제도에 머물지 않았다. 폐허 위에 다시 숲이 자라고, 끊어진 길 위로 사람이 조심스레 발을 들이며, 상처 입은 자연과 공동체가 함께 회복하는 과정을 품어온 살아 있는 기록이었다. 그래서 국립공원을 지킨다는 일은 자연을 보호하는 동시에 우리가 겪어온 고통을 기억하고, 그 기억을 평화와 공존의 가치로 바꾸는 일이기도 하다. 무기와 불발탄이 가득했던 공간들은 이제 수많은 이들이 찾아와 위로를 얻는 쉼터가 됐다. 국립공원 탐방로를 걸으며 그 아래에 덮인 생채기들을 더듬어 가다 보면 우리의 산하와 뭇 생명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파노라마처럼 떠오르곤 한다.

선열들이 지켜낸 이 푸른 땅을 더 건강하게 가꾸어 다음 세대에게 온전하게 건네주는 것, 부단한 발걸음으로 우리의 산과 바다를 돌보는 것이야말로 지금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가장 단단한 마음일 것이다. 설악산 능선에서 저 멀리 눈앞에 잡힐 듯 보이는 금강산을 바라보며 분단의 현실을 실감하지만, 언젠가 설악·금강이 하나되고 DMZ가 세계적인 국립공원으로 우리 앞에 다시 태어나는 평화로운 조국의 미래를 그려본다.

‘자연과 인간의 공존’, ‘한반도 생태계의 온전한 회복’이라는 이 시대적 사명이 마침내 완성되는 그날까지, 국립공원과 이 땅의 모든 생명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결코 멈추지 말아야 하겠다.

 

강동익 국립공원공단 북부지역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