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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타워] 막힌 물길, 세계가 배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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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무역 ‘초크포인트’ 다자적 공공재 인식해야

지난 2월28일 미국이 이란을 전격 공습하며 전쟁이 시작된 뒤 이란은 이에 대응해 호르무즈해협을 봉쇄했다. 전 세계는 최소 폭 38㎞에 불과한 작은 물길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곧바로 알게 됐다. 글로벌 에너지의 20%가 오가는 호르무즈해협이 막히며 유가가 폭등했기 때문이다. 이후 전쟁이 이어진 3개월 동안 세계의 관심은 온통 해협이 언제 안전을 되찾느냐로 향해 있는 상태다. 그러면서 깨닫게 됐다. 세계가 이 중요한 길목을 얼마나 허술하게 방치해 왔는지를 말이다.

20세기 이후 세계는 자유무역의 혜택을 받으며 눈부시게 발전해 왔다. 자유무역을 위해 세계는 물류 경로도 함께 만들어 왔고, 자연스럽게 몇 개의 길목이 특수한 위상을 점하게 됐다. 호르무즈해협, 믈라카해협, 바브엘만데브해협, 수에즈운하, 파나마운하 등은 이른바 ‘초크포인트’라고 불리는 곳들이다. 최대 효율을 위한 당연한 선택이었고, 그 효율이 만들어낸 풍요를 세계가 함께 누렸다.

서필웅 국제부 차장
서필웅 국제부 차장

이 시스템이 수십년간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국제사회의 선의 덕분이었다. 자유무역을 통해 모두가 이익을 얻는다는 믿음, 그 믿음 위에서 어느 나라도 공동의 물길을 막으려 하지 않을 것이라는 암묵적 신뢰가 있었다. 이 신뢰는 오랫동안 실제로 작동했다. 문제는 그 믿음이 강했던 만큼 시스템이 흔들릴 때를 대비하는 안전장치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마침내 호르무즈 사태를 통해 시스템이 흔들렸고, 그 대가를 세계가 함께 치르고 있다.

그렇다고 선의에 기반한 시스템 자체를 의심할 이유는 없다. 불완전하더라도 인류가 수천년 역사 속에서 경험한 가장 평화로운 공존의 틀이어서다. 중요한 것은 드러난 취약성을 어떻게 메워 나가느냐다.

다행히 논의가 시작될 조짐이 보인다. 호르무즈 봉쇄 과정에서 직접적 피해를 본 국가들을 중심으로 해상 안전에 관한 다자적 논의의 필요성이 제기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이 새로운 일은 아니다. 시스템이 큰 위기에 처하면 세계는 늘 공동 논의를 통해 안전장치를 만들어 왔다. 1973년 오일쇼크가 국제에너지기구(IEA) 체제로 이어졌고, 2008년 금융위기 공포가 국제결제은행(BIS) 체제를 완성했다. 세계가 물류 시스템의 취약성을 체감한 만큼 이제 이란전쟁이 일단락되면 전체 초크포인트의 공유와 관리에 대한 논의 역시 본격화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논의는 무엇을 향해야 하는가. 답은 복잡하지 않다. 공동의 이익을 추구한다는 자유무역의 정신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그 정신이 작동하기 위한 안전망을 국제사회가 공동으로 설계하고 책임지는 방향이다. 특정 국가의 선의나 단일 보증인의 군사력에 의존하는 구조에서 벗어나, 초크포인트를 다자적 공공재로 인식하는 전환이 필요하다.

이 논의에서 한국의 자리도 결코 작지 않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무역의존도가 세계 최상위권인 한국은 초크포인트가 흔들릴 때마다 가장 직접적인 충격을 받는 나라 중 하나다. 그만큼 이 논의에서 방관자가 아닌 설계자로 목소리를 내야 할 이유가 가장 큰 나라이기도 하다. 폭 38㎞ 물길이 세계에 던진 질문은 한국에도 예외 없이 향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