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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억 버는 워킹맘 김지선, 죽음의 문턱에서 깨달은 멈춤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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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추지 못했던 성실함의 강박, 차체가 뒤틀리는 사고 현장에서 마주한 진짜 삶

네 아이의 엄마이자 대한민국 연예계 ‘다산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김지선. 대중에게 비친 그녀의 모습은 넷째 출산 100일 만에 복근을 되찾은 철저한 자기관리의 화신이자 월 2억원 수익을 올리는 방송인이었다. 그러나 화려한 조명 뒤에 가려진 그녀의 지난 시간은 자신을 파괴할 만큼 쉴 틈 없는 질주였다. 어느 날 마주한 참혹한 사고의 잔해 속에서 그녀는 비로소 죽음의 문턱을 보며 멈추지 못했던 강박의 끝을 마주했다. 성공이라는 이름의 궤도 위에서 그녀가 진짜 삶을 되찾기까지의 이야기를 전한다.

무대 위에서 가장 뜨겁게 빛나던 시절, 그 화려함 뒤에는 늘 생존을 향한 치열한 계산이 숨어 있었다. 티엔엔터테인먼트 제공
무대 위에서 가장 뜨겁게 빛나던 시절, 그 화려함 뒤에는 늘 생존을 향한 치열한 계산이 숨어 있었다. 티엔엔터테인먼트 제공

김지선의 삶은 1990년 KBS 코미디 탤런트 대상 수상과 함께 시작된 이후 단 한 번의 정체기도 없이 이어졌다. ‘괜찮아유’의 최양락 부인부터 ‘꽃봉오리 예술단’까지 그녀는 늘 무대 위의 중심이었다. 그녀가 짊어진 짐은 단순히 인기라는 무게가 아니었다. 어린 시절 전라북도 고창에서 서울로 올라와 겪었던 가난의 기억, 500원짜리 동전 하나에도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던 유년기의 상흔은 그녀를 ‘멈추면 안 된다’는 강박에 가두었다. 그녀에게 세상은 단 한 번의 실수로도 바닥으로 떨어질 수 있는 위태로운 현실이었다.

 

이 강박은 결혼과 출산 이후에도 이어졌다. 아들 셋을 낳고도 멈추지 않았던 방송 활동과 넷째 딸을 얻기까지 그녀가 보여준 행보는 사회적 기준으로는 다산의 상징이었으나 개인에게는 매일이 생존을 위한 투쟁이었다. 네 아이 모두를 모유 수유로 키우기로 결정한 것은 그녀의 성실함이 얼마나 독했는지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스케줄 도중 유축할 시간이 없어 바늘로 가슴을 찌르는 고통을 참아가며 버텼던 시간들, 새벽마다 직접 수유를 하며 잠을 줄였던 날들은 그녀가 왜 그토록 완벽한 자기관리에 집착했는지 설명해준다. 그녀는 아이들에게 가난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일념 하나로 자신의 신체적 한계를 매번 갱신하고 있었다.

다산의 아이콘으로 불리며 완벽한 워킹맘을 연기했던 기록들, 그 뒤에는 독한 자기관리가 뒷받침되어 있었다. 김지선 SNS
다산의 아이콘으로 불리며 완벽한 워킹맘을 연기했던 기록들, 그 뒤에는 독한 자기관리가 뒷받침되어 있었다. 김지선 SNS

2018년 이후 홈쇼핑의 여왕으로 변신하며 매진 행렬을 이어갈 때도 그녀의 내면에는 늘 불안이 공존했다. 남편이 아기띠 사업을 하며 겪는 부침, 그리고 아이 넷을 키우며 발생하는 일상의 소란함 속에서 김지선은 자신을 갈아 넣어 성과를 증명해야 했다. 층간소음 문제로 아랫집 학생에게 직접 손편지와 과일을 보내고, 그 학생의 공연 관람을 돕는 등 따뜻한 성품을 가졌음에도 정작 자신에게는 한없이 엄격했다. 방송 녹화 현장에서 물 한 모금 마실 여유도 없이 상품 설명에 매달리던 1시간 동안 매출 지표가 실시간으로 그래프를 그리며 오를 때마다 그녀는 묘한 해방감과 함께 더 큰 불안을 느꼈다. ‘오늘 완판하지 못하면 내일은 어떻게 되는가’라는 질문이 그녀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평온하던 일상은 찰나의 사고로 무너져 내렸다. 피로가 누적된 상태에서 직접 운전대를 잡았던 그날, 벼락처럼 덮친 교통사고는 그동안 쌓아 올린 성공의 탑이 얼마나 위태로운 토대 위에 있었는지를 명확히 보여주었다. 사고 현장의 날카로운 파열음과 매캐한 타이어 타는 냄새가 진동하던 그 순간, 통장의 잔고가 아닌 아이들의 평범한 일상이 주마등처럼 스쳤다고 그녀는 훗날 고백했다. 죽음의 문턱에서 울부짖으며 갈구했던 것은 결국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파편이었다. 그 사고는 성공이라는 강박이 그녀에게서 무엇을 빼앗아 갔는지를 확인하는 뼈아픈 계기가 됐다. 

인생의 브레이크가 걸린 사고 현장에서 그녀는 통장의 잔고보다 더 소중한 가치를 비로소 마주했다. 국악방송 ‘소리를 배웁시다’ 제공
인생의 브레이크가 걸린 사고 현장에서 그녀는 통장의 잔고보다 더 소중한 가치를 비로소 마주했다. 국악방송 ‘소리를 배웁시다’ 제공

이후 김지선은 변화했다. 18년 만에 공개 코미디 무대에 서며 후배들의 견제 속에서도 본연의 연기를 펼치는 여유를 보였고, 국악방송 진행이나 EBS 내레이션 등 호흡이 긴 활동으로 자신의 중심을 옮겨갔다. 20대 시절보다 더 늘씬한 몸매를 유지하는 것은 긴장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자신을 돌보는 생활의 근간이 되었다. 그녀는 매일 아침 아이들이 등교하고 난 뒤의 1시간을 온전히 자신을 위한 명상과 가벼운 스트레칭에 할애한다. 더 이상 자신의 몸을 착취하지 않고, 정성스럽게 건강한 식재료를 골라 직접 요리하는 과정에서 삶의 속도를 조절하는 법을 익혔다.

이제는 스스로를 착취하는 대신 온전한 평온을 가꾸며, 매일의 삶을 스스로 경영하는 현명한 생활인으로 거듭났다. 김지선 SNS
이제는 스스로를 착취하는 대신 온전한 평온을 가꾸며, 매일의 삶을 스스로 경영하는 현명한 생활인으로 거듭났다. 김지선 SNS

그녀는 이제 안다. 맹목적인 성실함으로 자신을 소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온전함을 지키는 것이 진정한 성공임을. 넷째를 낳고 그 모든 아이를 키워내며 방송계의 생존자로 남은 김지선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건네는 말은 분명하다. 성공은 멈추지 않고 달리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지속하는 힘에 있다. 월 2억원의 수익보다 중요한 것은 그 수익을 만들어내는 주체인 자신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이야말로 그녀가 찾은 진짜 삶의 답이다. 화려한 스튜디오의 조명보다 따뜻한 집안의 온기가 더 소중함을 깨달은 지금, 그녀는 비로소 가장 치열하게 자신의 일상을 영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