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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전쟁, 무엇을 얻었나… 美의 ‘반쪽 승리’ 꼬집다

저자, 미국 참여 주요 전쟁들 분석
“한국전, 최종 평화체제 구축 실패
베트남전 시체 수 늘리기만 초점”

핵심 정치적 목적 달성 ‘빈손’ 지적
‘전쟁, 승패 아닌 관리대상’ 해석도
“종전·평화계획 반드시 포함” 강조

미국은 왜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하는가/도널드 스토커/최진용·김영균 옮김/플래닛미디어/2만9800원

 

최근 미국과 이란은 군사적 충돌 이후 전쟁 종결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후속 협상에 들어갔다. 미국은 이란의 핵 개발 능력과 군사 역량에 심각한 타격을 가함으로써 전략적 목표를 달성했다고 주장한다. 반면 이란은 미국의 공격에도 체제가 유지됐고 굴복하지 않았으며, 결국 협상 테이블에 대등한 당사자로 앉았다는 점을 들어 승리를 선언한다.

흥미로운 점은 양측 모두 승리를 주장하지만, 패배를 인정하는 쪽은 없다는 사실이다. 전쟁은 끝나가는 듯 보이지만 갈등의 원인이 제거됐는지, 정치적 목적이 달성됐는지, 새로운 질서가 구축됐는지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협상 결과가 얼마나 강제력을 가질지, 장기적 평화로 이어질지도 장담할 수 없다. 이는 현대 전쟁이 안고 있는 근본적 질문으로 이어진다. 과연 누가 이긴 것인가. 전쟁은 정말 끝난 것인가. 아니면 잠시 멈춰 서 있는 것에 불과한가.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미국의 군사사학자이자 전략 연구가인 도널드 스토커의 ‘미국은 왜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하는가’는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걸프전, 이라크전, 아프가니스탄전 등 미국이 수행한 주요 전쟁들을 분석하며, 왜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보유한 미국이 반복적으로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는지를 추적한다.

우리는 흔히 승패를 점령한 영토의 크기나 적군에게 끼친 피해 규모로 판단한다. 그러나 저자는 전쟁의 승리는 전장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목적의 달성 여부에 의해 결정된다고 말한다. 이는 군사사상가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의 유명한 명제인 “전쟁은 정치의 연장”이라는 관점에 기반한다.

실제로 미국은 지난 수십년 동안 대부분의 전쟁에서 압도적인 군사적 우위를 확보했다. 한국전쟁에서는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를 뒤집었고, 걸프전에서는 압도적인 공중전과 기동전으로 이라크군을 격파했다. 2003년 이라크전에서는 수주 만에 바그다드를 함락했고, 아프가니스탄에서는 탈레반 정권을 단기간에 붕괴시켰다.

그러나 전쟁의 최종 성적표는 달랐다. 한국전쟁은 휴전으로 끝났을 뿐 평화체제 구축에는 실패했다. 베트남전쟁은 북베트남의 승리로 귀결됐다. 이라크는 후세인 정권 제거 이후 장기간 혼란과 내전에 빠졌고, 아프가니스탄에서는 20년 전쟁 끝에 미군이 철수하자 탈레반이 다시 권력을 장악했다. 전투에서는 승리했지만, 전쟁에서는 원하는 정치적 결과를 얻지 못한 셈이다.

도널드 스토커/최진용·김영균 옮김/플래닛미디어/2만9800원
도널드 스토커/최진용·김영균 옮김/플래닛미디어/2만9800원

저자가 주목하는 개념은 ‘제한전(Limited War)’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핵무기가 등장하면서 강대국들은 상대를 완전히 파괴하는 총력전을 수행하기 어려워졌다. 핵전쟁은 곧 인류 공멸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 전쟁은 일정한 목표와 범위 안에서 수행되는 제한전의 형태를 띠게 됐다. 문제는 제한전일수록 정치적 목표가 더욱 중요해진다는 점이다.

한국전쟁은 이러한 제한전의 첫 번째 시험장이었다. 미국은 처음에는 한국 방어라는 명확한 목표를 갖고 참전했다. 그러나 인천상륙작전 성공 이후 목표를 한반도 통일로 확대했고, 이에 중국이 참전하면서 전쟁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결국 미국은 다시 남한 방어와 휴전이라는 현실적 목표로 후퇴해야 했다.

한국 전쟁 당시 대동강 철교를 건너는 피난민.
한국 전쟁 당시 대동강 철교를 건너는 피난민.

저자는 이 사례에서 현대 제한전의 딜레마를 발견한다. 정치적 목표가 바뀌면 군사적 성공의 의미도 달라진다는 것이다. 미국은 북한의 침략을 저지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통일이라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승리와 패배 어느 한쪽으로 단정하기 어려운 결과가 남았다.

베트남전쟁은 이러한 문제가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 사례다. 미국은 거의 모든 주요 전투에서 승리했다. 압도적인 화력과 공군력을 바탕으로 북베트남군과 베트콩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그러나 군사적 우위는 정치적 성과로 이어지지 않았다. 공산주의 확산을 막겠다는 명분은 있었지만 전쟁을 어떤 상태에서 끝낼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 비전은 부족했다. 적군을 얼마나 제거해야 승리인지도 명확하지 않았다. 이른바 ‘시체 숫자(Body Count)’에 집착한 전략은 전쟁의 본질적 목적을 잃어버린 결과였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1975년 사이공 함락 장면은 전장에서의 승리가 곧 전쟁의 승리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 책이 흥미로운 이유는 단순히 미국의 실패를 비판하는 데 있지 않다. 저자는 현대 국제사회가 ‘승리’라는 개념 자체를 불편해하게 됐다고 지적한다. 대신 억제, 안정화, 위기관리, 분쟁관리 같은 용어가 사용된다. 전쟁을 끝내기보다 관리하는 데 초점이 맞춰진 것이다.

그 결과 전쟁은 명확한 승패가 갈리는 사건이 아니라 끝없이 지속되는 관리 대상이 됐다. 오늘날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분쟁 역시 이러한 특징을 보여준다. 어느 쪽도 결정적 승리를 거두지 못한 채 소모전이 이어지고 있으며, 협상이 시작되더라도 갈등의 근본 원인이 해소될지는 불확실하다.

저자는 “전쟁을 시작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은 전쟁을 끝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진정한 승리란 적을 많이 죽이거나 영토를 점령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을 통해 추구했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전쟁 계획에는 종전 계획과 평화 구축 계획이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싸우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강한 군대와 첨단 무기를 보유한 국가라 해도 진정한 승리를 거둘 수 없다. 이 책의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