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모든 물건의 역사/칩 콜웰/김병화 옮김/부키/2만7000원
인류의 역사를 만든 것은 인간만이 아니었다. 깨진 돌조각에서 자동차와 스마트폰, 종교적 상징물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만들고 사용한 ‘물건’은 다시 인간의 몸과 사고, 사회를 바꿔왔다.
신간 ‘거의 모든 물건의 역사’는 인류 진화를 ‘물건’이라는 관점에서 다시 읽는 책이다. 저자인 칩 콜웰은 덴버자연과학박물관 인류학 수석 큐레이터를 지냈다. 그는 “우리는 왜 이렇게 많은 물건을 가지고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해 수백만년에 걸친 인간과 물건의 관계를 추적한다.
책은 인간을 물건에 의해 규정되고 형성되는 존재로 바라본다. 인간은 도구를 만들었지만, 도구 역시 인간을 만들었다. 물건은 생존을 돕는 수단에 그치지 않고 사고방식과 사회적 관계, 정체성까지 바꿔왔다.
도구 사용은 인간만의 특징이 아니다. 문어는 코코넛 껍질을 집으로 삼고, 코끼리는 나뭇가지로 파리를 쫓으며, 까마귀와 오랑우탄도 도구를 쓴다. 그러나 인간은 도구를 생존 수단에 머물게 하지 않았다. 돌칼과 돌망치는 더 많은 음식을 얻게 했고, 불과 발효 같은 기술은 먹을 수 있는 것의 범위를 넓혔다. 그 결과 더 큰 뇌와 정교한 손, 긴 유년기와 협동적 사회가 가능해졌다. 도구는 인간의 몸과 두뇌가 진화하는 방향 자체를 바꿨다.
물건은 기능을 넘어 의미도 갖기 시작했다. 도끼와 칼이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했다면, 조각상과 동굴벽화, 장신구는 감정과 믿음, 정체성을 표현했다. 저자는 약 40만년 전에서 30만년 전 사이 호모 속 안에서 사물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진화적 무대가 마련됐다고 본다. 해부학적으로 현대인이 약 30만년 전 등장했지만, 처음부터 매장과 상징, 예술 같은 현대적 행동을 모두 갖춘 것은 아니었다.
예술과 종교 역시 물건을 통해 사회 속에 자리 잡았다. 작은 조각상과 동굴 벽의 기호, 붉은 안료로 그려진 형상은 인간이 사물을 통해 세계를 해석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종교적 믿음은 비물질적인 관념에 가깝지만, 실제 신앙은 신상과 제단, 공물, 신전, 무덤 같은 물질적 형식을 통해 공동체의 기억이 됐다.
이 책의 흥미로운 점은 인간 중심의 진보 서사를 비틀어본다는 데 있다. 인류가 똑똑해서 물건을 만든 것이 아니라, 물건을 만들고 쓰는 과정에서 인간이 더 똑똑하고 사회적인 존재가 됐다는 설명이다. 그래서 현대인은 호모 사피엔스이면서 동시에 ‘호모 스투펜시스’, 곧 물건으로 규정되는 인간이다.
물론 이 관계는 축복만은 아니다. 물건은 풍요와 편리, 아름다움과 믿음을 주었지만, 끝없는 소비와 쓰레기, 지구 환경의 부담도 낳았다. 물건 없이 살 수 없는 인간이 물건 때문에 고통받는 시대, 책은 묻는다. 이제 우리는 어떤 물건을 만들고, 어떤 물건과 결별해야 하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