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의 한 피부과 원장과 병원 관계자들이 직장인과 자영업자, 유흥업소 종사자들을 끌어들여 상습적으로 프로포폴을 불법 투약한 사실이 경찰 수사에서 드러났다. 이들은 의료기관이라는 합법적인 외피를 두른 채, 진료기록조차 남기지 않는 ‘비밀방’을 운영하며 거액의 현금을 챙겨온 것으로 파악됐다.
경기 수원장안경찰서는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서울 강남구에 있는 모 피부과 원장인 30대 A씨와 병원 실장 등 2명을 구속하고, 간호사 등 관계자 4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25일 밝혔다. 이 병원에서 프로포폴을 상습적으로 맞은 30대 중독자 B씨 등 투약자 12명도 같은 혐의로 붙잡아 불구속 입건했다.
◆성형 앱·기존 명단 털어 ‘상습 투약자’ 모집
경찰 조사 결과, 구속된 원장 A씨 등은 지난해 6월부터 올해 3월까지 약 10개월간 병원을 찾아온 중독자들에게 1회당 최소 30만원에서 최대 100만원의 폭리를 취하며 모두 100여 차례에 걸쳐 프로포폴을 투약한 혐의를 받는다.
이들의 범행은 은밀하고 조직적이었다. 주로 미용 시술을 전문으로 하던 A씨는 단속을 피하기 위해 성형 관련 애플리케이션(앱) 광고와 기존에 확보해 둔 고객 명단을 활용해 투약자들을 끌어모았다.
병원을 찾은 중독자들은 철저하게 ‘진료기록부를 작성하지 않는다’는 은밀한 계약 조건을 대가로 현금을 지불했다. 장부 어디에도 기록을 남기지 않은 채 프로포폴을 주사 맞은 투약자들은 병원 침대에 누워 짧게는 2시간에서 길게는 4시간 동안 잠을 자고 병원을 빠져나갔다. 이번에 무더기로 적발된 투약자들은 회사원과 자영업자는 물론 유흥업소 종사자 등 직업군을 가리지 않고 다양하게 분포됐다. 대부분 과거에도 프로포폴 불법 투약 전력이 있는 중독자들이었다.
◆수사 받는 중에도 간판 바꿔 달고 ‘재범’ 행각
이번 수사 과정에서 수사당국의 감시망을 따돌린 일부 병원 관계자의 행태도 수면 위로 드러났다. 적발된 병원 관계자 중 일부는 과거 다른 의료기관에서 프로포폴을 불법 투약한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던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수사를 받는 와중에도 강남의 또 다른 피부과로 자리를 옮긴 뒤, 기존에 손에 쥐고 있던 ‘상습 투약자 족보(명단)’를 활용해 버젓이 재차 범행을 저지르는 대담함을 보였다.
지난해 10월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긴밀한 내사를 진행해 온 경찰은 최근 현장을 급습해 원장 A씨를 체포하고 병원 금고 등에 보관 중이던 현금 2788만원을 전액 압수했다. 경찰은 압수한 현금이 프로포폴 판매 대금인 것으로 보고 구체적인 범죄수익금 규모를 특정하는 한편, 기소 전 추징보전을 신청해 범죄 자금을 동결할 방침이다.
경찰 관계자는 “의료용 마약류 오남용 범죄는 마약 성분의 구입과 투약이 병·의원이라는 폐쇄적인 공간 내부에서 매우 은밀하게 이뤄진다”며 “의료기관의 탈을 쓴 마약 유통 행위를 끝까지 추적해 단속하겠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