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일일이 코드를 짜는 대신 인공지능(AI)에 일상적인 말로 원하는 기능을 설명해 프로그램을 만드는 ‘바이브코딩’의 시대가 열렸다. “메일을 내용별로 분류해 줘”, “매일 특정 데이터를 모아 보고서로 정리해 줘”라고 지시하면 AI가 필요한 코드를 작성한다. 코딩을 한 줄도 몰라도, 레고를 조립하듯 화면에서 각종 기능을 이어 붙이는 ‘노코드 블록’을 활용하면 그럴듯한 ‘AI 비서’가 탄생한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바이브코딩으로 짠 프로그램은 데이터 형식이나 업무 절차가 조금만 바뀌어도 작동을 멈추기 일쑤다. 동료에게 자랑삼아 공유해도 다른 PC나 업무 환경에서는 돌아가지 않는다. 며칠간 신기해하며 사용했을 뿐, 어느새 기억 한 켠에 방치되는 ‘나만의 AI’는 이제 낯선 풍경이 아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가트너는 기업이 추진하는 에이전틱 AI 프로젝트의 40% 이상이 2027년 말까지 중단될 것으로 전망했다. 운영 비용이 기대한 효과를 넘어서거나 사업적 가치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글로벌 회계·컨설팅 기업 PwC 조사에서도 미국 기업 임원의 79%가 AI 에이전트를 도입했다고 답했지만, 이를 중심으로 실제 업무 프로세스를 재설계하고 있다는 응답은 42%에 그쳤다. AI를 만드는 문턱은 낮아졌지만, 실제 업무에 안착시켜 꾸준히 활용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의미다.
자연어 몇 줄로 웹 사이트나 애플리케이션(앱)이 만들어지는 모습은 마법처럼 보인다. 그러나 AI가 완성도와 안정성까지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보안업체 이스케이프테크가 공개된 바이브코딩 앱 5600여개를 분석한 결과, 1400개 앱에서 2000건이 넘는 고위험 취약점이 발견됐다. 외부에 노출된 인증정보 등도 400건 이상 확인됐다. 누구나 손쉽게 만들 수 있게 된 만큼,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결함과 보안 취약점도 함께 늘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전 구성원이 자신에게 필요한 에이전트를 직접 만들어 쓰는 ‘1인 1 AI 에이전트’에 속도를 내고 있는 SK텔레콤도 같은 과제를 마주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벽을 어떻게 넘어야 할까. 비개발 직군을 포함해 누적 5000여명의 AI 교육을 진행한 SK텔레콤 역량육성팀의 윤홍노 팀장과 노정혜·유다솜 매니저에게 바이브코딩으로 에이전트를 만드는 사람이 알아야 할 점을 물었다.
Q. 프롬프트만 잘 쓰면 AI 에이전트도 잘 만들 수 있는 것 아닌가요.
노 매니저 = 프롬프트를 잘 써서 한 번 좋은 답을 얻는 것과 에이전트를 만드는 것은 다른 일입니다. 에이전트를 만들려면 내 업무 흐름을 잘게 쪼개고, 어디를 자동화하고 어디를 개선할지 다시 설계해야 해요. 이 단계를 넘지 못하면 결국 똑똑한 ‘챗봇’에 머뭅니다. 그냥 AI를 한 번 써보고 마는 결과물이 되는 거죠. 잘 굴러가는 에이전트는 똑똑한 프롬프트가 아니라 잘게 나눈 업무 흐름에서 나옵니다.
Q. 그렇다면 기술과 도구가 넘쳐나는 상황에서 어떤 것부터 배워야 할까요.
유 매니저 = 저는 제일 중요한 걸 ‘문제 정의’라고 봅니다. 기술과 툴이 넘치는 상황에서 내 업무에 어떤 걸 배울지 선택하는 것부터가 일이에요. 다 써보기에는 돈도 시간도 많이 드니까요. 사내에서 교육을 진행해 보면 AI를 붙이기 전에 내 업무를 잘 풀어 쓰는 것부터 생각보다 어려워 하는 분이 많습니다. 내가 끝까지 판단해야 할 영역과 AI에 맡겨도 될 영역을 구분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결국 기존에 하던 업무를 잘 정의하고 문제를 명확하게 설명하는 역량이 훨씬 중요합니다. 그게 되면 거기에 맞는 툴도 자연스럽게 고를 수 있고요.
Q. 혼자 쓸 때는 잘되는데 팀에 공유하면 제대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노 매니저 = 업무에 활용하는 에이전트를 더 큰 조직 단위로 확장하려면 데이터셋 정비와 같은 기술적인 작업이 필요합니다. 비개발 직군이 가장 어려워하는 것도 개발 요건을 어떻게 요청하고 데이터셋 정의서를 어떻게 작성해야 하는지입니다. 직접 모든 것을 만들지 못하더라도 어떤 데이터가 어떤 형식으로 필요한지, 기대하는 동작과 예외 상황은 무엇인지 정확하게 정의해 전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개발-비개발 직군 모두 에이전트를 실제 배포하고 지속적 운영을 위한 관리 역량을 고도화하는 부분이 필요하죠. 그러면 더 큰 규모의 에이전트도 움직일 수 있습니다.
Q. 데모는 잘 됐는데, 실제 회사 데이터에 붙이려니 막힙니다.
윤 팀장 = 구성원들이 가장 걸림돌로 느끼는 지점이 바로 그겁니다. 실제 일하는 보안 환경에서는 AI 접목 활용률이 낮습니다. 시연 환경에서 그럴듯하게 돌아가는 것과 실제 사내 데이터·시스템에 붙이는 것은 다른 문제예요. 보안 환경 안에서 기존 시스템과 데이터를 연결하는 일은 개개인이 혼자 뚫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이 부분을 개인에게 맡기기보다 전담 부서가 맡는 게 좋겠다고 보고, 어떻게 할지 논의하고 있어요. 특히 보안 문제가 있는 만큼 사외 강사 등 외부 업체에 맡기기보다는 개발 플랫폼 부서와 협의하면서 ‘허브’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만들기 전에 어떤 데이터에 어떻게 연결할 수 있는지부터 확인하는 게 좋습니다.
Q. 막상 프로그램을 돌려 보니 API(응용 프로그램 인터페이스)·토큰 비용이 생각보다 많이 나옵니다.
유 매니저 = 현실에서 자주 부딪히는 문제입니다. 현장에서는 매력적으로 보였던 과제도 막상 평가를 해보면, 토큰이 너무 많이 나와 ROI(투자 대비 효과)가 안 나오는 경우가 있어요. 그러면 아무리 위에서 좋다고 꼽은 과제라도 결국 사장되는 단계로 갑니다. 그래서 이 일을 AI에 맡기는 게 비용 대비 정말 가치가 있는지부터 따져 보는 게 먼저입니다.
Q. AI 에이전트를 만들어 두긴 했는데 얼마 못 가 멈추거나 방치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래 사용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요.
윤 팀장 = AI 에이전트는 만들었다고 끝이 아닙니다. 데이터가 바뀌면 손 봐야 하고, 오류를 검증하고 접근 권한을 관리하는 일도 계속 따라옵니다. 에이전트는 단순히 만드는 것보다 계속 정규화하고 지속적으로 쓸 수 있도록 관리하는 사람이 필요해요. 저희도 유지보수를 어떻게 하고 누가 담당할지 전사 차원에서 논의하는 단계입니다. AX(AI 내재화) 유지보수 전문가 직무 비중을 높여야 한다고도 생각하고 있고요. 만들 때부터 데이터나 업무 환경이 바뀌면 어느 부분을 수정해야 할지 생각해 두는 것이 결국 에이전트의 수명을 가릅니다.
Q. AI를 잘하는 사람을 따라잡지 못할 것 같아 불안합니다.
유 매니저 = 격차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그 격차가 어디에서 벌어지는지를 봐야 해요. 아이디어를 낼 때는 현장을 잘 아는 비개발 직군이 문제를 정확하게 설명해 오히려 강합니다. 반면 짧은 시간 안에 결과물을 만들 때는 아무리 바이브코딩이 잘 돼 있어도, 이미 쓰고 있는 서버와 데이터를 잘 활용하는 사람이 앞서죠. 하지만 그렇게 나온 결과물이 잘 공유되고 전파돼서 ‘우리 구성원이 직접 만든 것’이라는 사례가 퍼지면 자기 효능감을 높이면서 선순환이 생깁니다. 기초 레벨 자체가 올라가거든요. 더 화려한 것을 만들기보다 하나라도 끝까지 굴려 본 경험을 쌓는 게 중요합니다. 특히 이전의 클라우드나 데이터 교육 때와는 분위기가 확실히 다릅니다. 당시에는 필요한 조직만 배우면 됐지만, AI는 모두가 ‘피할 수 없다’고 느끼시는 것 같아요. 특히 임원급들은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멘트를 현장에서 많이 합니다.
Q. 나이가 있거나 AI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충분히 따라갈 수 있을까요.
노 매니저 = 현장에서 머리가 희끗희끗한 임직원들이 정말 열심히 배우시는 모습을 자주 봐요. 결과물이 빠릿한 분들보다 조금 더디어도, 본인 업무에 적용하고 스스로 만족스러워하는 표정을 보면 준비한 사람으로서 감동적이기도 합니다. 의외로 가장 큰 자극은 강사가 아니라 옆자리 동료입니다. 교육 끝에 사례를 발표하면 거의 간증처럼 “동료 실력에 놀랐다”는 얘기가 나와요. 리더가 ‘AI 써야 한다’고 백 번 말하는 것보다, 옆 자리 동료가 잘 쓰는 걸 한 번 보는 게 훨씬 큰 자극이 됩니다.
Q. AI가 너무 빨리 바뀌다 보니 지금 배워도 금세 소용없어지는 것 아닌가요.
노 매니저 = 교육에서 ‘오늘 우리가 쓰는 AI가 앞으로 만날 AI 중 가장 최악의 AI’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그만큼 도구가 빠르게 좋아지고 있다는 뜻이에요. 다만, 지금 만든 에이전트가 다소 어설퍼도 괜찮습니다. 도구는 계속 발전하지만, 지금 키운 문제 정의와 업무 설계의 근육은 그대로 남으니까요. 변화의 속도에 지나치게 스트레스받기보다 새로운 도구를 받아들이는 ‘러닝 어질리티’(학습민첩성)을 키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Q. 결국 AI 시대에는 어떤 역량을 키워야 하나요.
윤 팀장 = AI 에이전트 기술 자체보다 업무를 쪼개고 일의 구조를 이해해 어디에 AI를 적용할지 찾아내는 역량이 중요합니다. 기본 구조를 이해하고 있으면 어떤 업무를 맡더라도 AI를 적용하는 속도가 빨라집니다. 앞으로는 사람이 수많은 에이전트를 거느리고 모니터링하는 역할로 바뀔 텐데요. 그럴수록 단순한 코딩 실력보다 업무를 쪼개고 구조를 이해하는 감각이 중요해집니다. 이에 더해 자기 분야의 전문성만 쌓는 데 그치지 않고, 연관된 분야에도 관심을 가지고 전문성을 넓히는 것이 중요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