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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슈퍼땅콩 아니야?”… 캐디 조끼 입고 KLPGA에 나타난 레전드 김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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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콜·모나 용평 오픈서 아마추어 이수민 일일 캐디 자청
테이핑 감고 777m 산악 코스 직접 돌며 ‘거리 계산’ 조력
“겁 가셨다, 기회 되면 또 멜 것…주변 돌아보는 선수 되길”

갤러리가 술렁였다. 27일 강원도 평창의 버치힐 컨트리클럽 클럽하우스 앞. 누군가 걸음을 멈추자 순식간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어, 김미현 아니야?”

“땅콩 맞는 것 같은데? 김미현 프로다!”

 

27일 강원도 평창 버치힐 컨트리클럽에서 열린 KLPGA 투어 맥콜·모나용평 오픈에서 캐디로 나선 김미현이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다. 김리원 기자
27일 강원도 평창 버치힐 컨트리클럽에서 열린 KLPGA 투어 맥콜·모나용평 오픈에서 캐디로 나선 김미현이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다. 김리원 기자

 

맞았다. 한국 여자골프의 ‘레전드’ 김미현(49)이었다. 하지만 갤러리 차림이 아니었다. 그는 하얀색 캐디 조끼를 입고 있었다.

 

아마추어 이수민(왼쪽)과 그의 캐디를 맡은 김미현. 스승과 제자의 다정한 한 컷. 김리원 기자
아마추어 이수민(왼쪽)과 그의 캐디를 맡은 김미현. 스승과 제자의 다정한 한 컷. 김리원 기자

 

지난 26일 개막해 열기를 더해가고 있는 KLPGA 투어 맥콜·모나용평 오픈 둘째 날. 김미현이 멘 것은 아마추어 이수민(17)의 백이었다. 이수민은 그의 아들이자 골프 유망주인 김예성군의 친구다.

 

원래는 아들이 백을 메기로 했었지만, 코스를 직접 본 김미현이 마음을 바꿨다.

 

“코스가 워낙 어려워 도움이 많이 필요할 것 같았다. 같이 호흡하면 아이에게도 공부가 많이 되겠다 싶었다.”

 

그렇게 레전드가 직접 캐디를 자청하고 나섰다.

 

김미현은 요즘 골프 꿈나무들을 가르치는 데 한창이다. 아들을 포함해 제자가 10여 명인데, 이수민도 그중 한 명이다. 제자 입장에선 ‘친구 엄마 찬스’를 제대로 쓴 셈이다.

 

1999년 박세리에 이어 두 번째로 LPGA 투어에 입성해 그해 신인왕을 거머쥔 김미현. 155㎝의 작은 키 탓에 ‘땅콩’으로 불렸지만, 핸디캡을 깨고 통산 8승을 쌓으며 이름 앞에 ‘슈퍼’가 붙었다. 그런 그가 2012년 은퇴 이후 오랜만에 코스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레전드의 복귀는 화려함과 거리가 멀었다. 이수민 측 관계자는 “공식 연습일부터 카트를 타지 않더라”고 귀띔했다. 몸에 테이핑을 칭칭 감고 진통제를 삼켜가며, 굽이진 산악 코스를 직접 걸었다. 캐디로 나선 이상, 제자 대신 발로 코스를 읽겠다는 집념이었다.

 

버치힐은 해발 777m 고지대 코스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김미현이 가장 먼저 챙긴 건 ‘거리 계산’이었다.

 

“세계를 다니며 고지대와 바닷가 시합을 모두 겪어봤다. 고지대에선 공이 조금씩 더 날아간다. 그걸 다 계산해서 클럽을 쥐여줬다.”

 

실제 미스샷만 아니면 거리는 자로 잰 듯 맞아떨어졌다.

 

이수민은 레전드의 ‘넓은 시야’에 감탄했다.

 

“주니어 시합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시야가 굉장히 넓으시다. 코스를 넓게 쓰면서 최대한 쉽게 플레이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셨다. 웬만한 전문 캐디님들보다 훌륭하시다. 단점이 없는 게 단점”이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결과는 다소 아쉬웠다. 목표했던 컷 통과에는 실패했다. 첫날엔 긴장했고, 둘째 날엔 낯선 산악 지형의 업다운에 미리 겁을 먹었다. 평지 위주인 주니어 무대만 밟아온 선수에겐 버거운 지형이었다. 그래도 5오버파로 선방했다. 지난해 프로 대회에서 두 자릿수 오버파로 고전했던 것에 비하면 부쩍 성장한 경기력이었다. 옆을 지킨 ‘스승의 존재감’ 덕분이었다.

 

김미현은 “(수민이가) 예전엔 아마추어 자격으로 나오면 프로님들 눈치 보느라 바빴을 것”이라며 “이번엔 그 부담을 덜어내고 든든한 버팀목 아래에서 온전히 제 플레이를 할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고 말했다.

 

하트를 만들어달라는 취재진의 요청에 “이거 맞아?”라며 웃은 김미현. 쑥스러워하면서도 제자를 위해 정성껏 손하트를 만들었다. 김리원 기자
하트를 만들어달라는 취재진의 요청에 “이거 맞아?”라며 웃은 김미현. 쑥스러워하면서도 제자를 위해 정성껏 손하트를 만들었다. 김리원 기자

 

스승은 제자를 냉정하면서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봤다. 

 

“성실하고 시키는 건 잘한다. 하지만 단점도 거기 있다. ‘시켜야만’ 한다는 것. 최고가 되려면 하기 싫은 것도 스스로 찾아서 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새벽 4시에 나와 혼자 훈련하고, 경기가 끝나고도 연습하려 한다. 이제 시작이라 앞으로 더 크게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격려했다.

 

골프 철학에 대한 조언도 보탰다.

 

“골프가 개인 운동이라지만, 혼자 사는 세상은 없다. 주변도 돌아보면서 자기 것에 집중할 줄 아는 성숙한 선수로 성장하길 바란다.”

 

레전드에게 최종 꿈을 물었다. 답은 시원시원했다.

 

“수민이는 LPGA, 우리 아들은 PGA 투어에 보내는 것이다. 양쪽 대회장을 갤러리로 바쁘게 오가는 게 내 마지막 꿈이다.”

 

인터뷰 내내 곁을 지키던 아들은 ‘PGA’라는 세 글자가 나오자 머쓱한 듯 미소를 지었다.

 

캐디로 보낸 뜨거웠던 이틀, 김미현은 의외의 욕심이 생겼다고 했다.

 

“사실 체력이 예전 같지 않아 끝까지 버틸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는데, 막상 해보니 겁이 좀 가시더라. 기회가 되면 또 백을 메고 싶다. 다음엔 진짜 더 잘할 것 같다.”

 

제자의 백을 메고 코스를 누빈 ‘슈퍼땅콩’. 그가 다시 캐디백을 멜 날, 갤러리는 또 한 번 술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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