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북중미 월드컵을 바라보며 답답한 것은 우리만이 아닐 것이다. 이번 대회부터 본선 참가국이 대폭 확대되면서 아시아에 배정된 티켓이 늘어났지만 중국의 자리는 이번에도 없었기 때문이다.
중국은 2002 한·일 월드컵 이후 24년째 본선 무대를 밟지 못하는 잔혹사를 이어가고 있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과거 “월드컵 본선 진출, 월드컵 개최, 월드컵 우승”이라는 세 가지 꿈을 밝힐 정도로 축구에 공을 들였고, 한때 중국 슈퍼리그가 유럽 빅리그에 버금가는 자금을 쏟아부으며 세계적인 선수들을 끌어모았으나 부패 문제 등이 불거지며 성과를 내지 못했다.
본선 진출은 또다시 좌절됐지만 중국의 월드컵 열기는 여느 때처럼 뜨겁다. 특히 이번에는 심판이 월드컵 무대를 밟은 것으로 위안을 삼는 모양새다. 현재 중국 축구팬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대표팀 선수가 아닌 중국인 심판 마닝이다. 이번 월드컵에 참가한 유일한 중국인 주심인 마닝은 지난 21일 에콰도르와 퀴라소의 E조 조별리그 경기에 주심으로 나섰다. 2022 카타르 월드컵에 이어 두 번째로 심판 명단에 이름을 올린 그는 이번 대회를 통해 생애 처음으로 월드컵 주심 데뷔전을 치르게 됐다. 이번 경기에는 마닝을 비롯해 저우페이 부심, 푸밍 비디오판독(VAR) 심판까지 중국인 심판 3명이 동시에 배정됐다.
인민일보는 “에콰도르-퀴라소전에서 마닝이 주심으로, 저우페이는 부심, 푸밍은 VAR 부심으로 활약하며 새로운 월드컵 이정표를 세웠다”고 자평했다. 중국 축구팬들은 그가 주심으로 나선다는 소식에 “역사적인 순간”, “중국 심판이 더 이상 조연이 아닌 경기를 지휘하는 역할을 맡았다”며 환호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지 팬들 사이에서는 “유일하게 월드컵 경기장 잔디를 밟은 중국인”, “중국팀이 본선에 진출하지 못했으니 그가 어떤 판정을 내려도 우리가 보복당할 일은 없다”는 자조 섞인 반응 역시 나온다.
중계석에서는 중국 사회의 경직된 단면을 보여주는 촌극도 벌어졌다. 중국 국가대표 출신이자 유명 해설가인 리이는 지난 17일 오스트리아와 요르단의 조별리그 경기를 생중계하던 중 전반 34분 오스트리아 수비수가 몸을 던져 슛을 막아내자 이를 6·25전쟁 참전 중국군 영웅인 황지광에 비유했다가 전반전이 끝난 후 돌연 중계진에서 제외됐다.
황지광은 1952년 철원 삼각고지전투 중 미군 기관총 2정을 몸으로 막아내고 전사해 중국 당국으로부터 ‘특급영웅’ 칭호를 받았다. 홍콩 명보 등 외신들은 과거 중국에서 이 같은 비유가 드문 일이 아니었으나 2018년 ‘영렬보호법’이 시행된 이후 생중계에서 영웅을 비유로 언급하는 행위가 금기시되면서 벌어진 일이라고 분석했다. 해설자 리이는 2003년 이을용 선수의 발목을 걷어찼다가 뒤통수를 가격당한 일명 ‘을용타’ 사건의 당사자이기도 하다.
온갖 촌극과 자조 속에서도 중국의 자본과 소비 시장은 월드컵 특수로 들썩이고 있다. 중국 경제 매체 디이차이징은 경기 시차로 인해 주로 오전에 중계가 진행됨에도 불구하고 테마파크, 스포츠 브랜드, 숙박업계는 이미 매출 급증을 기록 중이라고 전했다. 상하이 아디다스 매장에서는 리오넬 메시의 마지막 월드컵 유니폼을 사려는 수집가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기도 했다.
이처럼 국가대표팀의 성적과 무관하게 폭발하는 축구 열기는 중국 전역을 휩쓸고 있는 ‘동네 축구’ 열풍과도 궤를 같이하는 것으로 보인다. 펑파이신문 등 현지 매체들에 따르면 장쑤성 체육국과 13개 지급시 정부가 공동 주최하는 ‘장쑤성 도시 축구리그(쑤차오)’의 인기는 프로 리그를 위협할 수준이다. 전체 선수 516명 중 대부분이 학생과 직장인 등 아마추어인 이 대회는 개막 이후 18만명이 넘는 현장 관람객을 끌어모았고, 온라인 영상 조회 수는 수십억회를 돌파했다. 무엇보다 현지 팬들은 이 리그에 중국 엘리트 축구의 고질병인 승부 조작이 없다는 점을 칭찬한다.
비록 24년째 월드컵에서 조연에 머물고 있지만 동네 축구에 수만명이 열광하는 대륙의 에너지는 여전히 뜨겁다. 만약 중국 축구가 마침내 월드컵 본선 무대에 오르는 날이 온다면, 14억 인구가 분출할 폭발력과 경제적 파급 효과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