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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닫힌 판결과 사법 불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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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은 판결을 공개하지만, 시민은 판결의 이유를 충분히 읽지 못한다. 우리 사법에 제기되는 신뢰의 역설은 여기서 시작한다. 한 국책연구원의 2025년 국민법의식 실태조사에서 ‘법관의 재판이 외부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응답은 44.7%였다. 2년 전에 비해 12.1% 하락한 수치며, 이는 우리 국민의 절반도 재판의 독립성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오늘날 사법 불신에는 ‘정치의 사법화’와 ‘사법의 정치화’라는 이중의 긴장이 동시에 작용한다. 그러나 사법 불신의 더 깊은 뿌리는 절차에서 비롯한다. 절차적 정당성에 대한 사회과학 연구들에서 일관되게 확인되듯이 사람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결과보다 공정한 절차와 충분한 설명을 경험할 때 사법을 신뢰한다.

김대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
김대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재판의 심리와 판결은 공개한다”는 문언은 헌법(109조)과 법률(법원조직법 57조)에서 동시에 규정한다. 이러한 공개재판주의는 단순히 재판의 결과를 공개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되고, 판결의 이유에 대한 시민의 실질적 접근 가능성까지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물론 대법원도 판결서 공개 범위를 확대하려는 노력을 해왔다. 2013년부터 확정 형사판결서의 일반 열람이 가능해졌고, 2019년 판결서 인터넷 열람 시스템이 도입됐다. 그러나 공개 여부가 아니라 공개의 범위와 접근성이 중요하며, 판결문 열람 제한은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

법은 단순히 분쟁을 해결하는 기술에 그치지 않고, 시민이 국가를 신뢰할 수 있는지 여부를 결정하는 사회 제도이자 사회 체계다. 사회학자 루만에 따르면 법체계는 외부의 언어를 법체계 내부의 코드로 번역하여 처리한다. 이른바 자기준거성으로 불리는 체계의 속성은 (법)체계의 폐쇄성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는 법의 자율성을 가능케 하지만, 동시에 판결 이유가 시민에게 충분히 전달되지 않는 방식으로 폐쇄 회로가 될 위험이 있다. 법체계의 폐쇄성은 절차적 정당성을 배제하거나 체계의 사회통합 기능을 저해하는 방식으로 사법에 대한 불신을 가져오는 것이다. 요컨대, 사법의 권위는 폐쇄성과 침묵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공개성과 설명에서 나온다.

독일 법학자 우베 베젤은 ‘거의 모든 법’(이종수 옮김)에서 법의 폐쇄성과 법언어의 난해함을 정면으로 비판한다. 책은 독일 야생동물보호법의 한 조문에서 시작한다. “본 규정에서 의미하는 동물의 개념은 살아있거나 죽은 동물 그리고 그것의 인식 가능한 일부, 알, 기타 부화체 및 둥지와 같이 이로부터 생겨난 것들을 포괄한다.” 베젤은 이를 “기교적인 법언어”의 전형으로 제시하면서 “의회, 행정부와 법원들의 행위가 유권자인 일반시민들이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행해진다면, 투명성이 결여된다. 이로써 민주주의원리, 공개성 및 통제의 원리가 부인당하는 셈이다”라며 단순한 문체 관습이 아님을 짚는다. 물론 법원은 공개성이 진실 발견, 사생활 보호, 법관의 독립을 위협한다고 말하지만, 베젤은 이를 단호하게 반박한다. “여느 다른 이들에게서 통제받지 않으면서 판결을 내리기에는 이게 더 손쉬울 법하다. 사람들은 권력이라는 걸 손에 쥐고서 혼자서만 휘두르려고 한다.” 판결문이 충분히 공개되지 않는다면, 또한 공개돼도 시민이 그 이유를 읽어낼 수 없다면 시민들로서는 그 조건이 어떻게 자신에게 적용되는지 알기 어렵다. 알기 어렵다면 비판도, 학습도 어려워진다. 결국 법은 설명될 때 비로소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악마 메피스토펠레스는 조언을 구하러 온 학생에게 속삭인다. “여보게, 모든 이론은 회색이고, 생명의 황금 나무만이 푸르다네.” 판결문 공개를 제한하는 논리들·법관의 독립, 개인의 사생활, 법원의 업무 부담·은 때로 회색이다. 그 이론들이 가리고 있는 것은 살아있는 시민의 알 권리라는 나무다. 사법 신뢰는 그 나무가 충분히 햇빛을 받을 때 푸르게 자란다.

 

김대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