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년 전 남북한은 북한의 핵능력을 검증하기 위한 사찰 대상과 방식에다 주한미군, 한·미 연합훈련, 국제기구의 개입 방식 등 난제를 두고 치열한 수싸움을 벌였다.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해 머리를 맞댄 양측은 협상 초반 “악수를 몇 번 하면 통일이 되겠나”는 희망과 덕담을 담은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이내 “핵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놈” 등 막말 수준의 거친 언사가 오갔다.
통일부가 30일 공개한 1991년 12월부터 1993년 1월까지 남북한 북핵 문제 협의 기록에 담긴 내용이다. 남북한은 이 기간 총 32차례 협의를 가졌다.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도출,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 구성·운영 합의를 이루며 초반에 순항하던 협상은 북한의 핵능력을 검증하는 방식을 정하는 데서 멈췄다. 남북한이 양자 회담으로 북핵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당시의 생생한 상황이 담겨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순항하던 협상 핵사찰 문제 두고 충돌
초반 흐름은 좋았다. 비핵화 공동선언에 가서명한 것이 1991년 12월26일 첫 대표접촉을 시작한 뒤 닷새 만이었다. 공동선언은 핵무기 보유·사용 금지와 핵재처리시설·우라늄농축시설 보유 금지 등 원칙을 담았다. 비핵화 검증을 위해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가 정하는 절차와 방법으로 사찰을 실시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남한은 1992년도 한·미 연합훈련 팀스피리트 중단을 발표했고 북한은 국제핵사찰 수용 성명을 내면서, 비핵화 합의가 궤도에 오른 듯 보였다.
초반의 순항은 협상 대표들이 주고받은 말에도 반영됐다. 1992년 3월6일 제5차 대표접촉에서는 임동원 남한 대표가 “악수를 한 번 더 합시다”라고 하자, 최우진 북한 대표는 “악수를 몇 번 하면 통일되겠나”고 화답했다.
그러나 양측은 이내 치열하게 충돌했다. 핵시설 사찰 규정 마련 시한과 시범사찰 문제에서 접점을 찾지 못했다. 제6차 대표접촉에서는 감정싸움까지 벌어졌다. 임동원이 “핵문제 토의하는 사람이 핵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하는 놈”이라고 몰아붙이자 최우진은 “야! 어디 책상을 쳐!”라고 격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핵통제공동위가 공식 출범한 뒤 충돌은 더 뚜렷해졌다. 1992년 3월19일 핵통제공동위 제1차 회의 이후 남한이 북핵 의혹 검증을 요구하면, 북한은 주한미군 핵무기·핵기지 문제를 내세우는 구도가 굳어졌다. 사찰규정 논의는 제자리걸음이었다.
◆팀스피리트에 외세·전쟁 책임 공방까지
1992년 10월부터는 남북한은 팀스피리트 재개 문제를 두고 본격적으로 충돌했다. 북한은 10월 7∼8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연례안보협의회 이후 남한이 미국과 함께 북핵 개발 저지 공동대응책을 논의하고 팀스피리트 재개에 원칙적으로 합의했다며 반발했다. 이 문제를 두고 힘겨루기가 이어지며 북한 사찰 관련 논의는 뒷전으로 밀렸다.
11월 이후 핵통제공동위는 사찰규정을 논하는 자리라기보다 팀스피리트 철회 공방장에 가까워졌다. 제11차 회의에서 남한은 특별사찰을 포함한 사찰규정 채택과 상호핵사찰이 이뤄지면 1993년 팀스피리트 문제도 해결될 수 있다고 했다. 반면 북한은 11월 말까지 팀스피리트 철회를 통보하라고 요구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양측은 외세·전쟁 책임 공방까지 벌였다. 북한이 미국과의 팀스피리트를 외세 의존이라며 공세를 펼치자 1992년 12월17일 제13차 회의에서 공로명 남한 위원장이 김일성 주석과 이오시프 스탈린 소련 공산당 서기장을 함께 담은 사진이 실린 신문 자료를 건네며 역공을 펼쳤다. 발끈한 북한 대표가 신문을 찢자 공로명은 “위대한 지도자 사진인데… 찢습니까 왜!”라고 지적했다.
마지막 접촉에서 양측은 의제 순서조차 맞추지 못했다. 1993년 1월25일 판문점 남측 지역 평화의 집에서 열린 위원장 접촉에서 공로명은 팀스피리트가 남북군사공동위원회 소관이라며 이를 이유로 핵통제공동위 논의를 멈추는 것은 부당하다고 했다. 그러나 최우진은 팀스피리트 문제를 먼저 다뤄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결국 양측은 다음 접촉 일정도 잡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이번에 공개된 문서가 남북한이 북핵 문제를 양자협상으로 풀려고 시도한 초기 기록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정승훈 전 남북회담본부장은 “남북한이 제시한 초안들이 사실상 처음 공개되는 자료다. 협상 중에 오간 거친 언사와 책상을 치는 장면까지 생생하게 담겼다”고 평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