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밤 서울 롯데콘서트홀 로비에서 KBS교향악단 사무국 한 팀장을 만났다. 그는 전날 같은 프로그램으로 진행한 공연을 들었다며 들뜬 목소리로 소감을 전했다.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우리 KBS가 전혀 다른 오케스트라인 줄 알았어요.” 자신이 몸담은 악단을 향한 칭찬이면서 오래된 질문이 다시 떠오르는 평가였다. 같은 단원이 같은 곡을 연주하는데, 왜 어느 날은 전혀 다른 악단처럼 들리는가.오케스트라 소리는 단원들 평균 기량만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수십 명이 동시에 어디를 바라보는지, 누구의 호흡을 먼저 듣는지, 어느 순간에 힘을 모으고 놓는지가 음악의 성격을 바꾼다. 지휘자는 그 질서를 세우는 사람이다. 그러나 지휘자의 생각은 허공에서 곧장 음악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것을 단원들의 손과 귀로 옮기는 첫 통로가 악장이고, 그 뒤를 파트 수석들이 잇는다.
거장 카를로스 클라이버의 일화는 이 관계를 잘 보여준다. 그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리허설에서 악장에게 “내가 당신을 따르게 해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위대한 지휘자의 권위도 일방적 명령으로만 작동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악장이 첫 음을 어떻게 물고 들어가는가, 현악기 파트가 그 몸짓을 얼마나 빨리 공유하는가에 따라 해석은 비로소 실제 소리로 구현된다. 이번 KBS교향악단 무대가 인상적이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마에스트로 안드레스 오로스코-에스트라다는 악단 위에 무게를 덧칠하지 않았다. 대신 움직임의 순서를 바꿨다. 베토벤 ‘에그몬트’ 서곡의 느린 도입부는 과장된 비장미에 머물지 않았고, 알레그로의 짧은 악센트는 다음 마디를 밀어내는 추진력으로 이어졌다. 음악은 무겁게 가라앉지 않고 안쪽에서 압력을 얻었다.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에서도 빠른 템포가 음악을 가볍게 만들지 않았다. 클라리넷이 제시한 운명 동기는 어둡게 응집했고, 현악의 결은 선명했으며, 금관과 팀파니가 달아오르는 피날레도 한 구조 안에서 움직였다. 큰 소리만으로 흥분을 만드는 연주가 아니었다. 각 성부가 어디에서 힘을 받고 어디로 향하는지 또렷하게 보였고, 그래서 전체의 에너지가 흩어지지 않았다.객원 악장 홍수진의 존재감도 컸다. 덴마크 국립방송교향악단 악장으로 쌓은 앙상블 감각, 트리오 콘 브리오 코펜하겐에서 길러진 실내악적 감각이 현악군에 스며들었다. 단원들이 맨 앞자리에서 뻗어 나가는 첫 활의 각도와 속도, 프레이즈를 거두는 방식을 주시하며 지휘자와 호흡을 맞추자 현의 질감은 한층 단단해졌다. 이날 현악은 그저 울림을 잘 끌어낸 것이 아니라 지휘자가 가리키는 방향에 따라 긴밀하게 움직였다.그러므로 이 공연은 칭찬만으로 끝낼 일이 아니다. 뛰어난 객원 지휘자와 객원 악장은 악단 안에 잠재한 최고치를 단번에 끌어낼 수 있다. 그러나 그 최고치가 다음 달에도, 다음 시즌에도 반복되려면 일회성 자극만으로는 부족하다. 우연한 만남이 빚은 명연은 하루에 그치지만, 분명한 기준에서 나온 소리는 시즌을 건너 반복된다.
정명훈 음악감독 체제가 KBS교향악단의 장기적 방향을 세우는 일이라면, 그 방향을 매주 무대 위 소리로 번역할 내부 리더십이 필요하다. 악장은 제1바이올린 맨 앞에 앉는 연주자에 그치지 않는다. 지휘자의 언어를 보잉과 호흡과 반응의 질서로 바꾸는 자리다. KBS교향악단은 좋은 지휘자를 만나면 크게 살아나는 악단이다. 그 가능성이 공연마다의 기복으로 들리지 않게 하려면, 악장 공석이라는 현실적 문제를 더는 미룰 수 없다. “다른 오케스트라인 줄 알았다”는 기분 좋은 놀라움이었다. 그 놀라움을 정체성으로 바꾸는 첫걸음은, 비어 있는 악장 자리를 채우는 일이다. 놀라움은 한 번이면 사건이지만, 반복되면 그 악단이 지닌 고유의 소리이자 정체성으로 자리를 잡는다.
이상권 음악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