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한국출판학회가 주최하고 중국신문출판연구원이 공동 주최한 ‘제24회 한·중 출판학술회의’가 지난달 23일 경기 과천 비상교육 사옥 L층 비바룸에서 열렸다. 1996년 시작된 이 학술회의는 올해로 30주년을 맞았다.
올해 대주제는 ‘AI 시대 출판산업의 위기와 기회’. 한국과 중국의 출판학자 10명이 5개 주제를 중심으로 발표와 토론을 진행한 결과, 세부 사례와 접근 방식에는 차이가 있었지만 다섯 가지 공통된 방향에 의견을 모았다.
첫 번째 결론은 AI는 출판의 대체자가 아니라 역량을 키우는 ‘증폭자’라는 점이다.
장샤오빈 중국신문출판연구원 출판인쇄산업연구소장은 “인공지능은 출판에 ‘창조적 파괴’가 아니라 역량 강화를 가져온다”고 평가했다. 그는 한국의 AI 디지털교과서(AIDT) 정책을 사례로 제시했다. 76종의 AI 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했지만 학교 적용률은 30% 수준에 머물렀고, 결국 2025년 8월 국회는 이를 정식 교과서가 아닌 수업 참고자료로 조정했다. 이는 종이 교과서가 가진 신뢰와 권위를 AI가 단기간에 대체하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설명이다.
배진석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선임도 “AI 시대 출판정책은 정부가 단독으로 추진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출판계와 기술기업, 국제기구가 함께 참여하는 다층적 거버넌스로 진화해야 한다”며 AI를 활용한 협력 체계 구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두 번째는 정보가 넘칠수록 출판사의 편집과 검증 기능은 더욱 중요해진다는 점이다.
양쿤 중국신문출판연구원 출판법제·저작권연구소 부소장은 “AI는 출판업을 뒤흔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출판 본연의 역할로 되돌리고 있다”고 말했다. 누구나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는 시대일수록 사실 확인과 품질 검증을 거친 콘텐츠가 더욱 희소한 가치를 갖게 된다는 의미다.
세 번째는 출판의 정체성을 ‘책 판매’에서 ‘콘텐츠와 지식재산(IP) 비즈니스’로 확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문학 인천대 교수는 밀리의서재의 ‘AI 독파밍’ 사례를 소개하며 출판이 데이터 기반의 독서 경험 산업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공병훈 협성대 교수는 하나의 이야기를 웹툰과 영상, 게임 등으로 확장하는 트랜스미디어 IP 전략을 제시했다.
양쿤 부소장은 2025년 중국에서 AI 만화 드라마가 틱톡을 통해 6만 편 이상 제작되고 누적 재생 수가 700억 회를 넘어섰다는 사례를 소개하며 “출판사는 이제 도서를 파는 기업이 아니라 콘텐츠 제품을 판매하는 기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네 번째는 종이책과 디지털 콘텐츠는 경쟁 관계가 아니라 공존 관계라는 점이다.
윤미진 한국폴리텍대 교수는 프리미엄 종이책과 디지털 서비스를 결합한 공존 모델을 제안했다. 양춘란 중국신문출판연구원 출판연구소 부소장은 2024년 중국의 종이·디지털 융합 시장 규모가 97억 위안에 이르렀다고 소개했다. 티엔페이 출판연구소 부연구원도 2025년 종이책 이용률 60.0%, 디지털 독서 이용률 80.8%라는 자료를 제시하며 종이와 스크린이 함께 성장하는 독서 생태계를 설명했다. 반면 같은 해 한국 성인의 종합 독서율은 38.5%에 머물러 양국이 공통의 독서 위기를 서로 다른 양상으로 겪고 있음을 보여줬다.
다섯 번째는 AI 시대 출판의 핵심 인프라로 표준화와 라벨링, 저작권 체계가 부상하고 있다는 점이다. 리치 중국신문출판연구원 부연구원은 인간의 개입 정도에 따라 AI 콘텐츠를 구분해 표시하는 학술출판 표준 3종을 소개했다. 윤미진 교수는 출판물에 AI 활용 수준을 표시하는 ‘AI-Human Collaboration Label(AI·사람 협업 표시)’ 도입을 제안했다. 배진석 선임은 한·중 공동 저작권 가이드라인 마련을 양국 협력 과제의 최우선 과제로 제시했다.
김진두 한국출판학회 회장은 “AI는 출판을 대체하는 기술이 아니라 출판의 가치와 역할을 새롭게 정의하는 기술”이라며 “한·중 양국이 지속적인 학술교류와 공동연구를 통해 출판산업의 혁신과 발전을 함께 이끌어 나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예일 중국신문출판연구원 부원장도 “30주년을 새로운 출발점으로 삼아 양국의 협력을 더욱 심화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