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대법원이 칼럼니스트 E 진 캐럴 성추행 사건에 대한 500만달러(약 77억원) 배상 평결을 뒤집어 달라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이 1996년 캐럴을 성추행하고, 이후 관련 의혹을 부인하는 발언으로 명예를 훼손한 책임을 인정한 2023년 뉴욕 맨해튼 연방법원 배심원단의 민사 평결이 유지됐다.
한국 정치의 감각으로 보면 정치 생명을 흔들고도 남을 사안이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사례는 당사자 사망으로 사법 판단까지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성비위 의혹이 거대 지방권력의 수장을 무너뜨린 사건으로 남았다. 오거돈 전 부산시장은 성추행을 인정하고 시장직에서 물러났다. 한국 정치에서 성비위는 공적 권력의 자격을 묻는 문제로 직결됐다.
미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민주당 소속이던 앤드루 쿠오모 전 뉴욕주지사는 여러 여성을 성희롱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2021년 뉴욕주 검찰 조사에서 원치 않는 신체 접촉과 성적 발언 등이 있었다는 결론이 나오자 주지사직을 사퇴했다. 재판에서 유죄판결이 확정된 상태도 아니었다. 그런 기준으로 보면 트럼프 대통령의 캐럴 사건은 결코 가벼운 사안이 아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이런 통상적 정치 문법이 거의 작동하지 않는다. 왜일까.
트럼프 대통령을 둘러싼 법적·도덕적 논란이 반복되면서 무거운 사건조차 ‘또 하나의 트럼프 뉴스’로 소비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의 방어막은 결백이 아니라 낮아진 기대치다. 깨끗하다고 믿었던 정치인이 성비위 의혹에 휩싸이면 배신감이 생긴다. 그러나 오래전부터 막말과 추문, 수사와 재판을 동반해온 정치인에게는 다른 기준이 작동한다. 지지자들은 새 의혹을 인격의 새로운 결함으로 받아들이기보다, 이미 알고 있던 트럼프의 일부로 처리한다. ‘그럴 법한 사람’이라는 인식이 충격을 줄이는 완충재가 되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익숙함 위에 정치적 박해 프레임을 덧씌운다. 그는 캐럴 사건에서도 배심원 평결 직후 “나는 이 여성이 누군지 전혀 모른다”며 “수치스러운 평결이자 사상 최대 마녀사냥의 연장”이라고 반발했다. 성추행과 명예훼손 책임을 인정한 민사 판단을 자신의 행위에 대한 판단이 아니라 자신을 겨냥한 정치적 공격으로 재해석했다.
이 전략이 통하는 배경에는 이미 당파화된 여론이 있다. AP통신과 시카고대 여론조사기관 NORC가 공동 운영하는 AP-NORC 공공문제연구센터가 2024년 미국 성인 111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 트럼프 대통령의 성추문 입막음 돈 지급 관련 업무기록 위조 사건 유죄평결을 두고 공화당원의 83%는 정치적 동기가 있다고 봤다. 반면 민주당원의 77%는 정치적 동기가 없다고 답했다. 같은 사법 판단이 한쪽에는 법적 책임으로, 다른 한쪽에는 정치적 공격으로 받아들여지는 구조다.
문제는 ‘원래 그런 사람’이라는 익숙함이 트럼프 대통령 한 사람을 넘어 정치권 전반으로 퍼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정치인, 그리고 정치에 대한 피로와 냉소가 쌓일수록 유권자는 정치인의 결함에도 무뎌진다. 그러나 익숙함은 면죄부가 될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의 사례는 우리가 어떤 결함을 너무 오래 봐왔다는 이유만으로 가볍게 넘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