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도심에서 귀가하던 여고생을 살해한 장윤기(23)의 아버지인 장모 경감이 사건 관련 주요 증거를 폐기하고도 형법상 ‘친족 간 처벌 면제 특례’에 따라 처벌을 피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법조계에선 친족 특례 규정 적용을 강력범죄에 한해 배제하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섣부른 특례 규정 폐지는 자칫 연좌제 피해를 가져올 수 있다는 반론도 있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전날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광주 여학생 피습 살인 사건’의 범인인 장윤기의 아버지가 현직 경찰 신분으로 증거를 인멸했던 사실이 드러났다”며 “중요 증거를 인멸했음에도 곧바로 처벌하기가 어려운 현실”이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형법 155조는 타인의 형사사건에 관한 증거를 인멸한 자를 처벌한다고 규정하면서도 같은 조 4항을 통해 친족이 가족을 위해 증거를 인멸한 경우에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친족 간 특례’ 규정을 뒀다. 이는 1953년 형법 제정 때부터 도입한 조항으로, ‘법은 가정의 문턱을 넘지 않는다’는 고대 로마법 전통과 ‘가족 간 서로 숨겨주는 것이 도리’(부자상은·父子相隱)라는 유교 사상에서 착안됐다. 정 장관은 가족 간 절도, 사기 등 재산범죄의 처벌을 면제해 주던 ‘친족상도례’ 규정이 지난해 12월 형법 개정을 통해 폐지된 점을 들며 “친족 특례 역시 개선돼야 할 부분은 없는지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법조계에서는 친족 특례 규정이 자칫 수사·재판 과정에서 실체적 진실 규명을 방해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종언 법무법인 존재 변호사는 “농촌 사회였던 형법 제정 당시에는 ‘법이 가족의 일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사고가 지배적이었지만 시대가 바뀌며 핵가족화, 개인 인권 보호 중시, 자유민주주의 확립으로 친족 특례 조항이 사법 정의를 저해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친족의 증거인멸을 임의적 감경 대상으로 바꿔 법원 또는 수사기관이 형 면제 여부를 재량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하거나, 강력 특수범죄에 한해서는 친족 특례 적용을 배제하도록 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증거인멸 및 범인은닉죄의 친족 처벌 특례가 폐지될 경우 가족 간 서로를 품어줘야 한다는 사회상규가 무너지고 가족 해체와 연좌제 피해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장 경감은 사건 발생 사흘 뒤인 5월8일 장윤기가 거주하던 원룸을 찾아가 가슴과 목 부위가 훼손된 리얼돌을 여러 조각으로 나눠 폐기처분했다. 아들이 학창시절 쓰던 구형 휴대전화도 태워 없앴다. 아들의 범행 동기가 성폭력에 초점이 맞춰질 것을 염려해서다. 광주 한 지구대에서 경찰관으로 근무하던 그는 사건 발생 직후 휴직했다. 경찰은 앞서 리얼돌에서 장윤기의 유전자 정보(DNA)를 채취했지만, 부피가 큰 리얼돌을 증거물로 수거해 보관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해 동영상으로 촬영하고 그대로 원룸에 뒀다.
보완수사에 나선 검찰은 리얼돌을 근거로 장윤기에게 성범죄 살해 목적이 있었다고 판단해 일반 살인죄보다 처벌이 무거운 강간살인죄를 적용했다. 실물 리얼돌이 이미 폐기돼 재판에는 경찰이 촬영한 영상 등 자료만 증거로 제출됐다. 경찰청은 당시 경찰 수사과정에 미흡한 부분이 있는지 여부와 장 경감의 증거인멸 의혹에 대해 감찰을 통해 사실관계를 확인하겠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은 이날 범인은닉죄, 증거인멸죄 등에 대한 친족 간 특례 규정을 삭제하는 내용의 형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