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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방 아닌 맥락·세계관…언더커버셰프·스레파 등 2세대 요리 예능 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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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프와 요리를 내세운 예능이 다시 TV를 점령하고 있다. TV조선 ‘왕은 무얼 자셨는가’, tvN ‘언더커버 셰프’, ‘스트릿 레스토랑 파이터’는 모두 ‘먹는 프로그램’처럼 보이지만, 정작 이들이 겨냥하는 것은 맛이 아니라 음식을 둘러싼 세계에 가깝다. 공통 키워드는 ‘요리+역사’, ‘요리+노동’, ‘요리+장사’다.

 

◆역사와 밥상을 엮은 TV조선 ‘왕은 무얼 자셨는가’

 

오는 8일 방송 예정인 ‘왕은 무얼 자셨는가’는 조선 500년, 왕의 밥상을 따라가며 시대와 사람을 읽어내는 이른바 ‘역사 미식 예능’이다.

 

왕이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기록을 풀어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왕실의 밥상을 스튜디오에서 실제로 재현해 출연진이 직접 맛보는 구성이 특징이다.

역사 강사와 코미디언이 함께 나와 궁중식·보양식·금기 음식에 담긴 사연을 풀어내면서 “한식은 어떻게 이런 모양이 됐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형식이다.

 

교과서 속 역사가 ‘먹는 이야기’와 만나 보다 쉽게 다가오도록 한 점이 눈에 띈다.

 

◆본고장 주방 막내로 떨어진 ‘언더커버 셰프’

 

지난 5월 21일부터 방송 중인 ‘언더커버 셰프’는 스타 셰프들을 일부러 가장 낮은 자리로 내려놓은 예능이다.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셰프들이 자신의 요리 뿌리가 된 해외 식당에 ‘주방 막내’로 위장 취업해 정체를 숨기고 일한다.

현지 식당은 이들을 ‘요리를 배우러 온 일반인’ 정도로만 알고, 셰프들은 5일 안에 신메뉴를 등록하는 등 히든 미션을 수행해야 한다.

 

화려한 TV 속 셰프 이미지 대신, 언어도 서툴고 동선도 낯선 본고장 주방에서 혼나고 실수하는 ‘막내 서사’가 중심이다.

 

누가 더 잘 굽고 더 잘 튀기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한 셰프의 기술과 철학이 어떤 현장과 사람, 노동을 통과해 만들어졌는지를 보여주는 ‘직업 리얼리티’에 가깝다.

 

◆손님과 매출이 심사위원인 ‘스트릿 레스토랑 파이터’

 

지난달 21일 첫 방송한 ‘스트릿 레스토랑 파이터’(일명 ‘스레파’)는 요식업계 고수 20팀이 길바닥 장사로 맞붙는 장사 서바이벌이다.

 

미쉐린 셰프, 인기 맛집 사장, 대형 외식 브랜드 운영자까지 계급장을 떼고 실제 상권에 나가 장사를 한다.

이 프로그램의 가장 큰 포인트는 심사위원이 없다는 점이다. 음식을 먹고 돈을 내는 손님과 그 결과로 나온 매출액이 곧 심사 결과다.

 

여기서 평가받는 건 요리 실력만이 아니다. 메뉴 구성, 가격 전략, 회전율, 손님 응대, 상권 분석, SNS 홍보까지 장사의 모든 요소가 게임의 변수가 된다.

 

요리를 소재로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자영업 생존기’에 가까운 포맷이다.

 

◆‘먹방’이 아니라 ‘맥락’과 ‘세계관’

 

이 세 프로그램에는 몇 가지 뚜렷한 공통점이 있다.

 

첫째, 음식 그 자체보다 ‘맥락’과 서사에 초점을 맞춘다. 한 접시 음식은 ‘조선의 왕권과 신분제’, 한 그릇 파스타는 ‘셰프의 성장과 노동’, 한 그릇 국밥은 ‘자영업의 흥망’과 직결된 상징이 된다.

 

둘째, 스튜디오를 벗어나 ‘현장성’을 강화했다. 왕의 밥상은 궁궐·사료를 통해 복원하고, 셰프와 자영업자는 해외 주방과 실제 상권으로 던져진다. 꾸며진 세트보다 ‘진짜 판’에서 벌어지는 일에 재미를 느끼는 요즘 시청자의 취향을 반영한 선택이다.

 

셋째, 권위 있는 전문가 심사 대신 ‘시장과 대중의 평가’를 앞세운다. ‘언더커버 셰프’에서는 본고장 셰프와 손님이, ‘스레파’에서는 손님과 매출이 최종 심판자다. “요리는 결국 누가 먹느냐, 누가 돈을 내느냐가 중요하다”는 가장 현실적인 기준이 예능 안으로 들어온 셈이다.

 

◆왜 지금, 이런 요리 예능인가

 

한동안 TV는 레시피·맛집·먹방 포맷으로 넘쳐났다. 그 결과 “또 먹냐”는 피로감도 커졌다.

 

지금 나오는 요리 예능은 이 1차 유행 이후 등장한, 이른바 ‘2세대 요리 예능’에 가깝다. 먹는 장면·리액션 중심에서 요리가 만들어지는 역사·노동·시장으로 카메라가 이동했다.

 

“맛있다”를 반복하던 프로그램에서 “왜 이런 음식이 생겼고, 누가 어떤 환경에서 만들고 파는가”를 묻는 프로그램으로 바뀐 것이다.

 

여기에 현재 한국 사회의 정서도 겹친다. 경기 침체와 자영업 위기 속에서 장사 서바이벌은 곧 현실이다. MZ세대뿐 아니라 중장년층까지 ‘직업의 내막’과 ‘노동의 현장’을 궁금해한다.

 

한식·K콘텐츠의 글로벌 확장 속에서 음식의 뿌리와 정체성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결국 세 프로그램은 모두 같은 말을 하고 있다.

 

“우리가 매일 먹는 이 한 끼는, 사실 거대한 이야기의 끝에서 나온 결과물이다.”

 

먹는 모습을 구경하는 시대에서 먹는 것 뒤에 있는 사람과 구조를 들여다보는 시대로 요리 예능이 진화하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