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8·17 전당대회 초반레이스가 뜨거워 지고 있다. 연임에 도전하는 정청래 전 대표. 당으로 돌아온 김민석 전 국무총리. 재보궐선거로 국회로 복귀한 송영길 의원간 벌어지는 경쟁구도인데, 초반 레이스에서 과열된 분위기가 읽혀진다.
정당의 당원들이 모여 한 정당의 대표를 뽑거나 당의 노선을 정하는 전당대회는 한 정당의 의사결정구조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다보니 당내 경쟁이 과도하게 펼쳐질 때엔 전당대회의 온도도 올라간다. 특히 이번 전당대회는 2년 뒤 23대 총선 공천권을 결정한다는 점에서 좀 더 경쟁구도가 커지고 있다는 평가다.
역대 전당대회가 모두 과열됐던 것은 아니다. 과열되지 않는 전당대회도 여럿 있었다. ‘과열’을 가리는 기준은 무엇일까. 당 내 계파 경쟁구도에서 한 계파가 다른 계파를 압도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 경우 갈등 구조가 오래간다. 집권여당의 전당대회에서는 청와대가 얼마나 전당대회에 신경을 쓰느냐가 ‘과열’의 기준으로 평가받곤 했다. 이번 8·17 전당대회는 어떤 길을 가게 될까.
◆결국 분열로 이어졌던 2015년 전대
현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인 새정치민주연합은 2015년 2월 전국대의원대회를 열고 지도부를 선출했었다. 이때 당 대표로 선출된 사람이 문재인 전 대통령이다. 당시 문 전 대통령은 강력한 당내 대권후보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문 전 대통령은 이때 박지원 의원로부터 강력한 도전을 받았다. 박 의원은 문 전 대통령을 상대로 ‘부산 친노’, ‘패권주의자’등의 공세를 강하게 펼쳤다. 강력한 박 의원의 비판에 문 전 대통령이 “왜 없는 말을 하느냐. 그만좀 하시라”고 말할 정도였다.
결과적으로 문 전 대통령은 45.3%의 득표를 기록, 41,7%의 박 의원을 3.6%포인트차로 제치고 당 대표로 선출됐지만 이후에도 끊임없이 견제에 시달렸다.
이 전당대회는 민주진보진영의 전당대회 중 가장 큰 후폭풍을 남긴 전당대회로 평가받는다. 당시를 기억하는 한 민주당 관계자는 “최근 10년 간 전당대회 중 가장 갈등이 심했던 전당대회가 그 전당대회였다”고 평가했다.
이렇게 갈등양상이 컸던 것에는 진보진영 내에서 문 전 대통령이외에 안철수 의원도 유력 대권후보로 평가받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문 전 대통령을 정점으로 하는 친노세력과 안 의원과 가까운 비노진영 중 뚜렷한 우위 구도가 형성되지 않았다. 안 의원과 박 의원은 이 전당대회에서 협력관계를 구성하진 않았지만, 문 전 대통령을 정점으로 하는 친노진영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박 의원 지지세에 어느정도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다. 결국 이러한 갈등은 2016년 총선을 앞두고 진영 내 분열로 이어진다. 2016년 안 의원과 박 의원을 비롯한 호남출신 정치인들은 친노진영을 비판하며 국민의당을 결성했고, 같은 해 20대 총선에서 제3당으로 약진했다. 이러한 분열의 시작이 2015년 전당대회였던 셈이다.
◆당·청관계 핵심 의제였던 2014년 새누리당 전대
이번 8·17 전당대회에서 핵심쟁점 중 하나는 집권여당과 청와대간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다. 당권주자 중 한 명인 김 전 총리와 송 의원 등은 지난 1년간 정 전 대표와 청와대간 관계가 불편했다고 주장하면서 공세를 펼치고, 정 전 대표측은 이를 전면 부인한다.
집권여당과 대통령간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는 매 전대때마다 핵심 의제 중 하나다. 이를 가장 정확히 보여준 사례가 2014년 새누리당 전당대회다. 새누리당을 강하게 장악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당선된 후 황우여 지도부 체제로 운영됐던 새누리당은 박 전 대통령 임기 2년차였던 2014년 전당대회를 연다. 당시 전당대회는 서청원 후보와 김무성 후보간 양강 구도로 치러졌다.
두 후보 모두 청와대와 여당간 협력관계를 강조했지만, 이때도 핵심 쟁점은 당청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였다. 친박(친박근혜)계의 지원을 받았던 서 후보는 ‘대통령 성공을 뒷받침하겠다’는 의도를 여러차례 피력했고, 2년전 대선에서 박근혜 캠프 좌장을 맡았던 김 후보는 당·청관계 재정립을 바라는 여론을 등에 업고 비박(비박근혝)계 후보군으로 분류되어 있었다. 당시 박 전 대통령과 청와대는 특별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지만 전당대회 당일 박 전 대통령이 참석하면서 ‘박심’이 서 후보 지원으로 간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낳기도 했다. 하지만 전당대회 결과 김 후보가 서 후보를 제치고 당 대표로 선출됐다. 이후 김무성 대표는 2년간의 대표 재임기간 동안 청와대와 직·간접적으로 충돌하는 모습을 여러번 보였고, 결국 김 대표와 박 전 대통령간 갈등은 2016년 총선에서의 공천 파동으로 이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