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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론 시대라더니…현대전의 복병은 풍선이었다 [박수찬의 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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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전도 못 막는 풍선
200달러로 방공망 흔든다
북한도 노릴 새 전술

‘구시대 유물’로 인식됐던 풍선이 현대전에서 다시 등장하고 있다.

 

18세기에 처음으로 군사적 용도로 쓰인 풍선은 두 차례 세계대전에서 관측·차단 수단으로 활용됐다.

한 미군 장병이 헬륨으로 채워진 풍선을 하늘에 띄우고 있다. 미 육군 제공
한 미군 장병이 헬륨으로 채워진 풍선을 하늘에 띄우고 있다. 미 육군 제공

위성·항공기·드론에 밀려 사라지는 듯 했지만,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과거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전장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군사 비행 기술인 풍선이 인공지능(AI)과 전자전 등 첨단 기술이 지배하는 현대전의 빈틈을 파고드는 모양새다.

 

미사일과 드론을 순식간에 떨어뜨리는 전파방해장비도 바람 따라 흘러가는 풍선의 움직임을 막지는 못한다.

 

18세기 발명품이 21세기 전장에 재등장한 핵심 이유다.

미군 장병들이 고고도 풍선을 띄울 준비를 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미군 장병들이 고고도 풍선을 띄울 준비를 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미사일·드론 플랫폼으로 쓰여

 

드론과 전자전. 우크라이나 전쟁을 대표하는 두 가지 키워드다.

 

자폭드론이 전선을 넘나들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내륙 지역을 타격하고, 전선에선 1인칭 시점(FPV) 드론 침투를 막고자 전자전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이러다보니 전파방해 시도를 무력화하는 장비의 필요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풍선은 이같은 수요에 부합하는 장비다. 전파방해가 바람의 방향을 바꾸지는 못한다.

 

레이더·적외선 장비에 포착될 위험이 매우 낮고, 소음이 없어서 청음 장비로도 포착하기 어렵다. 비용도 200달러 정도에 불과하다.

 

미국 군사전문매체 디펜스뉴스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성층권(고도 10∼50㎞)에 떠 있는 풍선에서 발사되는 미사일을 만들고 있다.

 

풍선과 미사일·드론이라는 각각의 공격 수단을 합치면, 단독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훨씬 더 깊은 곳까지 타격할 수 있다.

 

미사일을 장착한 풍선이 러시아 내륙 지역에 침투해서 미사일을 쏘면, 사거리가 짧은 유도무기도 종심타격이 가능한 전략무기로 거듭난다.

계류식 풍선이 하늘 위에 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계류식 풍선이 하늘 위에 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대표적인 무기가 다트(DART)다.

 

고도 11~17㎞의 풍선에서 투하되어 비행하다가 6.4㎞ 고도까지 하강하면 항법 시스템이 꺼지고 엔진이 점화, 표적까지 날아간다. 이를 통해 러시아군의 전자전 시도를 회피할 수 있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부는 바람을 잘 이용하면, 러시아 방공망을 돌파해 모스크바까지 풍선을 보낼 수 있다.

 

러시아로선 사전에 포착하기 어려운 미사일 탑재 풍선의 기습 공격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풍선에서 드론이 투하되는 것도 있다. 최근 온라인에선 미국 페레니얼 오토노미사가 만든 AI 공격 드론인 호넷이 우크라이나 풍선에서 투하되는 모습이 등장했다.

 

호넷은 구글 전 최고경영자(CEO) 에릭 슈미트가 설립한 미국 방위 기술 스타트업 페레니얼 오토노미사가 만든 드론이다. 강력한 스텔스 성능과 자율 조준 능력을 갖췄으며, 최대 150㎞를 날아간다.

 

유로마이단 프레스에 따르면, 우크라이나군은 호넷을 풍선에 탑재해 수십㎞를 이동한 뒤 7.9㎞ 이상의 고도에서 투하했다.

 

이를 통해 호넷의 비행거리는 기존보다 두 배 가까이 늘어날 수 있다.

 

이같은 풍선 공격에 대해 러시아군은 S-300, S-400 지대공미사일로 대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0달러짜리 풍선을 저지하려고 수백만 달러짜리 지대공미사일이 투입되는 소모전을 치르는 셈이다.

 

바람을 타고 떠다니는 풍선 외에도 특정 장소에 머무는 계류식 풍선도 우크라이나에서 쓰이고 있다.

 

전파방해에 의해 단절되는 드론·지상부대 간 무선통신을 중계하거나, 전선 일대 러시아군 드론 기지 등에서 발신하는 전자파를 수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미군 장병이 풍선에 헬륨을 채운 상태에서 풍선을 줄로 묶고 있다. 미 공군 제공
한 미군 장병이 풍선에 헬륨을 채운 상태에서 풍선을 줄로 묶고 있다. 미 공군 제공

◆저비용 고효율…날씨 영향 등 문제

 

풍선이 현대전에서 새로운 비대칭 무기로 주목받는 것은 저렴하면서도 전자전의 영향에서 자유롭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에서 쓰이는 풍선은 1기당 200달러에 불과하다.

 

하지만 러시아군이 이를 요격하기 위해선 수백만 달러짜리 지대공미사일이나 전투기를 투입해야 한다. 비용 측면에서 방어 측이 너무나 불리하다.

 

풍선은 비행 과정에서 그 어떤 전자적 신호나 통신도 필요치 않다. 풍향과 풍량만 맞으면 된다. 전파방해도 해킹도 통하지 않는다.

 

항공기·미사일·드론보다 운용이 훨씬 간단하며, 공간적 제약도 거의 없다.

 

미 육군은 최근 고고도 풍선에 성층권 비행이 가능한 태양광 무인정찰기를 탑재해서 띄우는 실험을 실시했다.

 

실험에 쓰인 풍선은 미국의 어반 스카이(Urban Sky)가 만든 것이다. 고도 약 12㎞~23㎞ 고도에서 작동하며, 제한적인 항법제어기능이 있어 목표 지역 상공에서 위치를 유지할 수 있다.

2024년 9월 6일 강원 원주시 문막읍 동화리 한 건물 옥상에 북한이 살포한 것으로 추정되는 쓰레기 풍선이 놓여 있다. 강원특별자치도소방본부 제공
2024년 9월 6일 강원 원주시 문막읍 동화리 한 건물 옥상에 북한이 살포한 것으로 추정되는 쓰레기 풍선이 놓여 있다. 강원특별자치도소방본부 제공

활주로나 별도의 발사 장치가 없어도 한 명이서 5분이면 기구를 띄울 수 있다.

 

태평양 지역의 섬 중에선 무인기가 이륙할만한 정도의 충분한 공간이 부족한 곳이 많다.

 

기구를 사용하면 이같은 공간적 제약에 관계 없이 무인기를 이륙시킬 수 있다.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도 중요한 장점이다.

 

탑재물의 종류에 따라 통신 중계, 지상 표적 촬영, 신호정보 수집, 폭발물 투하 등의 임무 수행이 가능하다.

 

군사·정치적 제재 대상이 아닌 라텍스나 폴리에틸렌 등으로 제작하므로 재료를 구하기도 쉽다.

 

단점도 뚜렷하다. 우선 날씨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띄울 수 없다.

 

지상 케이블로 고정되어 있는 풍선은 적군의 공격에 노출되어 있다. 아군의 오인사격 위험도 있다.

 

헬륨을 별도로 확보해야 한다는 것도 걸림돌이다. 헬륨은 대부분 국가에서 수입에 의존한다.

 

이란 전쟁처럼 글로벌 공급망에 타격이 생기면, 헬륨 확보도 문제가 될 수 있다.

2024년 10월 4일 서울 종로구 상공 위에서 북한이 보낸 쓰레기 풍선이 상공을 떠다니고 있다. 뉴스1
2024년 10월 4일 서울 종로구 상공 위에서 북한이 보낸 쓰레기 풍선이 상공을 떠다니고 있다. 뉴스1

◆한반도에서도 위협

 

풍선을 군사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한반도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북한은 윤석열정부 시절 휴전선 이남으로 쓰레기 풍선 수천 개를 띄웠다. 지름 2~3m, 길이 3~4m 크기인 풍선은 개당 10만원 정도의 비용이 들 것으로 추정됐다.

 

풍선은 각종 쓰레기와 종이류 등이 들어있었다. 이를 통해 한국 사회에 혼란을 초래하려는 의도라는 해석이 많았다.

 

하지만 일부 풍선이 위성항법체계(GPS) 발신기를 탑재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쓰레기 풍선이 단순한 심리전 차원은 아니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GPS를 이용하면 풍선의 이동 경로와 바람의 패턴, 풍선 낙하 분포 등에 대한 데이터 확보가 가능하다.

2024년 6월 9일 북한이 날린 쓰레기 풍선이 인천시 중구 연안부두 앞바다에 떨어져 있다. 세븐스타호 제공
2024년 6월 9일 북한이 날린 쓰레기 풍선이 인천시 중구 연안부두 앞바다에 떨어져 있다. 세븐스타호 제공

현 정부에선 북한의 쓰레기 풍선 도발이 중단됐지만, 이미 축적한 데이터가 있는 만큼 한반도 정세 변화에 따라 도발은 재개될 수 있다.

 

북한이 과거의 데이터를 토대로 풍선을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할 방법을 연구할 가능성도 있다.

 

북한이 우크라이나 전쟁 파병을 통해 드론·대드론 작전과 보병전술 등을 배운 것처럼 풍선을 실전에서 쓰는 것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었을 가능성도 있다.

2024년 10월 4일 서울 서초구 상공에 떠 있던 북한 쓰레기 풍선(사진 왼쪽)에서 흰색 연기가 나오고 있다. 1분여 뒤 쓰레기 풍선(사진 오른쪽)에서 적재물이 낙하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4년 10월 4일 서울 서초구 상공에 떠 있던 북한 쓰레기 풍선(사진 왼쪽)에서 흰색 연기가 나오고 있다. 1분여 뒤 쓰레기 풍선(사진 오른쪽)에서 적재물이 낙하하고 있다. 연합뉴스

우선 한·미 연합군 방공망을 소모시키는 용도로 활용할 수 있다.

 

싸구려 풍선에 레이더 반사체를 장착해서 남쪽으로 띄우면, 고가의 지대공미사일 발사를 유도할 수 있다. 한·미 연합군이 북한보다 우위에 있는 방공망을 약화시키는 효과가 있다.

 

대량의 풍선이 한국 내륙 지역 곳곳에 낙하하면 폭발물처리반과 화생방대응팀이 출동해서 대응해야 한다. 군사적 역량을 분산시키는 결과로 이어진다.

 

따라서 한국군은 ‘낙하 후 수거’ 외에도 북한 풍선 도발에 대응할 방법을 미리 확보할 필요가 있다. 가성비 측면에서 풍선 요격에 효과적인 수단을 개발하는 한편 탐지 자산 확보도 검토해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또한 풍선과 GPS 교란 등의 비대칭 도발이 복합적으로 이뤄질 경우에 대비한 민·군 통합 컨트롤타워를 구축하고 대응 절차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