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에 신변보호를 요청했던 60대 여성이 옛 연인에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경찰은 접근금지 명령과 스마트워치 지급으로 보호 조치에 나섰으나 결국 범행을 막지 못했다.
법무부와 경찰청이 6일부터 살인·성폭력·강도 등 특정범죄로 전자발찌를 찬 범죄자가 스토킹·가정폭력 범죄를 재차 저지르는 것을 막기 위해 관련 정보 공유 등 ‘고위험 대상자 협력 대응 방안’을 시행하는 가운데 이번 범행은 다시 한번 ‘공권력 안전망’의 사각지대를 드러냈다는 지적을 받는다.
과거 관련 범죄를 저지르거나 전자발찌를 부착한 사람에 대해선 강력한 대응이 이뤄지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스토킹 체크리스트나 반복적 스토킹 전력 등으로 위험도를 판단하기 때문이다.
◆경찰, 스토킹 범죄 “전부 입건” 초강수…다시 사각지대 노출
5일 경찰에 따르면 성남중원경찰서는 이날 오전 3시쯤 성남시 중원구 상대원동의 한 길거리에서 4년간 교제하다 헤어진 여성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혐의로 50대 A씨를 붙잡아 수사하고 있다.
A씨는 범행 직후 현장에서 자해를 시도해 인근 병원으로 옮겨져 수술을 받았으나 중태다.
경찰 조사 결과, A씨는 이날 오전 피해자 B씨가 일하는 직장 근처에서 퇴근 시간까지 숨어있다가 새벽길을 나선 B씨를 습격한 것으로 파악됐다.
B씨는 습격을 당하는 긴박한 순간에 경찰이 지급한 신변보호용 스마트워치로 다급하게 구조 버튼을 눌렀다. 신호를 접수한 경찰이 3분 만에 현장에 도착해 피를 흘리며 쓰러진 B씨를 병원으로 이송했으나 치명상을 입은 B씨는 숨을 거뒀다.
숨진 B씨는 한 달 전 일종의 ‘구조 신호’를 보낸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달 8일 “전 남자친구가 헤어진 이후에도 계속 못살게 군다”며 경찰에 신고하고 분리 조치를 요구했다. 당시 경찰은 물리적 폭력 정황이 드러나지 않아 A씨에게 서면 경고장을 발부하는 데 그쳤다.
A씨는 경고장을 받은 뒤에도 재차 협박성 문자메시지를 보내며 괴롭혔고, 경찰이 나서 B씨에게 스토킹 혐의로 고소할 것을 권유했다.
지난달 10일 피해자 B씨는 고소장을 접수했다. 이후 경찰은 법원에 요청해 A씨에 대해 주거지 및 100m 이내 접근금지와 휴대전화 등 통신 수단을 이용한 연락금지 조치(잠정조치 2∼3호)를 이행했다. B씨에게는 스마트워치를 지급했다.
수사를 마친 경찰은 지난달 25일 해당 스토킹 고소 사건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A씨는 사건이 검찰로 넘어가 사법 절차 진행을 앞두자 앙심을 품은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 관계자는 “아직 A씨에 대해 범행 동기 등을 조사하지 못했다”며 “A씨의 의식이 회복되는 대로 체포영장을 집행하고 계획범죄 여부 등을 수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법무부-경찰, ‘스토킹 고위험자’ 정보 공유…대응책은 확대
경찰청에 따르면 스토킹 관련 신고는 2023년 3만1824건, 2024년 3만1947건에서 지난해 4만4687건으로 2년 새 40%가량 증가했다. 이에 경찰은 모든 스토킹 범죄를 입건해 수사하기로 하는 등 최근 안전조치를 강화했다. 다양한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놓은 것이다.
이번 사건이 발생한 이튿날인 6일 시행되는 법무부와 경찰의 ‘스토킹 고위험자’ 정보 공유 방안도 마찬가지다.
유재성 경찰청장 직무대행은 “법무부와 긴밀한 정보 협력을 통해 접근 단계부터 가해자를 철저히 격리하는 등 관계성 범죄 위협으로부터 피해자가 안심할 수 있는 실질적 안전망을 구축하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 같은 대책이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에 그친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달 19일 밤 서울 영등포구에선 50대 남성이 공원 화장실에서 전처의 남자친구를 수차례 흉기로 찌르고 도주한 혐의로 체포돼 구속됐다. 가해자는 앞서 스토킹 경고장까지 받았지만, 현실적으로 범행을 막을 뚜렷한 대책은 없는 상태였다.
지난 3월 성폭력 범죄로 전자발찌를 차고 있던 가해자가 저지른 ‘남양주 스토킹 살인사건’ 등이 명확한 범죄 징후가 있던 것과 비교하면 최근 일어난 스토킹 관련 강력범죄들은 경찰 대응에 다시 과제를 안긴 셈이다.
그동안 경찰은 피해자가 강하게 진술을 거부하거나 가해자 처벌을 원치 않으면 입건하지 않았지만, 최근 범죄 사실만 확인되면 모두 수사한다는 내부 지침을 내린 상태다.
반면 피해자가 보복이 두려워 경찰의 안전조치를 거부하거나 가해자가 과거 관련 범죄 이력이 없을 경우 강제할 뚜렷한 방법이 없다는 점은 여전히 한계로 지적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