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오페라단이 창단 20주년 기념공연으로 모리스 라벨의 단막 희극 ‘스페인의 시계’와 피에트로 마스카니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를 3~5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했다. 사랑이 라벨의 손에서는 시계태엽처럼 정교하게 맞물리는 소동극이 되고, 마스카니의 손에서는 질투와 명예에 짓눌려 죽음으로 곤두박질치는 비극이 된 무대였다. 오페라라는 장르가 품을 수 있는 감정의 진폭을 확인할 수 있는 공연이었다.
국내 무대에선 보기 드문 작품인 1부 ‘스페인의 시계’ 무대는 작은 시계방이다. 시계공 토르케마다가 마을 시계를 맞추러 나간 한 시간 동안 아내 콘셉시온이 연인을 불러들이며 벌어지는 소동극이다. 시인 곤잘베와 은행가 돈 이니고가 차례로 대형 괘종시계 속에 숨겨지고, 영문도 모른 채 시계를 방마다 옮기는 마부 라미로의 우직함이 결국 콘셉시온의 마음을 얻는다. 아리아 중심이 아니라 프랑스어 억양을 그대로 살린 대화체 창법, 즉 레치타티보에 가까운 노래로 극이 진행된다.
성악의 카타르시스 대신 언어의 리듬과 관현악의 재치를 듣는 경험이 신선했다. 가수들의 능청맞은 연기가 관건인데 이날 무대는 그 요구에 부응했다. 가장 먼저 귀를 사로잡은 것은 째깍거리는 시계 소리를 그대로 관현악으로 옮겨놓은 도입부였고, 하바네라를 위시한 스페인풍 무곡의 색채가 극 전체에 스며 있었다. 다섯 배역 전원이 무대에 나와 ‘보카치오의 교훈’을 노래하는 마지막 5중창은 이 짧은 소동극에 마침표를 찍는 유쾌한 매듭이었다.
연출 김숙영은 두 작품 모두를 오래된 장원 저택의 거실에 걸린 그림을 들여다보는 듯한 무대로 빚어냈다. 초반부 출연진이 회전무대를 타고 무대를 한 바퀴 돌아 나가는 동선을 통해 마치 액자 속 인물들이 한 컷씩 넘어가는 듯한 통일된 인상을 남겼다.
2부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에서는 조명을 활용해 마을 광장과 성당, 주인공 모친 루치아가 운영하는 술집의 하루가 입체적으로 그려졌다. 새벽의 밀회, 성모상을 앞세운 행진에 이어 마을 주민이 성당으로 줄지어 들어가는 부활절 풍경, 햇빛이 긴 그림자를 만드는 늦은 오후의 정경이 아름다운 정서를 만들었다. 부활을 축하하는 축제와 그 뒤에서 무르익어가는 살의가 나란히 놓이는 성(聖)과 속(俗)의 충돌이 대사나 연기가 아니라 빛의 시간 변화만으로 설득력 있게 그려졌다.
산투차 역을 맡은 임세경은 원숙한 기량을 선보였다. 2015년 한국인 최초로 아레나 디 베로나 페스티벌에서 ‘아이다’ 주역을 맡았던 스타 성악가답게 버림받은 여인의 절망과 질투를 깊이 있게 전달했다. 투리두 역 국윤종은 한국을 대표하는 테너다운 탁월한 성량을 첫 장면부터 뿜어냈고, 축배의 노래에서 어머니와의 작별로 이어지는 종반부가 압권이었다. 바리톤 스타브로스 만티스는 호쾌하게 뽑아내는 음색으로 아내의 배신을 확인하고 투리두에게 결투를 요구하는 격정을 연기했다.
가장 자주 연주되거나 방송되는 오페라 명곡 중 하나인 부활절 합창 장면도 아름답고 탁월했다. 홍석원이 지휘한 프라임필하모닉오케스트라는 이 작품을 상징하는 대목인 간주곡에서도 아름다운 선율을 잘 뽑아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