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첫해인 1950년 11∼12월 북한 함경남도 장진군의 저수지 부근에서 미군과 중공군 간에 장진호 전투가 벌어졌다. 인천 상륙작전 성공 후 서울 등 수도권의 북한군을 섬멸하고 거침없이 북진하던 미군은 중공군의 비밀스러운 개입을 미처 몰랐다. 비겁하게도 장진호 일대에 매복해 있던 중공군은 미군을 포위하고 치명적 기습을 가했다. 포병 등의 화력은 물론 공군력에서도 미군이 훨씬 우세했으나, 인해전술을 앞세운 중공군은 사상자가 얼마나 발생하든 개의치 않았다. 더욱이 그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밤이면 기온이 영하 30도 밑으로 떨어지기 일쑤였다. 해병대가 주축이 된 미군은 중공군뿐 아니라 혹한과도 싸워 이겨야 했다.
장진호는 일제강점기 수력발전소 건설로 생겨난 인공 호수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는 ‘호수’(Lake)라고 부르지만 미국인들은 ‘저수지’(Reservoir)로 기억한다. ‘장진’(長津)이란 지명의 경우 6·25 전쟁 당시 미군이 쓰던 지도에는 해당 한자의 일본식 발음인 ‘초신’(Chosin)으로 표기돼 있었다. 얼핏 ‘선택 받은’이라는 뜻의 영어 단어 초우즌(Chosen)과 흡사하다. 혹독한 추위 속에서 중공군 포위망을 뚫고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미 해병대원들이 훗날 ‘초신 퓨’(Chosin Few)로 불리게 된 이유다. 초신에서 온갖 고통을 겪고도 꿋꿋이 살아남은 선택 받은 소수 정예 용사란 뜻이다.
미국 수도 워싱턴에는 6·25 전쟁 전사자들 이름이 새겨진 ‘추모의 벽’이 있다. 한국의 현충일이던 6월6일 그곳에서 전사자들을 기리는 헌화 및 기도 행사가 열렸다. 장진호 전투 참전용사로 올해 97세인 글렌 갈테리 목사는 “그 저수지(장진호)에서 우리 군인들의 시신이 무더기로 쌓여 매장되던 모습을 기억한다”며 “이 자리에 남아 있는 우리 모두가 그들을 절대 잊지 않게 해 달라”고 기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 육군 창설 251주년 기념일이던 6월14일 대국민 메시지에서 “우리 전사들은 한국의 얼어붙은(frozen) 산야에서 꿋꿋이 버텨냈다”고 밝혔다. 장진호 전투 당시 맹추위 속에서도 끝내 중공군을 물리친 미군 전사들에게 찬사를 바친 것이다.
1776년 7월4일 당시만 해도 영국 식민지이던 미국에서 지도자들이 독립 선언문을 발표했다. 그로부터 250주년을 맞은 4일 미 전역에서 성대한 기념 행사가 열렸다. 트럼프는 6·25 전쟁 참전용사들 가운데 장진호 전투 생존자들 이름을 부르며 “감사하다”고 인사를 건넸다. 특히 트럼프는 “그 공산주의(북한·중공)와의 전투는 정말 치열했다”며 “우리 용사들은 지옥 같은 시간을 겪으면서도 살아남아 나라를 위해 희생하고 모든 것을 바쳤다”고 강조했다. 장진호 전투 종료 후 동해안까지 행군한 미군은 흥남 철수작전을 성공리에 완수했다. 엄청난 숫자의 북한 주민이 이 작전을 통해 공산주의 독재에서 벗어나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품에 안겼다. 트럼프가 그 가치를 잘 알고 있다니, 참으로 다행스럽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