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는 인간의 영혼만 변화시키는가. 아니면 사회와 문명 전체까지 움직일 수 있는가. 인류 역사에서 이 질문에 가장 거대한 규모로 답한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 이슬람 창시자 무함마드(Muhammad)였다. 오늘날 이슬람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며 기독교에 이어 약 20억 명의 신자를 거느린 세계 최대 종교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수많은 사람의 삶과 문화, 정치와 공동체 의식에도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무함마드는 7세기 아라비아 사막, 즉 오늘날 사우디아라비아 서부 히자즈(Hijaz) 지방에 위치한 도시 메카에서 태어났다. 아랍식 풀네임은 ‘무함마드 이븐 압둘라 이븐 압둘 무탈리브’. 당시 메카는 여러 대상(隊商)들이 오가며 무역이 이루어지던 상업 중심지이자, 카바 신전에 수많은 부족 신상이 모셔져 있던 다신교의 중심지였다. 무함마드는 태어나기 전에 아버지를 잃고 여섯 살 때는 어머니마저 여읜 채 고아로 자랐다. 척박한 사막 사회에서 보호자 없이 외로움과 불안정한 삶을 처절하게 겪었던 이 시절의 기억은 훗날 그가 세울 공동체의 성격을 규정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부족의 칼을 꺾은 메디나 헌장, 법과 신뢰 위에 세운 운명 공동체
청년 시절 무함마드는 뛰어난 상인이었다. 그는 대상을 이끌고 시리아 등지를 오가며 유대교와 기독교 등 다양한 보편 종교를 접했다. ‘신에 대한 순종을 통한 평화’를 뜻하는 이슬람(Islam)과 ‘그 평화를 실천하는 신앙인’을 뜻하는 무슬림(Muslim)이라는 이름 자체가 아랍어 어근 ‘살람(평화, 순종, 안전)’에서 파생된 것처럼, 이슬람은 유대교 및 기독교 신앙과 뼈대를 공유하는 아브라함계 종교다.
과거 한국에서도 사용되던 ‘마호멧’과 ‘마호메트교’는 각각 무함마드의 이름을 변형한 음역과 이슬람을 ‘무함마드를 숭배하는 종교’로 오해하게 만드는 잘못된 명칭이다. 특히 중세 유럽에서는 이러한 표현이 이슬람을 왜곡하거나 폄하하는 맥락에서 널리 사용됐으며, 오늘날에는 당사자들이 사용하는 ‘무함마드’와 ‘이슬람’이라는 명칭이 일반적으로 쓰인다. 실제로 무슬림은 무함마드를 신으로 숭배하지 않는다. 신앙의 대상은 오직 알라(하나님)이며, 무함마드는 알라의 계시를 전한 최후의 예언자로 존경받는다. 이슬람은 모세와 예수 역시 알라가 보낸 위대한 예언자로 예우하며, 경전인 ‘쿠란’에도 성경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과 서사가 담겨 있다.
청년 무함마드는 다신교의 우상숭배와 부족 이기주의, 약탈로 얼룩진 메카 사회에 문제의식을 품고 있었는데, 마침 상인 시절 마주한 기독교의 유일신 사상과 윤리적 가르침을 통해 깊은 영감을 얻었다. 전승에 따르면 그는 히라 동굴에서 명상하던 중 하늘의 계시를 경험했고, 자신을 인류에게 내려진 ‘마지막 예언자’로 인식하게 되었다. 그가 선포한 메시지는 알라 외에는 참된 신이 없으며, 모든 인간은 신 앞에서 평등하다는 선언이었다.
무함마드는 계시를 받기 전부터 메카에서 ‘알 아민(Al-Amin·신뢰할 수 있는 자)’이라 불릴 만큼 정직하고 고결한 인품을 지닌 상인이었다. 그러한 깊은 신뢰 덕에 아내 카디자를 비롯한 친지들이 먼저 그의 계시를 믿었고, 이후 그가 평등과 자선을 외치자 지배층에게 억압받던 노예, 고아, 청년층이 종교 공동체로 급격히 유입되었다.
그런데 이것을 메카 지배층이 기존의 경제·종교 질서에 대한 위협으로 여겨 무함마드를 추종하는 신앙 공동체에 극심한 박해를 가했다. 이에 무함마드는 신앙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서기 622년 신자들을 이끌고 메카에서 350Km가량 떨어진 메디나로 이주했다. 이 사건이 바로 이슬람의 기원이 된 ‘히즈라(Hijra)’다. 당시 부족 간의 유혈 분쟁이 멈추지 않던 메디나는 무함마드의 공정함을 보고 그를 도시의 ‘중재자’로 초빙했던 것이다. 메디나에 도착한 무함마드는 역사적인 ‘메디나 헌장’을 선포했다. 이 헌장은 혈연과 부족 중심의 고대 관습을 깨고, 신앙과 공정한 법 아래 모든 부족이 하나의 운명 공동체(우마·Ummah)를 이룬다는 고대 세계에서 보기 드문 정교일치 사회 계약이었다. 공정한 법과 복지 제도가 결합하자 사막의 파편화된 부족들이 자발적으로 결속하기 시작했다.
◆르네상스의 마중물이 된 지혜, 사막에서 꽃피운 찬란한 문명사적 교량
기독교가 내면의 구원에서 출발해 수백 년 뒤 로마제국을 변화시켰다면, 이슬람은 처음부터 종교와 정치가 분리되지 않은 하나의 거대한 사회 체제로 탄생했다. 무함마드가 제정한 이슬람 태음력(히즈라력)은 오늘날에도 전 세계 무슬림의 종교적 삶을 지배하고 있다. 현대 이슬람 국가들은 국제사회와의 소통을 위해 태양력을 병행하면서도, 매년 11일씩 빨라지는 이슬람력에 맞춰 일제히 단식과 순례를 행하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신앙이 교인들의 삶을 얼마나 긴밀하게 이끄는지 보여주는 증거다.
무함마드는 오늘날까지 이슬람 세계의 철저한 윤리적 기준이 되는 수많은 가르침(하디스)을 남겼다. 그는 “너희 가운데 가장 훌륭한 사람은 남을 가장 잘 대하는 사람이다”고 일갈했다. 그는 혈통이나 권력이 아닌 타인을 대하는 태도에서 인간의 품격이 드러난다고 본 것이다. 특히 “배부른 상태로 잠들면서 이웃이 굶주리는 것을 외면하는 자는 참된 신자가 아니다”는 선언은 신앙이 반드시 공동체적 책임과 행동으로 증명되어야 함을 엄격히 규정한다. 또한 “지식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구하라”는 정신은 훗날 이슬람 문명이 수학, 천문학, 의학, 철학을 꽃피우는 태동이 되었다. 서유럽이 학문적 침체기를 겪는 동안, 이슬람 세계는 고대 그리스 철학과 과학을 보존·발전시켜 서유럽에 전해줌으로써 인류 문명의 대전환인 르네상스를 가능케 한 결정적 교량 역할을 수행했다.
이슬람 신앙의 철저한 역사적 일관성은 오늘날 무슬림들의 일상에서도 고스란히 발견된다. 전 세계 어디서나 무슬림들은 복장과 수염, 히잡 등을 통해 자신이 무슬림이라는 신분을 결코 감추지 않는다. 세상의 유행이나 타인의 시선과 타협하지 않고, 국제사회의 비즈니스 현장에서도 신앙적 정체성을 당당히 드러낸다. 이 같은 태도는 내면의 믿음과 외면의 삶 사이에 이율배반이 없음을 증명하는 강력한 상징이다.
특히 음식과 의생활을 비롯해 일상의 허용 기준을 규정하는 ‘할랄(Halal)’은 신의 명령에 대한 순종과 정결, 생명 존중의 가치를 담은 삶의 규범이다. 할랄은 7세기 사막 환경 속에서 공동체의 질서와 위생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오늘날에도 무슬림들의 일상에서 ‘내면의 청결과 외면의 바른 삶’을 지켜주는 가장 강력한 문화적 이정표 가운데 하나가 되고 있다.
이들은 또 일상의 규칙이자 종교적 금과옥조인 ‘다섯 가지 기둥(신앙고백인 샤하다, 하루 다섯 차례 예배인 살라트, 의무 자선인 자카트, 라마단 단식인 사움, 메카 성지순례인 하지)’에 따라 매일 5번씩 메카를 향해 절을 하며 살아간다. 이들에게 신앙은 교리서에만 박제돼 있지 않고 하루의 일과를 지배하는 실천적 삶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고통을 함께 앓는 하나의 몸, 교리를 넘어 일상을 지배하는 실천적 영성
물론 이슬람 역사 역시 평화롭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무함마드는 사상가에 머물지 않고 직접 갑옷을 입고 바드르 전투 등 수많은 전장을 누빈 야전 사령관이기도 했다. 훗날 이슬람 제국이 영토를 확장하며 이민족을 정복해 나간 과정을 두고 일각에서는 종교적 야망이나 폭력성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역사적 맥락에서 이 정복 전쟁은 사막이라는 척박한 환경에서 싹튼 신생 신앙 공동체의 ‘생존과 안보’를 위한 선택이었다. 중요한 것은 무함마드와 초기 공동체가 피정복민에게 이슬람 개종을 강요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세금(지즈야)만 내면 종교의 자유와 안전을 보장했다. 이 관용적 세제 혜택 덕분에 이민족들은 오히려 기존 제국의 압제에서 벗어나 자발적으로 이슬람의 질서 속으로 편입되었다.
무함마드가 이토록 정교한 법과 복지 체계를 통해 종파와 민족을 넘어선 거대한 공동체를 만들고자 했던 궁극적인 지향점은 그의 어록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는 신자들을 향해 “서로 사랑하고 자비를 베풀며 동정하는 신앙인들의 모습은 마치 하나의 몸과 같다. 몸의 한 지체가 아프면 온몸이 밤을 새우며 함께 열을 앓는 것과 같다”라고 가르쳤다. 타인의 고통을 나의 통증으로 느끼는 일체감의 언어야말로 그가 사막 위에 세우고자 했던 가장 아름다운 영성 공동체의 본질이었다. 무함마드는 신앙이란 개인적 위안이나 수양으로 끝나지 않고, 서로를 책임지는 끈끈한 연대 속에서 살아 움직여야 한다고 믿었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그는 인류 역사 속에서 ‘겉과 속이 같은’ 가장 강력한 신앙 공동체를 설계한 영성가로 남아 있다.
[인류는 왜 영성을 찾는가—세계사를 움직인 15인의 영성] 목차
<1> 모세-“노예 민족에게 법과 신을 준 사람”
<2> 공자-“혼란한 시대, 인간의 질서를 묻다”
<3> 노자-“세상을 거슬러 흐르지 말라”
<4> 석가모니-“인간의 고통을 정면으로 바라본 사람”
<5> 조로아스터-“선과 악의 전쟁은 어디서 시작됐는가”
<6> 예수-“사랑은 어떻게 세계를 바꾸었는가”
<7> 무함마드-“신앙은 공동체를 어떻게 조직하는가”
<8> 성 아우구스티누스-“인간 내면에도 제국은 존재한다”
<9> 토마스 아퀴나스-“신과 이성은 화해할 수 있는가”
<10> 마르틴 루터-“양심은 교황보다 강한가”
<11> 존 웨슬리-“대중 속으로 들어간 종교”
<12> 라마크리슈나-“모든 종교는 같은 산을 오르는가”
<13> 달라이 라마 14세-“인간은 증오 없이 저항할 수 있는가”
<14> 문선명·한학자-분열된 인류는 다시 한 가족이 될 수 있는가
<15> 간디-“정치는 영혼을 가질 수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