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본질은 신뢰에 있다. 유권자의 마음을 얻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는 선거는 흔히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불린다. 그러나 그 꽃도 정직과 진정성이라는 자양분 속에서 화려하게 만개할 수 있다. 지난 6·3 지방선거 과정에서 불거진 개혁신당 정이한 부산시장 후보의 ‘음료수 피습 자작극 의혹’은 권력욕이 정치의 기본 가치를 얼마나 훼손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씁쓸한 사례다.
고사성어 중에 ‘고육지계(苦肉之計)’라는 말이 있다. 스스로 상처를 감수하면서까지 상대를 속이는 계책이라는 뜻이다. 소설 ‘삼국지연의’에서 오나라의 황개가 조조를 방심시키기 위해 자청해 형벌을 받았던 것에서 유래했다. 오늘날에는 정치적 이득이나 동정 여론을 얻기 위해 스스로 피해를 입은 것처럼 꾸미는 행태를 비판할 때 자주 인용된다.
정 전 후보는 지난 4월27일 부산 금정구 구서나들목 인근에서 선거 유세 도중 한 차량 운전자가 던진 음료에 맞았다고 주장했다. 당시 그는 이를 피하는 과정에서 넘어져 의식불명 상태로 병원에 이송됐고 곧바로 뇌진탕 진단을 받았다고 전해졌다.
그러나 음료를 던진 인물이 정 전 후보와 평소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자작극 의혹이 제기됐다. 이후 경찰 수사와 언론 보도를 통해 사건 경위에 대한 논란이 확산했다.
정 전 후보는 비교적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성장하며 일찍부터 정치권에 발을 들였다. 의사 출신인 정 전 후보 부친은 부산에서 유명한 종합병원과 학교법인을 운영했고, 여러 차례 정치권 진출을 시도한 바 있다.
정 전 후보 역시 대학 졸업 후 그린닥터스 청년단장 활동을 시작으로 국회의원실 선임비서관과 국무총리비서실 민정실 사무관 등을 거쳐 이번 지방선거에서 개혁신당 부산시장 후보로 출마했다.
선거가 끝난 뒤 드러난 여러 정황은 대중의 관심과 동정 여론을 얻기 위한 무리한 연출 의혹이 얼마나 위험한 도박이 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민주주의의 핵심 절차인 선거를 희화화하고 공권력을 소모하게 만들었다는 비판 역시 피하기 어렵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라 정치에 대한 시민과 유권자들의 신뢰를 뿌리째 뒤흔든 ‘도명기세(盜名欺世·명성을 훔치고 세상을 속이는 행동)’의 범죄행위다.
더욱 씁쓸한 것은 자작극 의혹이 불거진 이후 정 전 후보의 대응이다. 그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정계 은퇴 의사를 밝히고 온라인으로 탈당 절차를 밟았다.
그러나 그를 믿고 공천한 소속 정당과 그에게 표를 던진 2만7000여명의 부산 시민들이 느낄 허탈감과 배신감은 쉽게 사라지기 어렵다.
대중의 관심과 신뢰를 먹고사는 정치인이 대중의 주목을 받기 위해 ‘쇼’를 넘어선 자작극 의혹까지 불러온다면 그것은 정치에 대한 신뢰 자체를 훼손하는 일이다. 이번 사태는 권력욕이 상식을 무너뜨릴 때 정치가 얼마나 추락할 수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정 전 후보는 지금이라도 부산시민과 유권자 앞에 ‘자작극 의혹’ 관련 사실관계를 소상히 밝히고,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는 등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그것이 공직 후보자로서 최소한의 도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