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월19일 미국 수도 워싱턴에서 이른바 ‘평화위원회’(Board of Peace) 첫 회의가 열렸다. 평화위원회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주도해 만든 신생 국제기구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의 휴전 후 가자 지구의 평화 구축과 재건 지원이 목표다. 세계 각국 정상 및 고위급 외교관 50여명이 참석한 이 자리에서 별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사람 하나가 눈에 띄었다. 국제축구연맹(FIFA·피파) 잔니 인판티노 회장이다. 트럼프는 직접 인판티노를 소개하며 “피파가 가자 지구의 평화 프로젝트에 들어갈 750억달러(약 116조원)의 모금을 도울 것이란 점을 발표하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세계 최대 스포츠 시장인 미국에서 축구를 최고의 인기 스포츠로 만드는 것은 피파의 오랜 염원이다. 미국인들은 야구, 농구, 아이스하키, 아메리칸풋볼(미식축구)을 즐기는 반면 운동 종목으로서 축구에 대한 인지도나 선호도는 유럽 및 중남미보다 떨어진다. 오죽하면 세계 거의 모든 나라가 ‘풋볼’(football)로 알고 있는 축구가 미국에서는 미식축구에 밀려 ‘사커’(soccer)란 낯선 용어로 불리겠는가. 2026 북중미 월드컵을 계기로 미국에 축구 붐을 일으키는 것은 피파에게 절실한 과제다. 인판티노가 뜬금없이 ‘피파 평화상’을 제정하고 그 초대 수상자로 트럼프를 선정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북중미 월드컵 공동 개최국인 미국·캐나다·멕시코 가운데 미국만 남고 두 나라는 16강전에서 탈락했다. 미국이 경제력과 군사력 측면에서 세계 최강이란 점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런데 축구는 얘기가 다르다. 직전의 2022 카타르 월드컵 당시 미국은 조별 리그를 통과했으나 토너먼트 첫 관문인 16강전에서 네덜란드에 1-3으로 참패했다. 경기 직후 마르크 뤼터 당시 네덜란드 총리(현 나토 사무총장)는 “미안하지만 축구가 이겼어요”(Sorry, football won)라고 말했다. 축구를 풋볼 대신 사커(soccer)라고 부르는 미국을 조롱한 셈이다. 세계 축구계에서 미국의 존재감은 그다지 크지 않다.
폴라린 발로건(25)은 미국 축구 국가 대표팀의 에이스다. 북중미 월드컵 개막 후 4경기에서 3골을 넣었다. 그는 지난 2일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와의 32강전에서도 득점에 성공했으나, 상대 수비수의 발목을 밟았다가 그만 레드카드를 받고 경기장에서 쫓겨났다. 퇴장을 당한 선수는 그 다음 경기엔 나설 수가 없다는 것이 일반인의 상식이다. 그런데 발로건은 7일 열리는 미국 대 벨기에 16강전에 선발로 출전할 전망이다. 트럼프가 피파에 3차례나 전화를 걸어 발로건의 선처를 요구하자 피파가 발로건의 출장 정지 집행을 1년간 유예한 결과라고 한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출장 정지 대상인 선수가 월드컵 경기에서 뛰는 것은 1962년 칠레 월드컵 이후 64년 만에 처음”이라고 보도했다. ‘체력은 국력’이란 말은 오랫동안 들었는데, ‘축구도 국력’인 줄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