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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눈] 아이는 어른이 만든 세상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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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부 ‘조롱 응원’이 부른 논란
정치권 진영간 싸움으로 변질돼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 모습 대신
배려·공존의 본보기 보여야할 때

서울 배재고 야구부 학생들이 ‘스타벅스 가야지’, ‘탱크 데이’ 응원 구호를 외쳐 파문이 인 지 일주일 만에 광주제일고(광주일고) 야구부 학생들에게 사과했다. 두 학교 야구부 대표가 사과문을 주고받으며 악수하고, 양쪽 선수단이 광주일고 교내의 광주학생독립운동 기념탑과 5·18 민주화운동 피해자 묘역도 참배했다. 배재고 주장은 “같은 선수로서 정말 하면 안 되는 행동이었다. 항상 마음속 깊이 반성하는 마음과 자세로 살아가겠다”고 했고, 감독도 지도자로서 책임이 가장 크기에 진심으로 사죄드린다고 말했다. 이에 광주일고 선수단 대표는 “저희도 다른 팀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았는지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며 사과를 받았고, 감독도 “사람은 누구나 실수하고 실수는 반성하면 된다”며 다시 그라운드에서 정정당당한 승부를 펼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배재고는 학생들에 대한 징계를, 서울시교육청은 배재고 교장·교감에 책임을 물을지 검토하고 있다. 경찰은 모욕 혐의 고발 사건과 ‘광주일고에 폭탄을 설치했다’는 게시글에 대해 수사하고 있다. 광주일고 총동창회는 “올바른 교육과 정의의 회복을 바란다”면서 배재고 학생들에 대해 선처를 바라는 성명을 냈다.

정재영 사회부장
정재영 사회부장

사태는 마무리 국면이지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는 곱씹어 봐야 한다.

아이는 어른이 만든 세상에 산다.

그들의 언어와 태도,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대부분은 어른 세상을 닮는다. 흔히 아이들의 혐오(嫌惡) 표현과 폭력성을 나무라지만, 정작 거울 앞에 서는 데에는 인색했던 걸 고백할 때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유튜브, 쇼츠, 밈(meme) 등 만사가 너무 쉽게 소비되는 문화 탓인지, 상대를 존중하는 토론보다 혐오를 자극하는 발언이 더 주목받는 세상이다.

정치권은 상대를 설득하기보다 공격하고, 토론보다 조롱을 앞세우는 모습을 반복해왔다. 대통령을 비롯한 여당 인사들과 야당은 서로 거친 말을 주고받는다. 정치인들끼리 서로를 조롱하고 멸칭(蔑稱)하는 모습도 흔하다. 여당은 다수의 힘으로 국회 상임위원회를 단독으로 구성하는 등 협치보다 힘의 논리를 앞세우는 모습을 반복하고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주체만 변할 뿐 상대를 적으로 규정하고 몰아붙이는 게 정치 문화가 됐다.

세상은 전염성이 강한 혐오를 너무 쉽게 소비해왔다.

상대를 이해하려는 노력보다 낙인찍는 일이 더 쉽기 때문일까. 의견이 다르면 틀리고, 틀린 사람은 조롱해도 된다는 사고가 똬리 틀면서 사회는 극단으로 나뉘었다.

스타벅스 탱크 데이 논란은 무엇이든 진영 싸움으로 끌고 가는 한국 사회의 단면을 보여줬다. 제품이나 이벤트보다 어느 편에 설 것인지를 묻는 진영 대결로 번졌다. 한쪽에서 스타벅스 불매(不買) 운동이 이어지자, 반대편에서는 매장을 찾은 사진을 올리며 맞섰다. 여기에 정치권 인사들까지 한마디씩 보태면서 스타벅스 논란은 어느새 보수와 진보를 가르는 잣대처럼 변질됐다. 배재고 사태 직후에도 정문 앞에는 ‘스포츠 오염시키는 5·18 거부한다’는 응원 화환과 ‘민주화운동 모욕하는 국민에게 민주주의는 과분하다’는 비판 화환이 세워졌다.

아이들의 부적절한 응원에서 시작된 논란이 정치적 공방으로 소비되는 걸 경계할 때다. 정작 아이들은 스타벅스 이벤트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엔 관심이 없었을지 모른다. 그 사건을 통해 진영 간 갈등을 부추기고 상대에 대한 조롱·모욕으로 변질시킨 어른들의 언어만 배운 건 아닐까.

아이들은 놀라울 만큼 많은 것을 빨리 흡수한다. 어른의 말을 듣고, 유튜브를 보고, SNS를 통해 세상을 배운다. 어른들이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 모습을 일상처럼 보여주는데 아이들에게만 배려와 존중을 요구하는 건 모순(矛盾)이다. 이번 사태를 통해 사회가 아이들에게 어떤 언어와 문화를 보여주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아이들에게 더 나은 행동과 발언을 기대한다면 어른 세상부터 바뀌어야 한다. 혐오보다 존중을, 멸시보다 배려를, 분열보다 공존을 우선하는 세상이어야 한다.

아이는 어른이 만든 세상에 산다. 그리고 그 세상을 누구보다 빠르게 배운다. 아이들의 내일을 바꾸고 싶다면, 먼저 어른들의 오늘부터 달라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