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도심에서 여고생을 살해한 장윤기(23) 수사 과정에서 당시 경찰 수사팀이 현직 경찰관인 장윤기 부친의 존재 사실을 함구하라고 말한 녹취 파일을 검찰이 확보했다. 검찰은 경찰 윗선의 개입 가능성까지 열어두고 당시 수사팀에 대한 강제수사에 착수했고, 경찰도 당시 수사팀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본격적인 수사에 나서면서 두 수사기관의 경쟁으로 번졌다. 여권이 검찰의 보완수사권 폐지를 골자로 한 형사소송법 개정 추진에 나선 가운데 ‘경찰 수사를 믿을 수 없다’는 불신이 확산하고 있다.
◆檢 광산서 압수수색… 警 박 경감 영장
광주 여고생 살인사건 관련 전담수사팀을 꾸린 광주지검은 7일 광주광산경찰서에 대해 강제수사에 돌입했다. 광산서에서 장윤기 사건을 담당한 수사팀 사무실과 주거지, 휴대전화 등에 대해 공무상비밀누설 및 증거인멸 혐의로 압수수색했다. 대상에는 장윤기 사건 수사팀장이었던 박모 경감과 수사팀원 다수가 포함됐다.
이들은 장윤기 부친에 장윤기의 자취방 주소와 비밀번호, 영장 청구 계획 등 수사정보를 유출하고 성범죄 핵심 증거물인 케이블타이, 리얼돌,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블랙박스 등을 확보하지 않은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장윤기 부친의 휴대전화를 압수해 분석하는 과정에서 광산서 수사팀이 장윤기가 체포된 지난달 초 “장윤기 부친이 경찰인 것을 함구하라고 했다”고 말한 녹취 파일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수사팀원 간 휴대전화 녹취에서도 이 같은 내용의 대화가 오간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은 이에 장윤기 부친과 수사팀의 유착뿐 아니라 경찰 지휘부 개입 여부를 면밀히 살펴보고 있다. 장윤기가 여고생 살해 전 외국인 아르바이트 동료를 상대로 저지른 스토킹 사건을 수사한 여성청소년과 사무실도 압수수색했다.
장윤기가 사용한 SUV 차량도 압수됐다. 장윤기는 당시 SUV로 여고생을 15분간 미행하다 문을 열어둔 상태에서 살해했는데 안에 케이블타이가 있었다는 점에서 성범죄 정황이 의심되고 있다.
검찰은 장윤기 부친과 광산서 수사팀의 증거인멸 의혹이 보완수사를 통해 드러난 만큼 보완수사권 필요성을 입증하기 위해 관련 수사에 박차를 가할 전망이다.
경찰 ‘광주광산서 살인사건 관련 진상규명 특별수사팀’(특수팀)도 긴급체포한 상태로 조사를 진행 중인 박 경감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 지휘부와 독립된 수사를 진행하기 위해 출범한 특수팀은 이날 광주청 수사팀에 합류해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경찰은 이 사건을 검찰에 이첩하지 않고 자체 결론을 낸다는 방침이라서 검경 갈등 가능성도 제기된다. 장윤기 사건을 수사한 광산서 형사과 수사팀은 전날 업무에서 배제조치됐다.
◆보완수사권 ‘전면 폐지’ 31%뿐
이번 사건을 계기로 보완수사권 존치 여부에 대한 논쟁도 다시 불거졌다.
경찰은 검찰에 장윤기 사건을 송치하면서 성범죄가 아닌 살인·살인미수·살인예비 혐의만 적용했지만, 검찰은 보완수사를 통해 성범죄 혐의를 입증할 리얼돌과 차량 블랙박스, 케이블타이 등의 존재 사실을 밝혀냈다. 성폭력법상 살인은 법정형이 살인 또는 무기징역이지만 단순 살인은 하한선이 징역 5년이다.
한 부장검사는 “수사를 경찰에게만 맡겼을 때 발생할 각종 부작용이 이번 장윤기 사건을 통해 여실히 드러났다”며 “검사의 보완수사가 막힌다면 제2, 제3의 장윤기 사건이 벌어져도 경찰의 잘못된 수사를 견제하고 바로잡을 길이 사라진다”고 지적했다.
김호중 서울북부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 검사(사법연수원 48기)도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 “보완수사권 없이 성범죄 사건을 제대로 처리할 수 있을지 심히 우려된다”는 제목의 글을 올리고 보완수사 폐지에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진보성향 변호사단체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이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3일까지 회원 변호사 403명을 대상으로 보완수사권 폐지 관련 온라인 의견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 중 185명(45.9%)은 ‘부분 존치’, 85명(21.1%)은 ‘전면 존치’해야 한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전면 폐지’ 의견은 126명(31.3%)에 불과했다.
검찰 보완수사권 폐지를 추진하는 여권은 당혹스러운 분위기다. 반면 야당은 경찰 수사의 문제점을 부각하며 여권의 보완수사권 폐지 추진을 중단할 것을 압박했다.
국민의힘 정점식 원내대표는 원내대책회의에서 “이번 사건은 단순히 경찰의 부실 수사가 아니라 비뚤어진 내부 유착 문제가 더해진 고의적 범죄 은폐사건”이라며 “검찰의 보완 수사가 아니었다면 사건의 진상이 영영 은폐됐을지도 모른다”고 지적했다.
경찰청은 경찰관 가족이 수사 대상일 경우 해당 경찰관을 배제할 규정이 없는 만큼 친족 관련 사건 처리의 투명성을 높일 추가 대책을 세우겠다고 밝혔다. 장윤기 부친에 대해서는 업무배제 조치하고 징계 가능성을 시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