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직후 미국 군 당국이 독도를 한국 영토로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음을 증명하는 미국 정부의 공식 기밀문서가 최초 발굴돼 공개됐다.
동북아역사재단은 전갑생 성공회대 연구교수가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서 수집해 기증한 독도 관련 미공개 기록물 6건(총 222쪽)을 7일 공개했다. 이 자료는 1948년 6월8일 주일 미 공군이 독도 일대를 오폭해 인명 피해가 난 ‘독도폭격사건’에 대한 미군 당국의 조사보고서와 관련 문서들이다.
가장 주목받는 자료는 1948년 6월8일 독도폭격사건 직후 작성된 미 극동공군사령부(FEAF) 공식 조사보고서다. 보고서에는 “1947년 9월 리앙쿠르 암(독도의 서양식 명칭)이 한국의 일부라는 것이 분명히 확립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결코 일반적인 지식이 되지 못해 일본의 한 섬으로 인식됐다”고 적혀 있다. 또한 독도 폭격 훈련 15일 전 반드시 제8군 사령관(미 군정 부서)과 주한미군사령관(USAFIK) 등에게 통보해야 한다는 규정도 명시됐다. 독도가 한국 관할 영토이기 때문에 주한미군에 사전 통보 의무가 있다고 인정했다는 의미다. 이는 1946년 연합국최고사령관 각서(SCAPIN) 제677호와 1947~1949년 미국 측 대일강화조약 초안에 담긴 미국의 ‘독도=한국 영토’ 인식이 일관됐음을 보여주며, 사료가 부족했던 광복 직후 한국의 독도 영유권을 뒷받침할 결정적 증거로 평가된다.
미군 보고서 내에 편철되어 있던 광복 직후 국내 문서 5건도 확인됐다.
1946년 울릉도사가 경상북도 지사에게 보고한 ‘울릉도 소속 독도 영유 확인의 건’이 대표적이다. 이는 광복 후 독도와 관련해 생산된 최초의 공문으로, 울릉도사는 문서에서 “중앙 군정청이 일본 정부와 교섭해 독도가 울릉도 소속임을 확인 공표해 달라”고 요청했다. 특히 이 문서에는 1906년 심흥택 울도군수가 독도를 ‘본군 소속’으로 명시해 강원도 관찰사 등 상부에 올린 보고서 필사본이 첨부돼 있어 학술적 가치를 더한다.
아울러 1948년 독도폭격사건 직후 울릉도사가 ‘독도는 한국 땅’이라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미군 법무관에게 제출한 문건과 1947년 8월20일 울릉도 주민 홍재현이 남조선과도정부 외무처 일본과장에게 “1903년부터 독도를 왕래하며 미역을 채취하고 바다사자를 포획해 왔다”고 증언한 문서도 발굴됐다. ‘홍재현 진술서’의 내용은 1955년 외무부 정무국의 ‘독도문제개론’에도 정리돼 있었으나, 낱장 원문이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간 일본은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당시 독도가 포기 영토에 명시되지 않은 점, 그리고 독도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해 해결하자는 ‘시볼드 제안’과 독도를 일본이 포기할 영토에 포함시키지 않겠다는 내용의 ‘러스크 서한’ 등을 들어 미국이 독도를 일본 관할로 인정했다고 주장해왔다.
동북아역사재단은 “이번 자료는 대외 선전 목적이 없는 미군의 기밀 내부 문서로 신뢰도가 매우 높다”며 “독도를 마치 일본의 영토인 것처럼 주장한 1949년 시볼드의 제안이나 1951년 러스크 서한 등은 ‘독도는 한국 땅’이라는 미국의 확립된 입장을 일시적으로 왜곡·변질시킨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뒷받침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