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마약 청정국으로 불렸던 한국에서 1년에 10종이 넘는 신종 마약류가 등장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기존 마약류의 화학 구조를 일부 변형하거나 해외에서 새로 유입되는 물질이 늘어난 영향으로 풀이된다. 최근 실체가 확인되지 않은 마약 의심 영상이 소셜미디어(SNS)를 중심으로 확산하면서 수사기관의 간이 시약 검사에서 쉽게 검출되지 않는 이른바 ‘스텔스 마약’에 대한 국민적 불안감이 커지는 모양새다.
8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이 발간한 ‘2025 마약류 감정백서’에 따르면 국내에서 새롭게 확인된 신종 마약은 지난해에만 11종으로 집계됐다. 2021년 6종, 2022년 7종이었던 신종 마약은 2023년 10종, 2024년 15종으로 늘어났다. 최근 5년간 총 49종의 신종 마약이 등장한 셈이다.
신종 마약의 확산과 함께 국과수에 접수된 마약류 감정 건수도 2018년 4만3808건에서 지난해 14만775건으로 7년 새 3.2배로 증가했다. 특히 서울과학연구소에 의뢰된 압수품 중 합성 대마류, 케타민 등 신종 마약류가 차지하는 비율은 2020년 10% 미만에서 2025년 30% 이상으로 급증한 것으로 조사됐다.
◆ 세계 최초 보고된 변종 물질... 무너진 국경에 감정 체계 고도화 비상
지난해 1월 충남 천안의 한 아파트 화단에서 발견된 백색 가루가 대표적인 사례다. 국과수 정밀 감정 결과 이 가루는 국내외에 보고된 적이 없는 신종 펜사이클리딘류인 ‘2-플루오로-2-옥소-피시피알’로 확인됐다. 국내 마약류 데이터베이스(DB)에 등록되지 않아 마약사범들 사이에서는 걸리지 않는 스텔스 마약으로 홍보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과수는 첨단 장비를 동원한 분석을 통해 해당 물질의 구조를 세계 최초로 규명하고 이를 향정신성의약품으로 판명했다.
신종 마약은 새롭게 제조된 물질만을 뜻하지 않는다. 해외에서 이미 유통되던 물질이라도 국내에서 처음 확인되면 새로운 감정 대상이 된다. 기존 마약의 화학 구조를 조금만 바꿔도 새로운 물질이 되기 때문에 감정기관은 매번 새로운 분석법을 구축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전문가들은 SNS를 통한 거래와 해외 개인 반입이 늘면서 마약 유통의 국경이 사실상 무너진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신종 마약이 지속해서 등장하는 만큼 수사기관의 분석 역량과 감정 체계도 이에 맞춰 고도화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울러 프로포폴 등 의료 현장에서 처방되는 마취제류의 오남용 문제도 국과수의 업무 부담을 가중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 간이검사 양성이 마약 확정 아냐... 교차반응 따른 오류 가능성 상존
최근 시민들의 불안감을 자극했던 ‘수원 마약 의심 영상’의 경우 간이검사와 정밀검사의 결과가 엇갈린 사례로 분류된다. 영상 속 30대 남성은 경찰의 간이검사에서 필로폰 양성 반응이 나왔으나, 국과수의 소변 정밀감정에서는 음성 판정을 받았다. 경찰 측은 현재 진행 중인 모발 정밀 감정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면서도, 현재 단계에서 스텔스 마약 정황이 확인된 것은 없다는 입장이다.
이처럼 간이검사와 정밀감정 결과가 다르게 나타나는 이유는 ‘교차반응’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간이검사는 합법적인 약물 중에서도 구조가 비슷하면 양성 반응을 보일 수 있다. 감기약이나 일부 의약품을 복용한 경우에도 마약으로 오인될 수 있으며, 수원 영상 속 남성 역시 복용 중이던 약물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올해 초 서울 종각역 인근에서 사고를 낸 택시 기사 역시 간이검사에서는 모르핀 양성이 나왔으나 정밀감정 결과 마약 성분이 검출되지 않았다. 해당 기사는 과로 상태에서 감기약을 복용했다고 진술한 바 있다.
국과수 원장을 지낸 정희선 성균관대 과학수사학과 석좌교수는 “간이검사는 마약을 투약하지 않은 사람을 일차적으로 걸러내는 데 의미가 있을 뿐”이라며,“양성 반응이 나왔다고 해서 마약 투약을 단정할 수 없으므로 반드시 정밀검사 결과를 확인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