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보기메뉴 보기 검색

천안 정치의 새 문법…장기수 시장은 왜 가장 낮은 곳부터 향했나

30년 이어진 관료·국회의원 시장 공식 깨고 시민운동가 시대 열어
환경미화원·저연차 공무원·시민 직통 문자…현장과 소통을 시정의 출발점으로
"행정의 출발은 사람"…'관리형' 넘어 '참여형' 시정 실험

민선 지방자치가 시작된 이후 30년 동안 이어진 '관료·중앙정치인 시장 시대'를 끝내고 천안 정치의 문법을 바꾼 시민운동가 출신 장기수 시장의 취임 후 행보가 주목받고 있다. 환경미화원에서 저연차 공무원, 작은도서관까지 권력의 중심보다 시민의 일상과 가장 가까운 현장을 먼저 찾으며 민선 9기 시정의 방향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장기수 천안시장이 지난 1일 시청 첫 출근에 앞서 천안시 생활폐기물을 수거하는 환경미화원들을 가장 먼저 만나 포옹했다.
장기수 천안시장이 지난 1일 시청 첫 출근에 앞서 천안시 생활폐기물을 수거하는 환경미화원들을 가장 먼저 만나 포옹했다.

1995년 민선 지방자치가 시작된 이후 천안시장 자리는 사실상 중앙정치와 관료 출신들의 무대였다. 관선시장 출신 이근영 시장을 시작으로 국회의원 출신 성무용 시장, 국무총리실 고위관료 출신 구본영 시장, 국회의원과 행정안전부 차관을 지낸 박상돈 시장까지 30년 넘게 이어진 공식이었다. 행정 경험과 중앙정치 경력이 시장의 필수 조건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민선 9기 들어 그 공식은 처음으로 깨졌다. 시민운동가 출신 장기수 시장이 전직 시장과 국회의원, 고위관료 출신 경쟁자들을 잇달아 제치고 시장에 당선됐기 때문이다. 더욱 주목받는 것은 취임 이후의 행보다. 첫 일주일 동안 그가 선택한 일정은 대형 개발사업이나 의전 중심 행사가 아니라 사람과 현장을 향하고 있었다.

 

취임 첫날 장 시장은 시장실보다 새벽 거리를 먼저 찾았다. 시민들이 잠든 사이 생활폐기물을 수거하고 도심을 청소한 환경미화원들을 만나 "민생의 가장 낮은 곳부터 살피겠다"고 약속했다. 취임 첫 결재도 시민들이 가장 쉽게 체감할 수 있는 정책이었다. 도서관과 수영장, 청소년시설 등의 휴관일을 최소화하는 '365 공공서비스 구축'이었다. 행정의 편의보다 시민의 생활 리듬에 맞춰 공공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메시지였다.

 

장기수 충남 천안시장이 지난 7일 시장실에서 사립 작은도서관 관계자들을 만나 시민 중심 도서관 체계 개편과 현장 맞춤형 지원방안을 논의했다.
장기수 충남 천안시장이 지난 7일 시장실에서 사립 작은도서관 관계자들을 만나 시민 중심 도서관 체계 개편과 현장 맞춤형 지원방안을 논의했다.

조직 내부를 향한 시선도 기존 시장들과 달랐다.

 

첫 타운홀 미팅은 국·과장이 아닌 7∼9급 저연차 공무원들이 주인공이었다. 장 시장은 업무보고 대신 자유로운 질문을 받으며 AI 활용법부터 조직문화까지 격의 없이 대화를 이어갔다. 그는 "소통을 포기하지 않았기에 시민의 선택을 받을 수 있었다"며 "형식적인 보고보다 진짜 대화가 많은 조직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첫 간부회의와 월례조회에서도 변화의 메시지는 이어졌다.

 

장 시장은 "공직자들의 병풍이 되겠다", "일만 시키는 사람이 아니라 동료이자 동지가 되겠다"고 강조하며 불필요한 보고를 줄이고 시민과 소통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쓰는 조직으로 바꾸겠다고 밝혔다. 또 "억울함과 두려움이 없는 조직"을 만들겠다며 수평적 조직문화와 자유로운 토론을 강조했다.

 

시민과의 소통 방식도 달라졌다.

 

장 시장은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를 공개하며 시민들에게 직접 문자를 보내 달라고 제안했다. 공식 블로그에는 일정과 정책, 민원 처리 과정까지 공개하며 시민들과 시정 전반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지방자치단체장이 시민과 직접 연결되는 소통 구조를 만들겠다는 시도다.

 

장기수 천안시장이 지난 3일 천안시 중앙도서관 다목적홀에서 7~9급 저연차 공무원 34명과 참여형 타운홀 미팅을 갖고 조직문화, 행정 혁신 방향 등을 주제로 의견을 나눴다.
장기수 천안시장이 지난 3일 천안시 중앙도서관 다목적홀에서 7~9급 저연차 공무원 34명과 참여형 타운홀 미팅을 갖고 조직문화, 행정 혁신 방향 등을 주제로 의견을 나눴다.

현장 중심 행정은 취임 이후에도 이어졌다.

 

지난 7일에는 천안 사립작은도서관 관계자들을 만나 운영 애로와 제도 개선 의견을 들었다. 그는 시의원 시절 작은도서관 활성화 지원 조례를 만들기 위해 현장을 다녔던 경험을 소개하며 "그 마음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작은도서관과 중간도서관, 거점도서관을 연결하는 체계를 구축하고 시민들이 더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도서관 행정으로 개편하겠다는 구상도 밝혔다.

 

현장을 찾아 시민의 목소리를 듣고 이를 정책으로 연결하는 방식은 시민운동가 시절부터 이어온 그의 정치 스타일이기도 하다.

 

지역 정치권에서는 이 같은 행보를 두고 '관리형 시장'에서 '참여형 시장'으로의 전환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과거 천안시장이 행정 경험과 조직 관리 능력을 경쟁력으로 내세웠다면 장 시장은 시민과 공직자, 지역사회를 직접 만나 소통하는 방식을 시정 운영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실험이 성공할지는 앞으로의 성과가 말해줄 것이다. 직접 소통이 일회성 이벤트에 그칠지, 실제 행정 혁신으로 이어질지는 아직 지켜볼 대목이다.

 

분명한 것은 취임 후 장 시장이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시장실이 아니라 새벽 거리였고, 9급 공무원이 앉은 회의실이었으며, 동네 작은도서관이었다는 점이다. 30년 동안 천안시장의 리더십은 중앙정치 경험과 행정 경력으로 평가받아 왔다. 민선 9기 장기수 시장은 취임 첫 일주일 동안 또 다른 기준을 제시했다. 권력의 중심보다 시민의 삶 가까이에서 답을 찾겠다는 것. 그 실험이 천안 정치의 새로운 문법으로 자리 잡을지는 이제 시민들이 체감할 성과로 입증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