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세 여성이 오랜만에 친구들과 가진 모임에서 예상치 못한 일을 겪었다. 반가운 만남은 사소한 말다툼으로 이어졌고, 감정이 크게 격해진 순간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A씨는 주변 사람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내가 왜 여기 있는 거죠?” 친구들은 방금 있었던 일을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다. 그러나 1분도 지나지 않아 A씨는 다시 같은 질문을 했다.“내가 왜 여기 있는 거예요?”
몇 차례 같은 질문이 반복되자 함께 있던 친구들은 크게 놀랐다. 뇌졸중인가 의심도 했지만 A씨는 말도 또렷했고, 얼굴이나 팔다리에 마비도 없고, 의식도 명료했다. 약 3시간이 지난 후 증상은 자연스럽게 호전됐지만, 정작 기억을 잃었던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전혀 떠올리지 못했다.A씨가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증상이 회복된 상태였다. 신경학적 진찰에서도 이상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뇌 자기공명영상(MRI) 검사에서는 기억을 담당하는 뇌 구조인 해마에 작은 점 모양의 병변이 확인됐다. 최종 진단은 일과성 완전 기억상실.
우리는 흔히 기억을 단순히 과거를 떠올리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기억은 현재의 나를 이해하고 미래를 계획하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뇌 기능 가운데 하나이다. 새로운 경험을 기억으로 저장하는 역할은 뇌 속 깊은 곳에 위치한 ‘해마’가 담당한다. 일과성 완전 기억상실은 이 해마의 기능이 일시적으로 저하되면서 새로운 기억을 저장하지 못하게 되는 질환이다. 이 질환의 가장 특징적인 증상은 반복해서 같은 질문을 하는 것이다. 방금 설명을 들었음에도 새로운 기억이 저장되지 않기 때문에 “무슨 일이 있었나요?”, “내가 왜 여기 있죠?”, “여기는 어디죠” 등의 질문을 계속 반복하게 된다. 반면 자신의 이름이나 가족은 정확히 알아보고, 의식도 또렷하며 대화도 정상적으로 가능하다. 팔다리 마비나 언어장애와 같은 다른 신경학적 증상은 나타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일과성 완전 기억상실은 주로 50~70대에서 발생한다. 연간 10만명당 5-∼10명. 매우 흔한 질환은 아닌 셈이다. 그러나 신경과 응급실에서는 비교적 자주 접하는 질환 가운데 하나다. 흥미로운 점은 발병 직전에 특별한 상황이 있었던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나 감정의 동요, 갑작스러운 온도변화 등이 대표적인 유발 요인으로 알려져 있다. 아직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러한 자극으로 인해 해마의 민감한 부위가 일시적으로 기능을 잃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뇌 MRI 검사를 통해서 진단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특히 확산강조영상에서는 해마에 작은 점 모양의 병변이 발견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일과성 완전 기억상실의 특징적인 영상 소견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이러한 병변은 증상이 시작된 직후에는 보이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오히려 증상이 발생한 뒤 하루에서 이틀 정도가 지나야 가장 잘 관찰되는 경우가 많아 초기 검사에서 이상이 없다고 해서 진단을 배제할 수는 없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의 증상과 병력이다. 다행히 일과성 완전 기억상실은 대부분 특별한 치료 없이 완전히 회복된다. 증상은 수 시간 내에 호전되고, 늦어도 24시간 이내에는 정상으로 돌아온다. 다만 기억을 잃었던 그 시간만은 공백처럼 남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형적인 일과성 완전 기억상실은 뇌졸중이나 치매의 전조 증상은 아니다.
물론 모든 기억상실이 일과성 완전 기억상실은 아니다. 기억상실과 함께 한쪽 팔다리의 마비, 말이 어눌해지는 증상, 시야장애, 의식 저하가 동반된다면 뇌졸중을 반드시 의심해야 한다. 또한 기억상실이 1시간 이내로 매우 짧게 반복되거나, 잠에서 깬 직후 반복적으로 발생한다면 뇌전증에 의한 기억상실을 감별해야 한다. 갑작스러운 기억상실이 발생했다면 스스로 판단하기보다는 신속히 병원을 방문해 정확한 진단을 받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다.
김태정 서울대병원 신경과·중환자의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