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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고교학점제, 힘들지만 가야 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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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학교는 산업 현장이 요구하는 규격화된 인재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일종의 ‘기지’ 역할을 했다. 정해진 지식을 빠르고 정확하게 습득해 산업 현장에 투입 가능한 인재를 길러내는 것이 교육의 핵심 목표였다. 실제 학교는 그에 맞춰 오랜 기간 효율적인 인재 육성 시스템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모든 학생에게 똑같은 정답만을 요구하던 과거 방식으로는 미래 인재를 길러내기 어렵게 됐다.

김진석 소명여자고등학교 교사
김진석 소명여자고등학교 교사

인공지능(AI)이 기존 지식을 가공하는 것을 넘어 새로운 지식을 창조해내는 상황에서, 학교 교육이 지식의 습득과 활용에만 집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다양한 분야의 학습을 바탕으로 학문 간 통섭을 이루어내는 창의성을 키우는 교육, 스스로 삶의 경로를 개척하는 주도성을 길러내는 교육이 필요하다.

고교학점제의 가치는 이 지점에서 분명해진다. 고교학점제는 교과 간 융합을 정규 교육과정 안으로 끌어들였다. 일상에서 마주치는 여러 문제를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해결하는 데 관심이 생긴 학생이 AI 관련 과목과 사회문제 탐구 과목을 선택하고, 생명과학 속 윤리의 역할을 고민하는 학생이 과학 과목과 윤리 과목을 연결해 유전자 편집 기술의 명암을 파고들 수 있다. 많은 학생에게 열린 선택지가 될 수 있다.

나아가 한 학교가 개설하기 어려운 과목은 인근 학교나 지역 대학, 온라인 공동교육과정을 통해 이수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선택의 폭이 ‘학교 안’에 갇히지 않도록 했다. 서로 다른 과목을 자신의 문제의식 아래 꿰는 경험, 무엇을 배울지 스스로 설계하는 과정에서 길러지는 주도성은 그 어떤 정답지에도 적혀 있지 않다. 이처럼 교과 간 융합 가능성과 학습 주도성을 우연이나 개인의 노력에 맡기지 않고 제도를 통해 모든 학생에게 보장한다는 것, 이것이 고교학점제가 과거의 교육과 결정적으로 다른 지점이다. AI가 대체하기 가장 어려운 미래 역량의 핵심을 길러내는 토대다.

이는 교육의 패러다임을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전환하는, 자연스러운 변화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학생이 자신의 진로와 적성에 맞는 과목을 선택하도록 하고 학교가 그 성취를 책임지는 방식은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전면적 변화가 아니다. 교육과정 수시 개정 체제가 도입된 이후 학생의 과목 선택권을 확대하고 공교육의 책무성을 꾸준히 강조해 온 결과다.

물론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하는 과정이 순탄할 수만은 없다. 실제 학교 현장에서 많은 학생과 선생님이 고교학점제 도입 초기의 어려움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하지만 고교학점제가 미래 사회를 살아갈 아이들을 위한 길이라면, 과거 교육방식으로 돌아가기보다는 부족한 점을 보완하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학생들에게 너무 많은 선택권이 주어지는 것이 문제라면 선택의 범위를 적절히 조정하고, 기초 학력을 책임지는 일이 교사 개인에게 과도한 부담이 된다면 정부와 교육청이 학교를 실질적으로 지원할 방안을 마련하면 된다.

고교학점제 안착이 그리 쉬운 길은 아니다. 그러나 어렵다는 것이 가지 말아야 할 이유가 돼서는 안 된다. 세상이 급변하는 지금, 모든 학생에게 동일한 과목과 동일한 경로를 요구하는 방식만으로는 더 이상 미래를 준비하기 어렵다. 지금은 실행하면서 고치고, 소통하면서 채워 나가는 유연함이 필요한 때다. 고교학점제는 완성된 결론이 아니라, 미래 교육을 향해 함께 다듬어 가야 할 출발점이다.

 

김진석 소명여자고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