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기본기가 탄탄해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수학을 전혀 배우지 않은 어린이가 1년 만에 수학의 난제를 풀 수는 없고, 일기 한 페이지도 써 보지 못한 사람이 300페이지가 넘는 소설 1권을 써서 베스트셀러로 만들 수는 없는 법이다. 기초가 있어야 이를 응용해 더 큰 일을 해낼 수 있다. 그렇다면 인공지능(AI)은 어떨까. AI에게도 기본기와 응용이라는 개념이 있을까.
AI는 인간 한 사람이 평생 다 볼 수 없을 정도의 어마어마한 양의 데이터를 학습한다. 그림 그리는 AI 중 하나인 스테이블 디퓨전(Stable Diffusion)의 경우, LAION-5B라는 50억개 글, 사진 쌍으로 구성된 데이터 세트를 통해 학습되었다. 학습하는 데이터의 양이 많다 보니 문제가 생긴다. 이미 학습된 AI의 행동을 바꾸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미 수억 개의 사진을 보고 학습한 AI에게 특정 화가의 그림 수십∼수백 개를 추가 학습시켜도 바다에 먹물 몇 방울 뿌리는 정도의 차이밖에는 발생하지 않는다.
그래서 개발된 것이 로라(LoRA: Low-Rank Adaptation)이다. 로라는 AI를 교체형 전동 드릴처럼 만드는 방법이다. AI를 전동 드릴 몸통에 해당하는 큰 부분과 전동 드릴 끝부분의 도구에 해당하는 작은 부분으로 쪼개어 학습시키는 것이다. 몸통에 해당하는 큰 부분에는 기존처럼 수억 개의 학습 데이터를 학습시키고, 작은 도구 부분(Low Rank)에는 특정 화가의 그림 수백∼수천 개만 학습시키는 것이다. 그림을 그릴 때는 큰 부분과 작은 부분을 결합하여 동시에 가동하면 AI 큰 부분의 도움을 받아 작은 부분이 학습한 화가 화풍의 그림을 그려내게 된다.
로라 기반의 AI는 작은 도구 부분만 교체하여 사용할 수 있다. 특정 화가의 화풍, 1970년도 필름 카메라풍, 일본 만화풍 등 각각의 스타일을 학습시킨 작은 도구 부분을 저장해 두고, 필요할 때 꺼내어 해당 부분만 동일한 몸통에 결합해 사용하면 된다. 작은 도구 부분은 학습 데이터도 많이 필요하지 않으니, 필요하다면 새로운 것을 만들어 추가도 빠르게 가능하다. 덕분에 AI의 유연성이 올라갔고, 사용처도 넓어졌다.
로라는 ‘일의 본질이란 무엇인지’라는 질문을 던진다. AI 몸통에 해당하는 부분은 작은 도구 부분이 그림을 그리는 데 필요한 풍부한 분석 정보를 제공한다. 하지만 어마어마한 비용과 데이터를 들여 학습한 몸통이 만들어내는 출력은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초라한 숫자 덩어리 형태이다. 하지만 초라해 보이는 이 출력값에 그림 그리기의 정수가 담겨 있다.
실제로 로라의 작은 도구 부분은 한계가 명확하다. 그림 스타일을 바꾸는 것은 작은 부분만을 교체하여 쉽게 가능하지만, 그리지 못하던 복잡한 포즈를 그릴 수 있게 만드는 것은 힘들다. 그림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포즈와 구도가 어려운 것이고, 특정 화가의 화풍을 모사하는 것은 생각만큼 어렵지 않다는 것을 알 것이다. 정말 중요한 요소는 눈에 바로 보이는 화려함 뒤에 숨어 있다. 이는 AI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본질을 이해하는 것은 요즘 같은 변화의 시대에 매우 중요하다. 수많은 기업이 자신들은 AI를 잘하는 기업이라고 소개하며, 그 증거로 미려한 그림, 장편 소설을 순식간에 만드는 AI 등 겉보기에 화려한 출력물을 보여 준다. 하지만 이런 기업이 AI를 진짜 잘하는 기업이라는 보장은 없다. 로라와 같은 기술을 사용하면 실제 문제 해결 능력은 빈약한 AI도 겉보기에는 화려한 결과를 출력하게 만들 수 있다. 이런 상황은 AI 기술이 발전할수록 더 많이 발생할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에겐 인간의 강력한 능력인 본질을 논리적으로 파악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AI 시대이기에 편안히 맡기고 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AI 시대이기에 더더욱 인간으로서 본질을 파악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정인성 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