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을 주최하는 국제축구연맹(FIFA·피파) 회장이 세계 축구계의 1인자라면 ‘2인자’는 단연 유럽축구연맹(UEFA) 회장일 것이다.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스페인, 네덜란드, 포르투갈, 벨기에 등 축구 강국들이 유럽 대륙에 잔뜩 몰려 있는 현실과 무관치 않다. UEFA가 주관하는 유럽 국가들의 축구 대항전, 이른바 ‘유로’(EURO) 대회는 월드컵과 더불어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한다. 유럽 대륙 내부의 지역 예선을 거친 24개국만 유로 대회 본선 무대를 밟을 수 있다. 본선 출전국이 48개국으로 제한되는 월드컵에 버금가는 ‘미니 월드컵’으로도 불린다.
월드컵 본선 진출국은 2022 카타르 월드컵까지만 해도 32개국에 그쳤다. 그러던 것이 2026 북중미 월드컵을 계기로 48개국까지 늘어났다. 그 3분의 1인 16장의 티켓이 유럽 대륙에 배정됐다. 세계 축구계에서 유럽과 쌍벽을 이룬다는 남미(6장)은 물론 아프리카(10장), 아시아(9장)보다 훨씬 많다. 하지만 UEFA는 축구 실력이 월등한 유럽 국가들이 되레 ‘역차별’을 받고 있다는 불만이 여전히 큰 듯하다. 피파 랭킹 15위이자 월드컵 4회 우승국인 이탈리아가 경쟁이 치열한 유럽 지역 예선에서 끝내 탈락해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지 못하게 된 점이 논란에 불을 지폈다.
그래서일까. 동유럽 슬로베니아 출신인 알렉산데르 체페린 UEFA 회장은 이번 북중미 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자국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월드컵 본선 참가국을 48개로 늘리며 전혀 흥미롭지 않은 경기가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유럽 국가들보다 축구을 못하는 아시아·아프리카 국가들이 대륙별 안배 원칙에 따라 전보다 많은 본선행 티켓을 배정받으며 월드컵 수준이 떨어지게 생겼다는 탄식인 셈이다. 그는 조별 리그 탈락이 예상되는 약체 국가들을 ‘작은 나라’라고 부르며 조롱하기도 했다. 이에 월드컵 출전국 가운데 카보베르데 등 13개국 축구협회가 공동 성명에서 “우리에게 중요하지 않은 월드컵 경기란 없다”며 “우리도 존중받을 자격이 있다”고 항변했다.
북중미 월드컵 8강 진출국이 확정됐다. 프랑스, 스페인, 벨기에, 노르웨이, 잉글랜드, 스위스 6개국이 유럽이다. 그나마 아르헨티나와 모로코가 남미 그리고 아프리카의 체면을 지켰다. 이번에도 유럽의 잔치판이 된 셈이다. 9개국이 출전한 아시아는 한국 등 7개국이 조별 리그에서 떨어진 데 이어 일본과 호주도 32강전에서 져 16강에 오르지 못했다. 당장 유럽 국가들을 중심으로 외신들은 “아시아에 배정된 월드컵 본선 티켓이 너무 많다”며 “5개국 정도만 출전을 허용하는 것이 타당하겠다”는 날선 보도를 쏟아냈다. 한때 아시아 축구의 ‘맹주’로까지 불린 한국 입장에선 참으로 안타까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