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제국은 어떻게 무너졌는가. 인류는 오랫동안 국가와 문명의 흥망(興亡)을 바라보며 살아왔다. 강대한 권력도 언젠가는 쇠퇴하고, 화려한 문명도 결국 시간 앞에서 흔들린다. 그런데 무너지는 것은 제국만일까. 인간의 내면 역시 욕망과 불안, 죄와 갈등 속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는 또 하나의 제국이 아닐까.
전 세계 기독교가 공인한 교부(敎父)이자 성인인 아우구스티누스(354~430년)는 종교의 창시자가 아님에도 세계 영성사와 지성사에서 거대한 거인으로 추앙받는다. 313년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가 공인된 이후, 기독교는 지하 동굴(카타콤)에서 나와 로마 제국의 관료 조직을 본뜬 철저한 계층적 공직 구조로 급격히 재편되었다. 당시 교회는 로마, 알렉산드리아, 안티오키아, 콘스탄티노폴리스 등 거대 교회 중심지들을 축으로 광범위한 권위 체계를 형성해 가고 있었으며, 황제가 교회의 최고 수장으로서 교리 분쟁을 정리하던 시기였다.
◆방황과 욕망의 진흙탕에서 건져 올린 정직한 내면의 고백
예수나 무함마드가 신앙의 위대한 씨앗을 뿌렸다면, 이 과도기에 등장한 성(Saint) 아우구스티누스는 그 씨앗을 체계화하여 서양 문명이라는 거대한 정신적 제국을 설계하고 건축한 인물이다. 무엇보다 그는 고대 그리스의 이성 철학을 기독교 신앙과 융합시켜 인류의 사유를 한 단계 격상시켰다. 그가 남긴 두 편의 대작 ‘고백록’과 ‘신국론’은 고대 사회를 마감하고 중세와 근대 서양 정신사의 문을 연 문명사의 원자폭탄과 같은 책들이다. ‘고백록’이 인간 내면을 다룬 최초의 위대한 자전적 영성 고전이라면, ‘신국론’은 로마 제국 몰락에 대한 해석과 국가와 종교의 관계를 치밀하게 다루고 있다. 인간 내면의 근본 문제와 역사의 흐름을 이토록 깊이 탐구한 사상가는 드물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로마가 기독교를 공인한 이후에 태어났으며, 이슬람을 창시한 무함마드보다 대략 200년 앞선 시대의 사람이다. 그는 북아프리카 타가스테(알제리 동북부)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자 북아프리카 출신이었고, 아버지는 로마 문화권의 영향을 받은 이교도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북아프리카는 로마 제국의 중요한 식량 공급지이자 문화적 요충지였다. 그는 대도시에서 선진 교육을 받았고 젊은 시절 수사학과 철학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그의 청년기는 방황과 욕망의 시간이었다. 명예와 쾌락, 세속적 성공에 대한 갈구 속에서 흔들렸고, 여러 사상과 종교를 전전하며 진리를 찾으려 헤맸다.
이 시절의 고뇌를 현미경처럼 들여다본 저작이 바로 397~400년경에 집필한 ‘고백록’이다. 총 13권으로 구성된 이 책은 서양 최초의 위대한 내면 고백 문학으로 평가받는다. 1~9권은 자신의 유년 시절부터 방황, 여러 사상과 종교를 전전한 끝에 기독교로 돌아오기까지의 자전적 기록을 담고 있으며, 10~13권은 기억과 시간, 성경 창세기에 대한 심오한 철학적 사유를 다룬다. 과거 그리스·로마의 사상가들이 인간을 ‘국가나 운명의 일원’으로만 거시적으로 바라볼 때, 그는 최초로 인간 개인의 마음에 렌즈를 들이댔다.
‘고백록’에서 가장 유명한 일화 가운데 하나는 ‘배(梨)를 훔친 이야기’다. 그는 소년 시절 친구들과 함께 이웃집 배나무에서 과일을 훔친 일을 상세히 서술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배가 꼭 필요했던 것도 아니고, 특별히 맛이 좋아서도 아니었다. 심지어 그는 훔친 배를 제대로 먹지도 않고 돼지에게 던져버렸다. 바로 이 지점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 존재의 깊은 모순을 발견한다. 배를 훔친 이유는 생존 때문도 아니고, 배고픔 때문도 아니었다. 단지 금지된 행동을 저지르는 묘한 짜릿함과 군중 속에서 규범을 어기는 데서 오는 쾌감 때문이었다.
◆배나무 서리에서 통찰한 인간의 근원적 모순과 현대 심리학의 효시
그는 여기서 인간이 전적으로 이성적인 존재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통찰한다. 인간은 무엇이 선인지 알면서도 때로는 악을 선택하고, 심지어 그 악 자체에서 즐거움을 느끼기도 한다는 것이다. 특히 그는 혼자였다면 하지 않았을 일을 집단 속에서 더 쉽게 저질렀다고 고백하는데, 이는 인간이 군중 속에서 책임감을 잃고 악을 놀이처럼 소비한다는 현대 집단심리학의 핵심을 1500년 전에 이미 통찰한 것이다.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이 자신을 결점 없는 도덕적 존재로 묘사하려 했던 것과 달리,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의 방황과 정욕, 모순을 솔직하게 드러냈다. 이 정직한 기록 덕분에 ‘고백록’은 인간 존재가 왜 스스로 옳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끝내 잘못을 반복하는가라는 인류의 오래된 질문을 푸는 열쇠가 되었고, 후대의 자기 성찰 전통과 현대 심리학, 정신분석학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젊은 시절 그는 한동안 마니교에 깊이 끌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영혼의 해답을 찾지 못한 채 방황을 거듭했다. 이후 밀라노의 주교 암브로시우스의 영향을 받아 기독교 신앙에 눈을 뜨게 되었고, 마침내 세례를 받은 뒤 북아프리카 히포(알제리 북동부 해안 도시)의 주교가 되어 수많은 저술을 남겼다. ‘고백록’에 등장하는 유명한 문장으로, “우리의 마음은 당신 안에서 쉬기까지 평안하지 않습니다”와 “자기를 아는 것은 곧 하나님을 아는 길이다”가 있다. 이 문장은 인간이 세속적 성공과 쾌락을 얻어도 끝내 완전한 만족에 이르지 못하며, 자기 욕망과 내면의 모순을 정직하게 직면해야만 비로소 궁극적인 진리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인간 존재의 근원적 갈망을 뜻한다.
그는 명예와 쾌락, 학문과 성공을 모두 경험했지만, 그 어느 것도 영혼의 허기를 채우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인간은 무언가를 끊임없이 욕망하지만, 그 욕망의 가장 깊은 자리에는 무한한 선과 사랑을 향한 갈망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 종교는 바로 그 갈망의 방향을 가리키는 나침반이었다. 그는 시간에 대한 철학적 성찰로도 유명한데, “시간이 무엇인지 묻지 않으면 알겠으나, 설명하려 하면 모르겠다”라는 그의 자조(自嘲)는 인간에게 너무나 익숙해서 오히려 설명하기 어려운 존재와 세계의 신비를 드러내는 철학적 명언으로 자주 인용된다.
아우구스티누스의 또 다른 거대한 공적은 총 22권에 이르는 대작 ‘신국론’을 통해 인류의 역사관과 정치철학을 완전히 바꿔놓은 점이다. 서기 410년, 천년 제국 로마가 알라리쿠스가 이끄는 서고트족(게르만족의 일파)에게 유린당하자 전 세계는 큰 충격에 빠졌고, 사람들은 기독교 때문에 제국이 망했다며 절망했다. 당시 로마 주교를 비롯한 서방 교회는 베드로의 정통성을 내세우며 우월한 권위를 주장했으나 동방 교회와 황제의 권력 앞에서 교회 시스템은 요동치고 있었다. 이때 히포 주교였던 아우구스티누스는 13년에 걸쳐 쓴 이 책에서 ‘지상의 나라와 하나님의 나라’를 이야기하며 문명의 패러다임을 전환했다.
◆흔들리는 로마의 비극을 넘어 영원한 ‘신의 도성’과 역사관을 설계하다
그는 로마 제국은 결국 인간의 세속적 권력과 욕망 위에 세워진 불완전한 ‘지상의 나라’일 뿐이며, 시간 앞에서 흔들리고 망하는 것은 역사의 당연한 순리라고 선언했다. 대신 인류 역사 속에는 인간의 교만 위에 세워진 ‘지상의 나라’와, 신의 사랑과 진리를 추구하는 ‘하나님의 나라’가 늘 중첩되어 흐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두 나라는 영토나 제도의 차이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자기 사랑이 극에 달하면 지상의 나라를 만들고, 하나님 사랑이 극에 달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만든다고 보았다. 결국 두 나라는 인간이 무엇을 사랑하느냐에 따라 형성되는 영적 공동체였던 셈이다. 역사를 계절처럼 그저 돌고 도는 순환으로 보던 고대인들의 세계관을 깨고, 역사는 종말과 구원이라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의미 있는 직선적 흐름이라는 역사관을 체계화한 것이다. 우리가 오늘날 사용하는 진보와 미래에 대한 역사관의 중요한 뿌리 가운데 하나가 여기서 형성되었다. 또한 국가와 권력에 절대적 가치를 부여하던 고대 국가관을 종식시키고, 국가 권력을 절대화하지 않고 영적 권위와 세속 권력의 차원을 구분함으로써, 훗날 서구의 정교분리와 시민사회 발전에 중요한 사상적 토대를 제공했다.
로마 제국은 이미 사라졌지만, 인간의 내면은 여전히 같은 갈림길 앞에 서 있다. 인간은 무언가를 끊임없이 욕망하지만, 그 욕망의 가장 깊은 자리에는 무한한 선과 사랑을 향한 갈망이 숨어 있다.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사랑은 인간을 궁극적 진리로 이끄는 영혼의 방향성이었다. 무엇이 내 삶을 지배하는가. 욕망인가, 사랑인가.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한 지상의 나라와 하나님의 나라는 바로 이 선택에서 시작된다. 두 나라는 지금도 우리의 마음속에서 조용히 흥하고 쇠하며, 우리 삶의 방향을 결정하고 있다.
[인류는 왜 영성을 찾는가—세계사를 움직인 15인의 영성] 목차
<1> 모세-“노예 민족에게 법과 신을 준 사람”
<2> 공자-“혼란한 시대, 인간의 질서를 묻다”
<3> 노자-“세상을 거슬러 흐르지 말라”
<4> 석가모니-“인간의 고통을 정면으로 바라본 사람”
<5> 조로아스터-“선과 악의 전쟁은 어디서 시작됐는가”
<6> 예수-“사랑은 어떻게 세계를 바꾸었는가”
<7> 무함마드-“신앙은 공동체를 어떻게 조직하는가”
<8> 성 아우구스티누스-“인간 내면에도 제국은 존재한다”
<9> 토마스 아퀴나스-“신과 이성은 화해할 수 있는가”
<10> 마르틴 루터-“양심은 교황보다 강한가”
<11> 존 웨슬리-“대중 속으로 들어간 종교”
<12> 라마크리슈나-“모든 종교는 같은 산을 오르는가”
<13> 달라이 라마 14세-“인간은 증오 없이 저항할 수 있는가”
<14> 문선명·한학자-분열된 인류는 다시 한 가족이 될 수 있는가
<15> 간디-“정치는 영혼을 가질 수 있는가”

